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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Oct 26. 2023

무심코 한 꼰대 짓 덕분에 로펌에 취직하다

학생이지만, 꼰대야.

로스쿨 첫 수업이었던 형법 시간에 나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는 광경 하나와 매우 블쾌한 광경 하나를 보았다. 


로스쿨 첫 수업시간, 그래도 첫 수업이라 더 긴장이 되어 20분쯤 일찍 가 있었는데, 다른 학생들도 그런지 수업 10분 전에는 꽤 많은 자리가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아침 첫 시간이라 그런지, 강의실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커피를 한 컵씩 들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뭐 그러려니 했다. 수업 시간도 아닌데, 강의실에서 커피 마실 수도 있지. 


그런데, 수업 중에도 계속 커피를 마시면서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어라? 느낌이 조금 이상했다. 한국에서는 대학교는 물론이고 편입 학원이나 토플 학원 수업을 들으면서도 수업 중에 교수나 강사 앞에서 커피를 홀짝거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야, 과연 캐나다는 자유분방하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후 근처에 있던 동기가 부스럭부스럭 가방에서 뭔가 꺼낸다. 뭐지? 수업 중에 시끄럽게? 하면서 교수 눈치를 보았는데, 교수님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계셨다. 대체 뭘 꺼내는 거야? 생각하며 보았더니 캐나다의 유명한 커피 체인점 Tim Horton's 에서 파는 아침 샌드위치였다. 


그러더니, 먹기 시작하는거다. 계속 종이를 부스럭 거리면서 먹는다. 교수가 수업을 하든 말든, 근처에 앉은 내가 시끄러워서 눈쌀을 찌푸리든 말든, 그냥 먹는다. 아니, 수업 시간에 밥을 먹는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되는 거였다. 이 녀석 뿐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하나 둘씩 샌드위치를 꺼내서 먹기 시작했으니까. 아이들을 키우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캐나다는 고등학교 수업에서도 수업 중 식사를 제지하는 않는 곳이었다. 


교수님은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내가 신경이 쓰였다. 불편했다. 교수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동료 학생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첫 수업부터 마음은 가시방석이었다. 


며칠 후 계약법 수업을 마치고 식당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 몇 명과 같은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로스쿨 식당이니 교수님들도 많이 오시는데, 그 날 계약법 교수님이 오셨다. 그런데 갑자기 같은 테이블에 앉은 녀석 하나가 주문하러 가는 교수님을 불러세웠다. 질문이 있단다.  


아니, 교수님 주문이라도 할 때를 기다리지 않고... 무례하게... 하고 생각했는데, 교수님은 바로 우리 테이블로 다가와 옆에 서셨다. 


나는 당연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냐고? 교수님이 옆에 서 계시니까. 


그런데, 주위 학생들이 놀라는 표정으로 물어본다. "밥 먹다말고 어디가?"


어디 가긴. 교수님이 서 계시니까 나도 서는 거지. 당연한 거 아니야? 생각했는데, 아무도 일어서지 않는다. 심지어는 교수님도 서 있는 나를 흘깃 이상하게 보시고는 그 학생의 질문에 답변을 주고 계셨다. 교수님이 서 계시고 학생이 앉아 있는 것은 캐나다에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벌떡 일어선 내가 이상한 것이었다.


그랬다. 캐나다 로스쿨에서 나는 꼰대였다. 아직 학생이지만 꼰대였다. 그래도 3년 로스쿨 생활을 하면서 한국에서 몸에 밴 꼰대티를 조금 벗기는 했지만, 졸업할 때까지 캐나다 친구들의 눈에 나는 꼰대였고 아무리 눈높이를 맞추려고 해 보아도 꼰대의 탈을 완전히 벗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로스쿨을 졸업하고 로펌에서 10개월 연수도 마쳐가면서 고민을 했더랬다. 동기 중에서 50-70% 정도가 계속 같이 일하자는 오퍼를 받는다고 하는데, 이리보고 저리 보아도 내가 그 중에 낄 확률이 없어 보여서다. 두 번의 여름 방학을 함께 보내고, 10개월의 연수 기간을 함께 보내보니, 나보다 못한 동기는 없었다. 


일이야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했지만, 일단 영어도 아직 버벅 거리는데 그 많은 다른 좋은 연수생을 두고 나를 뽑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말이다.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캐나다에서 좋은 로펌 경력 몇 년은 있어야 할텐데. 고민은 있으나 답은 없었다. 


그런데, 내게 오퍼가 왔고, 그렇게 나는 내가 바라던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변호사로 일을 시작한 지 몇 달 뒤에 인사팀 담당자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내가 말했다. 나는 내가 안 뽑힐 줄 알았어. 그랬더니 그 사람이 말해 주었다. 


파트너 변호사가 부르면,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더라도 너는 꼭 메모할 것을 가지고 오더래. 그래서 너한테는 두 번 말할 일이 없더래. 


그건 첫 직장 부장님께 배운 것이었다. 윗 사람이 부르면 일을 시키는 것이든, 농담을 하기 위해서든 반드시 필기도구를 가지고 갈 것. 수첩이 없으면 포스트잇이라도 들고 갈 것. 


어떻게 보면 그것도 꼰대 짓 중 하나일 수 있겠지만, 다행히 그걸 꼰대 짓으로 보지 않은 것이었다. 그 꼰대 짓이 나를 다른 동료들과 차별화해 준 것이었다. 그 후로 캐나다 로펌에서 느낀 거지만, 남에게 꼰대 짓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면, 꼰대 짓 하는 것을 나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신기해 하기는 했지만 싫어하지는 않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무심코 한 꼰대 짓 덕분에 취직에 성공하고, 그 핑계로 나는 그 후 쭈-욱 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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