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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Oct 10. 2023

신앙깊은 사채업자

내 선의는 어디를 향해 있을까

사채라고하면 한국에서 오신 1세 분들은 진저리를 치신다. 사채를 쓰는 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한국에서 이미 지겹도록 보고 듣고 오셨다. 


캐나다에도 사채가 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도 사채를 쓰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한국의 1세 분들은 "참담하다"고 하신다. 내가 남의 나라에 와서 사채나 쓰는 처지가 되다니... 라면 한탄하신다. 


하지만, 캐나다의 사채는 한국의 그것과는 다르다. 캐나다는 사채가 한국보다 흔하고, 한국처럼 패가망신의 징조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가장 큰 차이는 한국은 채무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더 많지만, 캐나다는 채권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이다. 


물론 캐나다도 사채 이율은 높다. 법정 한도가 연리 60%이니, 지금 같은 고금리에도 연리 5-8%정도인 은행 금리를 생각하면 낮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법정 한도 이야기이고, 보통은 8-12%정도에 이율에 책정된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분들에게는 분명 매력적인 금리다. 


돈을 갚지 못하는 경우에도 불법적인 추심은 가능하지 않다. 이런 부분에 대한 보호는 한국보다 확실하다. 그래서 나는 고객들이 사채를 쓰는 문제로 고민을 하시면 '한국에서 새마을 금고정도 되는 제 2금융권 자금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라' 고 조언한다. 


내 고객 중에도 사채와 관련된 고객들이 당연히 있다. 고객 중에는 돈을 빌려주고 고민하시는 분들도, 돈을 빌리고 고민하시는 분들도 있다. 조금 아이러니 하게 들릴 지는 모르지만, 그 중에는 신앙이 깊은 사채업자들도 계신다. 아니, 종교인이 사채업을 한다고? 라며 놀랄 수도 있지만, 주위에서 그런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신앙이 깊은 대부업자는 크게 두 종류가 계신다. 한 쪽은 '사채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다. 사채가 나쁜데, 왜 사채업을 하시는 걸까?


고객 중 한 분은 사채로 돈을 빌려 주는 것은 악한 일이라고 생각하셨는데, 돈을 빌려달라는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는 정말 돈이 필요하고, 당신이 아니면 연리 12%가 훨씬 넘는 이율을 요구하는 대부업자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 처지다. 당신이 정말 선한 일을 하고 싶다면 1%라도 싸게 빌려주는 것이 선이지, 아예 빌려주지 않고 혼자 깨끗하게 살겠다는 것이 선인가"


그 말을 듣고 고민하시던 분은 결국 저렴한 이율로 돈을 빌려 주기로 하셨다. 


반면 다른 쪽은 대부업을 '본인이 맡은 사명'으로 알고 하시는 분들이다. 이 분들은 사채업에 진심이시다. 하루를 빌려주고도 한 달치 이자를 받을 방법을 요구하시고, 빌리는 사람의 사정이 급하다는 낌새가 보이면 바로 이율을 올리신다. 사채업을 사명으로 받아들이시다보니, 돈을 빌리는 사람은 신앙이 없는 분에게 돈을 빌린 것보다 훨씬 힘들어한다. 


두 종류의 대부업자 모두 선의에 기반한 것이라 생각되기는 한다. 한 쪽은 돈을 빌리는 자에 대한 선의, 한 쪽은 본인의 신앙에 대한 선의. 


어느 쪽이든 신앙인이 사채업을 한다고 하면, 결과적으로 이자 받고 돈을 빌려주는 행위는 동일하나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다른 이의 고민을 도와주기 위해 내 신앙에는 불편해도 진행하는 사채업과, 나의 신앙을 위해 돈을 빌리는 이에게 불편을 요구하는 사채업은, 어쩐지 좀 달라 보인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내가 베푸는 선의는 어디를 향해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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