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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Oct 04. 2023

서툴다는 것이 흠이 되는 나이

세상에는 두 가지 나이 밖에는 없다

내가 한국에서 중간 관리자로 회사 생활을 하던 때에, 나와 내 동료들은 말로는 사장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지만, 사실은 "3무"라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스스로 3무라 칭하는 분들을 동경했다. 


3무란 3 가지가 없다는 뜻이었다. 이 호칭을 얻으려면 첫째, 모르는 것 없어야 하고, 둘째, 못 하는 것이 없어야 하고, 셋째, 안 가본 곳이 없어야 했다. 모르는 것 없고, 못 하는 것 없고, 안 가본 곳 없는 이 분들은 회사에서의 업무 능력도 출중한 것으로 인정받는 분들이셨다. 


도대체 그 분들은 어떻게 해서 그 경지에 오른 것일까, 우리는 술 자리에서 종종 그런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 대통령의 통역을 담당하시던 분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대통령들의 대화는 어디로 튈지 몰라 늘 긴장이 된다, 와인에서 무기로, 무기에서 종교로 종횡무진 주제가 이어지는데 본인의 지식은 한계가 있지 않은가, 도대체 그 분들은 그 많은 지식들을 어떻게 섭렵하신 것인가, 라고 하셨다. 


우리의 생각도 비슷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3무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느 분야에서도 서툴지 않기 위해, 그렇게 3무가 되기 위해 공부했다. 노력했다. 


그런데, 3무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에도, 서툴어서는 안 되는 때가 닥쳐 왔다. 생산, 영업, 마케팅, 회계와 같은 회사의 일에 대해서는 물론이고고, 경제나 환경 같은 문제에도 해박할 것을 은근히 강요받는 위치가 되었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되는 그런 때가 왔었다. 


서툴다는 것이 흠이 되는, 그런 나이가 되었구나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해결책은 하나였다. 서툰 일을 멀리 하는 것. 예전에는 회식후 가는 노래방은 신곡 발표회를 하는 곳이었으나 이제는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만 부르고, 예전에는 모르는 이야기가 나오면 끼어들어 알려고 했으나 이제는 외면하고 빠진다. 


그렇게 했더니, 놀랍게도 내가 서툴다는 것이 감춰졌다. 아무도 내가 뭘 모르는지, 뭘 못하는지, 어디를 못 가보았는지 알지 못했다. 


그 때에서야 알았다. 세상에는 두 가지 나이가 있다는 것을. 아니, 사실 이 두 가지 나이 밖에는 없다는 것을. 


서툴다는 것이 흠이 되는 나이, 그리고 서툴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나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가 있었지만, 사실 나이는 숫자도 아니었다. 


시작과 시도와 배움이 있는 곳에서 나는 서툴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나이인 것이고 앞으로 더 능숙해질 일만 남은 것이다. 시작과 시도와 배움이 없는 곳에서 나는 서툴다는 것이 흠이 되는 나이인 것이고 앞으로 더 서툴러질 일만 남은 것이다. 


스스로 서툴다는 것이 흠이 된다고 생각하는 그 때부터 내게는 발전이 없었다. 회사 일도 실력 보다는 인맥으로 통해서 해결하고, 신곡은 듣기는 해도 불러보지는 않고, 새로운 취미는 손도 대지 않았다. 잘 하는 것만 하다보니 스스로를 서툴다는 것이 흠이 되는 나이로 만들었다


그래서 다시 서툴기를 시작했다. 손에서 놓은 것들을 다시 챙기고, 해 보지 않은 것들에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붓을 다시 잡고, 드럼도 시작하고, 망신을 당해도 신곡만 골라 불렀다. 그러다가 MBA를 생각하고, MBA를 생각하다가 결국 캐나다 로스쿨을 가게 되었다. 


나이는 하나가 아니다. 


연구에서는 서툴다는 것이 흠이 되는 나이일지라도 동시에 드럼에서는 서툴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나이일 수 있고, 마케팅에서는 서툴다는 것이 흠이 되는 나이일지라도 동시에 프로그램 개발에서는 서툴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나이일 수 있다. 


어려서 동경하던 3무는 어쩌면 그저 서툴다는 것이 흠이되는 나이가 되는 지름길이었다. 그 길을 동경하다보니 어느 새 모든 면에서 서툴다는 것이 흠이 되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일에서도, 취미에서도, 가사에서도, 어디를 둘러 보아도 잘 하고 있고 그래서 어느 방면에서든지 서툴다는 것이 흠이 되는 나이가 된 듯 하다면, 지금이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할 나이라는 뜻은 아닐까. 서툴다는 것이 자랑이 되는 나이를 하나 쯤 가질 때가 된 것을 아닐까.


서툴다는 것이 자랑이 되는 나이가 항상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서툰 나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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