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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Nov 14. 2022

감자 튀김보다는 고구마 튀김

저장의 저주

감자나 고구마나 형태는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감자는 식량 작물로 취급되지만 고구마는 아니다. 왜 그럴까.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우선 고구마는 감자보다 살짝 당도가 높은데, 바로 그 차이 때문에 미생물의 공격이 용이해서 상대적으로 저장이 어렵다. 그리고 저장이 어려우면 식량 작물이 되기 어렵다. 감자는 남으면 보관하고 고구마는 남으면 이웃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


중세엔 와인 유통기한이 짧았다. 그냥 와인은 1-2주만 두어도 식초가 된다. 이 과정을 막으려면 남는 술을 이웃과 나누어 마시든지, 아니면 당시에는 신기술이었던 이산화황 첨가라는 비기를 시전해야 한다. 이산화황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와인의 수명은 대폭 늘어났고, 장기 보관이 가능해진 와인은 이제 남더라도 이웃과 나누어 마시지 않고 판매한다. 


수렵/채집 시대의 식량은 보통 저장이 어렵다. 저장이 안 되니 남는 건 나눈다. 하지만, 이제는 야채류도 저온에서 보관하여 유통 기간이 늘어나니,  이제 웬만한 먹거리는 나누는 것보다 보관을 선호하게 된다. 


먹을 것이 부를 저장할 때는 그것도 몇 달뿐이었다. 그러나 옷감이나 귀금속처럼 식량보다 부의 저장이 잘 되는 수단이 생기니 점점 덜 나누게 된다. 이제는 전산상에 생성된 돈은 사라지지 않으니 (이자까지 붙으니) 나눌 이유가 없다. 


저장의 축복이라기 보다는 저장의 저주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눔이 그만큼 적게 보이는 세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 지나면 먹을 수 없었다는 성경 속 음식인 만나는, 어쩌면 저장을 할 수 없어서 더욱 축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자튀김보다는 고구마튀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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