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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Nov 10. 2022

임시성보다는 정성

인연은 정성의 산물이다

한국에서부터 집에 액자를 거는 것은 당연히 내 일이었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 벽에 시멘트 못을 박는 것은 여자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 그런데, 한 번 못자국이 깊이 나면 다른 곳에 옮기기도 어려워서, 액자 한 번 달아 보려고 하면 재보고, 또 대보고 하기를 수 십 차례 반복하고서야 망치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캐나다는 나무로 집을 짓고, 벽도 dry wall이라고 불리는, 과장하면 종이보다 조금 더 단단한 것으로 벽을 만드니 손으로 눌러서도 못을 박을 수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바늘  구멍같은 작은 구멍만으로도 dry wall에 액자를 걸 수 있는 소품이 개발되어 별로 눈에 띄는 자국도 없이 여기 저기 옮겨 볼 수 있으니, 재보고 대보는 수고를 아무래도 덜 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못 대신 액자 접착용 스티커를 썼다. 이건 붙였다 떼어도 바늘 구멍 하나 남지 않는다. 붙이고 떼는 것이 자유롭고 아무런 부담도 없다. 그러니, 걸고 싶은 그림이 있으면 일단 걸고 본다. 여러 번 붙였다 떼어도 이 접착제는 잘 붙고, 잘 떨어진다.


접착제가 잘 떨어진다면 사실 실패작이어야 하는데, 그 실패를 포스트잇이나 액자용 스트커와 같이 성공적인 상품으로 돌려놓은 것은 그 불완전한 접착력이 가진 임시성을 잘 살렸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확실성이 중요했던 것 같은데, 이젠 임시성이 대세다. 


그림을 바꾸고, 옷을 바꾸고, 직장을 바꾸고, 남편을 바꾼다. 캐나다는 환불이 잘 되니 물건도 일단 사 보고 환불하고, 이혼이 별 일 아니니 결혼도 한 번쯤 질러보는 때가 되었다. 편하다. 고민할 것이 없다. 


편리하기는 하지만, 이런 임시성이 가진 문제는 내가 항상 주인이 되는 것이 습관이 된다는 거다. 내가 맞출 필요가 없다. 나에게 맞는 것을 찾게 될 때까지 바꾸어 가면 그만이다. 조심스럽게 골라, 물건에게 나를 맞추고, 사람에게 나를 맞추던 정성은 이제 추억거리일 뿐.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내 곁에 남아 있는 것들은 정성을 들인 것들이다. 물건도, 사람도, 그리고 추억도. 뭐라도 내 옆에 남기려면, 역시 정성이다. 내게 딱 맞는 무언가가 그렇게 흔하게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나를 맞추어 서로 잘 맞아지게 하는 것, 사물과도 사람과도 그렇게 인연이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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