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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Oct 10. 2023

수금 목표를 초과 달성했으니 해고입니다.

결과가 좋은 실패와 결과가 나쁜 성공

예전에 한국에서 내가 담고 있던 다국적기업은 내가 합류하기 전에는 한국 회사였다. 그 회사를 프랑스 회사가 샀고, 나중에는 그 프랑스 본사를 독일 회사가 샀더랬다. 하지만, 마케팅과 재무를 제외하고는 프랑스나 독일의 본사에서 따로 사람을 보내지는 않았고,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래 일하던 자리를 지켰다. 마케팅과 재무는 외국식으로 운영되었지만, 나머지 부분은 예전 한국식으로 운영되었다. 


그렇게 반은 외국식, 반은 한국식으로 무난하게 회사가 굴러가던 어느 해, 한국은 IMF 차관을 신청하게 되었고, 경제는 요동쳤다. 모든 전망이 빨간 불이었고, 회사에도 당연히 비상이 걸렸다. 모든 예산이, 특히 소위 말하는 접대비 예산이 삭감되고, 영업본부는 수금 목표와 수금 현황을 주 단위로 사장실에 보고해야 했다. 


물론 대부분의 수금은 어차피 12월에 이루어지는 것을 다들 알고 있느니 주 단위 보고의 숫자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자료를 바탕으로 경영진은 12월의 성적을 가늠해 보려고 노력했다. 모두의 예상처럼 수금 전망은 좋지 못했다. 돈이 돌지 않을 것을 예상한 회사는 계속 비용 절감을 외쳐댔고, 접대비는 물론 광고비를 비롯한 제반 예산의 지출이 동결되었다. 


돈을 많이 써야하는 6월에도, 7월에도, 8월에도 수금 전망은 어두웠고, 11월까지도 수금 목표는 매우 낮게 잡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인가. 12월이 지나고 1월에 실적이 발표되었는데, 수금이 년초 목표치를 초과 달성한 것이었다. 연초 목표를 11개월 내내 낮추고 낮추고 또 낮추어 왔는데, 12월 한 달만에 수금 목표 초과 달성이라는 결과를 이루어낸 것이었다. 


영업 본부는 축제 분위기였다.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낸 결과라며, 영업 일선에서는 보너스까지 기대하는 듯 했다. 


하지만, 며칠 후에 충격적인 루머가 퍼지기 시작했다. 목표를 초과 달성했기 때문에 영업 본부장을 해임하는 안이 경엉진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루머라며 모두들 술렁거렸다. 


그런데 루머가 사실이었다. 수금 실적이 나쁘지 않을 것을 제대로 예측했다면 마케팅에 더 많은 예산을 써서 다음 해의 영업실적을 올리도록 하거나, 접대비를 제대로 지출해서 거래처와의 관계를 돈독히 해서 미래의 실적을 담보하는 등 여러가지 방책을 마련해 볼 수 있었는데, 수금 실적 예측에 실패해서 그 모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특히나 연말을 한 달 앞둔 상황에서도 영업 본부장이 수금 결과를 그렇게까지 틀리게 예측했다는 것은 능력 부족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수금 실적보다 중요한 것은 수금 결과에 대한 예측 능력이었다. 결국 해임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영업 본부장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이 있었다. 


한국과 외국의 경영 방침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난 경우였다. 이전까지는 성과가 중요했지만, 이제는 예측 가능성이 중요해진 것이다. 


예전 한국 회사 시절에는 수금 성적만 좋으면 보너스를 받았을 지 모르지만, 이제는 수금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면 능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루머에 어리둥절했던 직원들도 곧 회사의 논리를 이해했다. 예측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성공이라고 할 때에만 재현이 가능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결과를 성공이라 하면 그런 성공은 계획할 수도 없고, 성공의 원인을 모르니 재현도 불가능하다.  


예전 한국 회사의 방침이 결과주의였다면, 외국 회사의 방침은 지속 가능성과 예측 가능성에 근간을 두고 있었다. 결과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예측 가능성보다 결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데에 있다. 


요즘 TV에 자주 나오는 김경일 심리학 교수님에 따르면 바둑을 두고 나서도 뜻밖의 패배를 한 대국의 패자는 성의를 다해 복기를 하는 반면 우연히 승리한 대국의 승자는 복기에 소홀하다고 했다. 공부도 그렇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도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속상해 하고, 왜 틀렸을까 고민하지만, 공부를 하지 못해서 성적이 나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좋은 성적이 나오면 그저 기뻐하지 왜 예측에 실패했는지 고민하는 학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주류인 상태에서는 예측 가능성을 키우기 어렵다. 모두들 결과만 보여달라고 하니, 결과가 좋으면 성공이라는 인식이 커진다. 재현 가능성도 중요하지 않고, 예측 가능성은 염두에도 없게 된다.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성취는 오늘의 성취에 그칠 뿐이고, 내일의 성취를 위한 디딤돌은 될 수 없다. 


이제는 한국 안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회사도 별로 없고, 그런 직장인도 별로 없다. 다국적 기업에 근무하지 않아도 다국적으로 접촉해야 하고, 외국에서도 통용되는 사고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물안 개구리이고, 아쉽지만 우물안 개구리가 설 자리는 지금도 줄어들고 있다. 


오늘 좋은 결과를 받는 것보다는 오늘의 결과가 내일의 디딤돌이 될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우물안 개구리를 면할 수 있다. 결과가 훌륭한 실패가 있고, 결과가 나쁜 성공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그리고 계획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성공이고 계획하지 않은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비록 행운일지언정 실패라른 것을, 비로소 우물안 개구리를 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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