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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Aug 28. 2023

아빠, 숨만 쉬어도 돈이 들어와.

근로 수득보다는 불로 소득

국영수 위주의 한국 교육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국영수보다 중요한 두 가지 교육이 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나는 돈에 대한 교육이요, 다른 하나는 죽음에 대한 교육이다. 


사실 내가 한국을 떠나오기 전부터 국영수 위주의 교육은 많은 질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신 강조되었던 것은 인성 교육이지 돈이나 죽음에 대한 교육은 아니었다. 특히 돈은 직접 만지면 안 되는 부정한 것이라 봉투에 넣어 건네는 관습을 지켜오는 우리 나라에서, 국영수 대신 돈에 대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설 자리가 없었다. 


돈에 대한 거부감은 사실 아직도 상당한 겉 같다. 돈 공부 서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책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로 팔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너무 세속적으로 돈을 묘사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유튜브와 서점과 블로그는 인성보다는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많이, 빨리 벌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사람들로 빼곡하다. 그러니, 이제는 후대에게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말이 금과옥조가 될 수 없겠다. 사실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 살면서 돈을 돌 보듯 하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OECD 산하 INFE(International Network on Financial Education)가 평가한 2018년 한국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62.2점이었는데, OECD 평균은 64.9점이었다. 2015년에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에서 조사한 전 세계 국가별 금융이해력 순위에서 한국은 33점을 받았는데, 이는 아프리카의 가봉이나 우간다보다 낮은 점수였다. 


그럼, 도대체 아이들 금융 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하나. 나는 이과생이었지만, 나름 경제학과 수업을 많이 듣기도 했고, 직장에서도 경제 신문을 손에서 놓아 본 적은 없어서, 틈 날 때마다 내가 아는 이자, 환율, 무역 등 여러가지 돈 관련 공부를 아이들에게 밥상머리에서 가르치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성인이 되도록 별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이 대학생이 된 뒤에는 그런 이야기를 할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환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빠, 숨만 쉬어도 돈이 들어와.


용돈과 월급을 모아 정기 예금에 가입을 했단다. 얼마나 벌었나 보니, 한 달에 3불 (대략 3천원) 정도. 한 달 수익이 3천원이라 - 금액으로 만 따지면 에이, 그걸로 뭘 해, 할 정도로 작은, 별 거 아닌 것이었지만, 이야기를 좀 해 보니, 정기 예금 말고도 주식과 여러가지 금융 상품에 대한 지식이 생각보다 해박했다. 다른 방법을 몰라서 정기 예금에 가입한 것이 아니라, 다 따져보고 정기 예금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 때 깨달았다. 결국 돈 공부는 책상 머리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돈을 넣어 보고, 잃어 보고, 불려도 보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었다. 번 돈은 3불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3불을 버는 과정에서 내 딸은 그보다 훨씬 중요한 금융 지식을 배우게 되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들어오는 것을 경험한 딸은 지금도 열심히 돈 공부 중이다.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 돈을 잃든 불리든 아이들 이름으로 뭐든 투자를 시켜주고 그 뒤는 알아서 하게 두었다면, 우리 아이들은 지금쯤 훨씬 더 똑똑하게 돈 공부를 한 상태일텐데. 


돈이라는 게 참 묘해서, 특히 불로 소득이 주는 기쁨은 더 묘해서, 1불을 잃어도 잠이 안 오고 1불만 벌어도 기분이 상쾌해진다고. 그러니, 돈을 잃거나 벌 수 있는 상황만 가져다 주면 되는 것이었다. 괜히 밥상 머리에서 서로 머리 아프게 이자니 환율이니 주식이니 채권이니 이런 말 할 필요가 없었다. 


내 자산의 99%는 근로 소득으로 얻었으니 근로 소득의 소중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결국 근로소득의 기쁨은 불로 소득의 기쁨을 이기지 못하니 말이다. 


내가 처음 고스톱을 배울 때, 처음 포커를 배울 때, 처음 카지노를 갔을 때, 다들 그랬다. 도박은 잃으면서 배우는 거라고. 실제로 돈을 잃지 않으면 제대로 배울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어쩌면 돈 공부는 처음에는 도박 시작하듯이 시작해야 하나보다. 어차피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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