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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Nov 10. 2022

포노사피엔스가 나를 멸종시킨다

문자질의 진화


캐나다에서는 요즘 대학 졸업생들 면접을 볼 때 면접관 앞에서 전화를 시킨다고 한다. 피자 주문, 길 안내 등을 전화로 하게 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도시락 주문하는 게 어떻게 면접이 될까? 


딸의 설명인즉, 친구 사이에도 전화보다는 문자를 더 많이 주고 받는 것이 요즘 대학생이고 음식 주문도 대부분 인터넷으로 하다보니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 한다고 한다. 어떤 메뉴가 있는지 편안하게 화면으로 보고 고르다보니, 주어진 시간안에 메뉴를 물어보고 주문을 해야하는 상황 자체를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화 공포증이라는 말도 있단다. 


딸 친구 중에도 이런 증상이 심한 사람이 있고, 본인에게도 조금 그런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딸 생각에는 아빠 세대에 비해서 개인적인 관계 맺기가 힘들단다.


나는 오랫동안 타이핑만 하다가 보니 요즘은 손글씨를 쓰기가 많이 힘들어졌다. 하지만, 문자로만 의사소통을 하다가 전화가 힘들어 진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문자로는 감정을 전할 수가 없으니 대화하는 것처럼 깊은 의사소통은 안 되리라 싶어 걱정스러웠다. 삶은 인연의 집합이고, 인연은 잘라내기보다는 잘 풀어 나가야 한다고 했는데, 말로도 풀기 힘든 인연을 문자질로 잘 풀어 나갈 수 있을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어제 친구를 기다리면서 카톡을 보냈다. “기다리고 있어.” 그런데, 옆에서 보던 딸이 질색을 한다. 왜 그렇게 쓰냐고. 뭐가 이상한가? 하고 다시 보았는데, 이상할 것이 없다. 철자법도, 띄어쓰기도 틀리지 않았는데.


문제는 마침표 “.”였다. 마침표를 찍으면 기다리다가 지쳐서 화가 난 상태로 보인다는 거다. 그냥 도착해 있다는 정보를 보내려는 것이면 마침표 없이 쓰거나 굳이 쓰려면 다른 종류의 기호 (예를 들어 기다리고 있어~~ 등)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마침표, 쉼표, 느낌표, 물음표 처럼 그저 문법에 맞춰 의미 없이 사용하던 기호들이 이제 점점 더 세밀하고 명확한 의미를 가지기 시작해서 문맥에 따라 이모티콘의 역할을 하는 거다. 단순한 문장 기호들이 세밀하게 감정을 전하는 수단이 된다. 이 정도면 문자 메시지를 대화와 유사한 수준으로 발전시킨 것이니, “문자는 정 없어”, “편지 백통보다 전화 한 통이 나아” 와 같이 문자를 목소리와 차별하고, 대화가 적어짐을 염려하던 기존 세대의 걱정은 기우가 될 듯 하다.


앞으로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기준이 하나 더 생기는 건 아닐까. 소리로 의사를 전달하면 동물, 문자로 전달하면 인간. 인간이 문자에서도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종으로 진화하고 있다면 안타깝게도 나는 멸종 위기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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