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광훈 Jan 09. 2024

Moment of Truth - 15초의 마법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은 회사만의 것이 아니다

Moment of Truth (MOT) 는 직역하면 '진실의 순간' 혹은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인데, 여러가지 상황에 사용된다. 요즘은 마케팅에서 많이 보이는 듯 하다. 


마케팅에서 MOT란 고객이 어떤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 혹은 브랜드를 접하고 해당 제품, 서비스, 브랜드에 대한 인상을 형성하게 되는 순간을 말한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실험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 혹은 브랜드를 접한 첫 5-15초 사이에 고객의 인상이 형성된다고 한다.  


https://www.gainge.com/contents/videos/2746


판매망이 점점 다원화 되는 이 시기에, 이 MOT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애쓰는 기업들이 많고, 부서마다 MOT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MOT는 꼭 상품의 디자인이나, 상품의 성능에 대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객과의 접점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MOT가 있다. 예를 들어, 고객 불만 상담센터에는 고객의 전화를 받으면 어떤 말로 시작하고,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어떤 말로 끝내야 하는지를 매뉴얼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꼭 대외적인 활동만을 포함하는 것도 아니다. 인사팀이라면 신입 사원을 위한 welcome kit 를 준비한다든지, 신입 사원 교육 프로그램을 짠다든지 하는 것도 신입 사원의 마음을 얻기 위해 MOT 활용 방안의 하나다. 


그런데, 이 MOT가 꼭 회사만의 것일까?


내가 첫 회사를 떠나 자리를 잡은 두 번째 회사는 독일계 다국적 기업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사무실 어느 구석에 있는 관상수 하나가 잎에 먼지가 잔뜩 쌓여 있는 채로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 담당자가 없었든지, 관리 부서에서 신경을 못 쓴 것일 테다.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받은 관상수가 워낙 많았으니. 물도 제대로 안 주는 것이 분명했고, 얼마 뒤에는 시들어서 버려질 것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식물병리를 전공했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일단 물을 주고 잎을 닦아 주기로 했다. 하나씩 잎을 닦아 주고 있는데, 사장님이 지나가시는 것다. 그 쪽은 사장님 동선이 아니었는데. 


아, 근무시간에 이게 뭔 뻘 짓이야.. 생각하시겠구만, 하고 있었는데, 사장님께서 멈줘 서더니 말씀하셨다. 


아주 훌륭한 일을 하고 있구만.


사실 회사 입장에서야  관상수야 버리고 사면 그만이니, 훌륭한 일은 아닐 거였다. 다만, 사장 입장에서 보기에 회사 일에 신경쓰는 것처럼 보이는 회사원이 있으니 칭찬을 해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얼마 뒤 나는 이사급들만 맡던 suplier managers 직책 중 한 자리를 과장으로는 처음으로 맡게 되었다. 파격적인 인사였다고 했다. 


나뭇잎을 닦던 그것만이 이유는 분명 아니겠지만, 내가 관상수 잎을 닦던 그 순간이 어쩌면 내가 사장님에게 나를 어필하는 MOT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MOT는 꼭 회사만의 것이 아니다. 모든 직장인이 회사를 상대로 하는 MOT를 갖는다. 


나는 우연히 그렇게 되었고, 사실 많은 MOT가 계획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사장님과의 접촉이야 매일 회사 안에서 수도 없이 이루어지던 일이지만, 그 모든 순간이 나의 MOT는 아니었다. 하지만, 직원인 나의 모든 MOT를 우연에 맡길 필요는 없다. 


MOT는 계획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를 계획하고 회사에 보여줄 수 있다. 회사가 고객과의 접점에서 MOT를 관리하려고 하듯이, 직장인도 회사를 상대로 그렇게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면접이다. 면접은 많은 경우 스펙 싸음이라기보다는 MOT의 싸움이다. 하지만, 직장인의 삶이라는 게, 입사에서 끝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직장 생활은 안으로는 나의 실력을 쌓는 게임이고, 밖으로는 MOT를 쌓는 경주다. 


무슨 소리지? MOT는 첫 15초에 결정된다고 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건 맞다. 하지만, MOT는 본질적으로는 축적이 가능하다.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MOT는 길어야 첫 15초에 결정된다고 하니,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고, 또 강력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실패하면 매출로 이어지지 않거나, 재 구매로 이어지기 어렵다. 


하지만, 회사에 대한 나의 어필은 약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MOT를 축적해 낼 수 있다. 게다가, 사람들은 과거를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에, 최근의 MOT로 과거의 MOT를 덮거나 희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요즘은 굳이 회사를 상대로 MOT 를 관리하기 보다는 그냥 그만 두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아진다고 한다. 추세라고 하니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MOT 관리를 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는 없다는 건 알았으면 좋겠다. 


MOT 관리는 더 이상 싫다고, 귀찮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어디에서는, 내가 피할 수 없이 마주칠, 그래서 해결해야 하는 녀석이다. 뭐든 닥친 후에 관리하려면 어렵다. 다만, MOT를 준비하는 건 쉽지 않다. 


15초의 마법이지만, 그 15초를 위해 150일을 준비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OT를 준비해야 할까 - 라는 생각이 들 지도 모른다. 대답은 YES 다. 이제는 Zero MOT 라고 해서 고객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접하기도 전에 인상이 결정되는 경우들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 Google review 처럼 말이다. 15초의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시대로 가고 있다는 뜻이다. 


모든 평가받고, 평가가 공개되는 시대에, MOT는 회사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직장인 입장에서도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한 개념이 될 듯 하다. 그러니, 피하기 보다는, 지금부터 MOT를 상상하고, 계획하고, 보여주는 준비를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