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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Sep 15. 2023

법을 고아로 만들지 마라

뭣이 중헌디

벌써 여러 해가 지난 일이다. 미국에서 닭장이 아니라 야생에 닭을 풀어 키우는 (요즘식으로 말하면 유기농) 농부가 있었다. 그 때도 건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많아서, 이 농장에서 나오는 계란과 닭이 잘 팔렸다. 


그런데, 어느 날 위생을 담당하는 정부 관리가 찾아 왔단다. 그리고 농장을 둘러보더니 농부에게 통보했다 – 법을 어긴 것이 너무 많아 농장을 폐쇄해야 한다고. 규격에 맞는 모이통, 물통도 없고, 규격에 맞는 방역도 하지 않았고, 규격에 맞는 시설도 없다는 거였다. 그리고는 벌금도 물렸다. 


농부는 반발했다. 정부의 지시에 불복하고 소송을 걸었다. 그리고는 주장했다. 


"밥통이며, 물통이며, 방역이며, 시설이며, 정부에서 규제하는 사항들은 닭을 과밀도로 닭장에 가두어 키우기 때문에 필요해진 법이다. 닭장이 아니라 농장에 풀어서 키우는 경우에 적용시켜서는 안 된다" 


자신처럼 농장에 풀어키우는 닭에게 닭장용 법을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거였다. 정부는 물론 반박했다.


법은 법이다. 


그러자 농부가 제안했다. 그럼, 규제를 잘 지킨 닭장의 닭과 풀어 키우는 내 농장의 닭의 위생과 건강 상태를 비교해 보자. 우리 농장의 것이 더 열악하다면 승복하겠다. 


법원은 이를 수용했고, 검사 기관은 꼼꼼히 비교했고, 농부는 승소했다. 미국의 그 관리는 법을 적용하면서도 그 법이 왜 만들어졌는 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글은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잃어버리는 아이와 같다"는 말이 있다. 


글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작가일지 몰라도, 그 글을 읽고,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기에 나온 말이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글을 썼든, 결국 그 글은 독자들이 어떻게 읽고 느끼는가에 따라 의미가 결정된다.   


하지만 법은 소설도 아니고 시도 아니다.


법은 그 의도가 중요하고, 그래서 항상 그 의도를 먼저 보아야 한다. 물론, 위 사례에서 풀어 키우는 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이 있었으면 더 좋은 법이었겠지만, 그건 너무 큰 바램이다. 


법은 늘 불완전하고, 그렇기 때문에 법의 적용은 과학보다는 예술에 가깝다.  


차량이 사거리를 건너려면, 언제 건너는 것이 가장 안전할까? 운전 초보인 딸은 파란불일 때라고 한다. 10년 넘게 운전한 아내도 파란불일 때라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다른 차 없고, 다른 사람도 없는 텅 빈 사거리일 때 건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차량과 행인 통행이 많다면 파란 불이어도 위험할 수 있고, 아무런 차량도 사람도 없다면 빨간불이어도 위험하지 않다 (물론 경찰에도 CCTV에도 걸리지 않아야 하지만, 그건 안전의 문제는 아니다).


교통 신호를 지키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예를들어 차도 없고 사람도 없는 것이 100% 확실한 경우에 사거리를 빨간 불에 지나는 차를 경찰이 잡아야 할까... 하는 거다. 법 집행은 좋지만, 신호등의 목적이 뭔지 생각하지 않고 집행만 하려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자는 거다. 주객이 전도되는 일은 없게 하자는 거다.



오래된 일은 아닌데, 대표적인 매국노로 지칭되는 이xx의 후손들이, 이xx이 일제 시대에 착복한 땅을 소송 끝에 찾아갔다고 한다. 이xx은 나라를 팔아 자기 후손을 흥하게 한 것이다. 이 판결은 매국을 장려하는 셈이니 아무리 법 적용을 예술적으로 했다고 해도 동의하기 어렵다. 세상에 어느 나라의 법이 매국으로 흥하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랴.


가끔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법을 지키면서, 왜 그런 규정이 필요했었는지 잊어버린다. 원인을 모르고 결과만 맹목적으로 따르다보면 주객이 전도된다. 영화 대사처럼 뭣이 중한지 생각하지 않으면 꼬리가 머리를 흔들게 된다.  


글은 고아여도 좋다. 어쩌면 글은 고아여서 더 좋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법은 고아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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