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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Nov 10. 2022

성취와 성공

뚱딴지처럼 꿋꿋하게

췌장암을 이겨내신 대학 선배님께서 몇 년만에 바비큐 파티를 한다시기에 축하도 드릴 겸 인사차 찾아 뵈었다. 땅이 넓은 캐나다는 아직도 아파트보다는 뒷마당이 있는 주택을 선호하는 데, 그 댁 뒷마당에는 형수님께서 선배님 건강을 챙기시느라 심으신 6-8가지의 약용작물들이 담벼락을 돌아가며 빼곡하게 심겨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키가 아주 큰 식물이었다. 키는 해바라기를 훌쩍 뛰어넘어 3m는 될 듯 하고, 하늘 높이 작고 앙증맞은 노란색 꽃을 달았다. 꽃이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옹기종기 많은 꽃이 피어 훤칠하고 보기도 좋았다.  


그게 흔히 말하는 돼지감자, 우리말로 뚱딴지라고 부르는 녀석이었다.  


해바라기처럼 꽃에 달리는 씨앗을 먹는 게 아니니, 사람들은 꽃에 별 관심이 없다. 굵고 높게 자란 줄기도 쓸 데가 없으니, 줄기를 대견해 하는 사람도 없다. 사람들은 단지 이 뚱딴지가, 정말 뚱딴지같이, 땅속에 볼품없이 뭉쳐 놓은 녹말 덩어리, 돼지감자만을 귀하게 여긴다. 뚱딴지가 땅 위로 양껏 이루어 낸 것들은 이제 곧 다 베어지고 그 녹말덩어리들만이 형수님의 바구니에 담기게 될 거다.  


어쩌면 성취란 그런 것 아닐까.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성취가 아닌 것은 아니다. 외면받는 꽃도, 버려지는 줄기도 뚱딴지가 한 여름 내내 애써 키워낸 성취다. 모든 성취가 남들에게 인정받는 성공일 수도 없지만, 꼭 성취가 성공일 필요도 없다.  


그렇게 성취를 하다보니 의도치 않게 돼지감자라는 성공도 쌓인 것이 아니겠는가. 매일매일을 성취를 위해 열심을 내었으니, 땅 속 어딘가에 녹말 덩어리도 조금씩 쌓여 귀하다 인정받는 성공이 된 것일 게다. 그러니, 매일매일 성취를 계획하고 있다면, 성공을 의심하지 말자. 


뚱딴지는 내년에도 올곧게 줄기를 쭉쭉 뻗고, 그 끝에 아기자기하게 작고 노란 꽃을 달 것이다. 자신만의 성취를 누리고, 또 그렇게 틈틈이 모아놓은 녹말 덩어리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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