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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May 19. 2024

50세에 로스쿨에 입학한 한국 할머니

세상에서 내게 용기가 되는 단 한 사람

나는 주기적으로 로스쿨 입학 설명회를 개최한다. 당연히 로스쿨을 가고 싶어하는 분들이 주로 오시는데, 나이 많은 이민 1세부터 중학생까지 연령층은 다양하다. 봉사 차원에서 하는 것이니 물론 참가는 무료지만 장소의 제한이 있으니 선착순으로 참가자를 받는다. 올해는 세미나 당일에 비가 와서 많이 못 옷 보시는 분들이 계시겠구나, 싶었으나 올해도 대기자들이 계셨다.


예전에는 로스쿨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웬만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니, 크게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는데, 그래도 참석자는 꾸준하다. 이번에도 로스쿨 합격자와 로스쿨 1학년을 마친 학생을 섭외해서 나까지 3명이 함께 진행했는데, 로스쿨 준비자, 로스쿨 학생, 그리고 변호사가 세미나를 하니 로스쿨 웹사이트에는 나오지 않는 경험을 듣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 중 로스쿨 1학년을 마친 학생은 Wetern University Law School에서 1학년을 마친 학생이었는데, 이 학생의 LSAT 성적은 165로 나쁘지 않았으나 학점이 3.4로 로스쿨 입학생 치고는, 특히 Wetern University Law School 입학생 치고는, 학점이 높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학생은 로스쿨 진학에 성공했고, 지난 학기에는 모의 재판에서 우승도 했다. 


며칠 후에 어떤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딸이 로스쿨을 정말 가고 싶어했는데, 학점이 3.7은 되어야 한다고 해서 포기하고 있다가, 이번 로스쿨입학 설명회에 등 떠 밀려서 왔다고 했다. 그런데, 3.4로도 입학이 되었다는 것을 듣고, 또 그 학점을 받은 학생도 모의 재판에서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로스쿨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서 그 학생도, 어머니도 세미나 주최 측에 감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고민하던 때의 기억이 하나 떠 올랐다. 내가 40에 로스쿨을 가는 것이 좋은 결정인지 만용인지 갈피를 못 잡고 왔다갔다 하고 있을 때 한국계 신문에 기사가 하나 났다. 50세에 University of Ottawa Law School에 입학한 한국인 1세 할머니 한 분이 이제 로스쿨을 졸업하신다는 기사였다. 


아, 이 분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상태에서 로스쿨을 가셨구나.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 기사를 보고 훨씬 쉽게 로스쿨 진학을 결정할 수 있었다. 아마도 학점이 낮다는 그 학생도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학점 낮은 학생이 고마워할 사람은 그 로스쿨 학생이 아니고, 세미나를 개최한 나도 아니고, 따로 있다. 


그 학생이 감사해야 할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누군가에게 동기가 될 만한 일은 항상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그런 사례를 찾아 보기도 쉽다. 신문 기사든 유튜브든 책자의 형태이든 동기가 될 만한 이야기들은 이제 차고 넘친다. 오죽하면 성공팔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대부분 듣고 잊혀진다. 그 이야기를 각자의 행동에 반영하는 건 언제나 소수다. 


이번에 실시한 로스쿨 입학 세미나는, 비록 선착순이긴 했어도 모든 한인들에게 열려 있는 세미나였다. 그런데, 이유가 무엇이었든 그 학생은 로스쿨을 포기한 상황에서도 그 세미나를 듣고자 신청했고, 날씨가 궂은데도 참가를 했고, 그래서 그 곳에서 희망을 찾았다. 


그 학생이 앞으로 로스쿨 준비를 하고 로스쿨에 입학할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건 학점 3.4로도 로스쿨에 입학하고, 입학해서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로스쿨 학생에게 감사할 일이 아니라, 동기를 부여받을 자리를 찾아보고, 궂은 날씨에도 그 자리에 시간내서 참석하고, 참석해서 남들은 흘려들을 이야기에서 동기를 부여받고, 거기에 노력을 더해서 이루어 낸 스스로에게 감사할 일이다. 


어떤 이야기에서 동기를 부여받았다면, 내게 동기가 되어준 사람 보다 그 이야기에서 동기를 찾아낸 스스로를 칭찬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세상에서 내게 마지막 용기가 되고 내게 위안이 되는 단 한 사람은 나 자신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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