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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Sep 18. 2023

왼손잡이셨어요?

균형잡기 쉽지 않네

"어, 왼손잡이셨어요?"


내 사무실에 들어와서 내가 일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면서 묻는다. 처음에는 예의로 답하다가, 조금 지나서는 귀찮아졌다가, 이제는 의례히 그러려니 하고 답해준다. 


"아니요, 오른손잡이입니다"


그러면 또 물어본다.


"그런데 왜 마우스를 왼손으로 쓰세요?"


그렇다. 그게 이유다. 나는 마우스를 왼손으로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러니, 대부분의 오른손잡이들은 내가 왼손잡이인 줄 아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도 마우스라는 물건을 접한 이후에 몇 십년간 줄곧 오른손으로만 마우스를 조작했다. 그러다가 몇 년전 어떤 지인이 수술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병 문안을 갔다. 어깨와 척추에 문제가 있던 그 분은 대뜸 나에게 마우스를 양 손으로 쓰기를 권했다. 


마우스를 오른손으로만 쓰면 모르는 사이에 왼손이나 왼쪽 몸에 기대는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척추도 휘고, 한 쪽 어깨에만 무리가 간다고 했다. 본인도 그것 때문에 결국 수술을 받게 된 것이라고 했다. 나는 웃었다.


"에이, 설마. 마우스가 원인일까. 원래 자세가 안 좋았겠지. 나는 똑 바로 앉아서 일하는데?"


그리고 자신있게 회사로 돌아와서는, 한 번 테스트해 보았다. 그럴리는 없지만, 내가 일 할 때 혹시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나? 


그런데 내 몸이 정말 기울어져 있었다. 


오른 손이 마우스와 자판사이를 오갈 때는 항상 왼쪽에 몸무게를 싣고, 오른 손으로 글을 쓰거나 무언가를 할 때에도 왼쪽에 무게를 둔다. 그러다보니, 오른손과 왼손이 함께 자판에 올려져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왼쪽으로 내 몸이 쏠려 있었다. 


세상에나. 올곧게 앉아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치우쳐 있었다니. 


그랬다고 하더라도, 지인이 침을 맞았다거나 마사지 치료를 받았다고 하면, 그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그 자세를 그냥 유지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척추 수술이라니. 이건 좀 무섭다.


그래서 마우스를 왼손으로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어색해서 정확한 자리에 포인털르 가져다 놓기도 어렵고, 더군다나 더블클릭은 잘 되지 않았다. 너무 답답했다. 하지만, 답답해서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쓰고 싶어질 때마다 생각했다. 척추 수술... 척추 수술... 척추 수술...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 왼손으로도 마우스 작업을 할 만했고, 그렇게 2년이 지나니 왼손으로 마우스 쓰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약간의 불편이야 남아 있지만, 무엇보다도 왼손으로 마우스를 쓸 때에는 몸이 왼쪽으로 쏠리지는 않으니, 그거 하나면 됐다. 


치우친 것이 어디 앉은 자세 뿐일까.


남이 치우쳐 있다면 나라고 치우쳐 있지 않을 재주가 없다. 누구나 치우쳐 있다. 하지만, 치우쳐 있는 것이 불편하지 않으니, 치우친 줄도 모르고 살펴보지도 않는다. 그러니, 원인을 알려 주어도 알지 못한다. 마우스를 왼손으로 쓰라고 해도 웃어넘긴다. 그러다보면 중심을 잡아 줄 척추까지 휘어져도 모른다. 


원인을 알게 되어도, 치우침을 바로 잡을 생각이 있다면 불편을 각오해야 하니 문제다. 마음도 편하고 몸도 편한 곳에서는 나는 치우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기를 쓰고 버텨야 간신히 균형이 잡힌다. 


물론 균형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척추 수술이 무서우면 왼손으로 마우스 잡는 정도의 불편이라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도 일이 많아서 급하게 일을 처리하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 새 마우스는 오른손으로 넘어가 있다. 도대체 언제 넘어간 것인지.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것이니 통제가 안 된다. 


나는 언제쯤 이 치우침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을까. 나는 얼마나 많은 곳에서 치우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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