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방패를 키워주는 교육
올 겨울, 토론토는 지구 온난화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는 중이다. 눈다운 눈이 1월 12일 밤에야 처음으로 내렸다. 예년 같았으면 지난 해 11월부터 이미 여러 번 폭설이 내리고, 집 앞에는 눈이 무릎 높이까지 쌓여 있어야 하지만, 올해는 아직도 푸른 잔디를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처음 캐나다를 왔던 2007년은 그렇지 않았다. 다른 분들 말씀으로는 누구나 처음으로 낯선 땅 토론토에 떨어진 해가 항상 가장 추운 해로 기억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2007년 겨울은 몹시 추웠다. 애들 초등학교를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는 날이 여러 번 있었다.
캐나다 초등학교는 매일 밖으로 나가 아이들을 자유롭게 놀게하는 야외 활동 시간, 일종의 체육 시간 같은 것이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가 놀게 하는데, 물론 예외는 있다. 폭우가 쏟아지는 등 날씨가 좋지 않은 경우다. 하지만, 날이 추운 건 예외가 아니다.
어느 날, 기온이 섭씨 20도 밑으로 내려가서, 학교도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보냈는데, 아이들이 와서 하는 말이 그 날도 야외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너무 추웠는데, 교실로 보내주지를 않아서 1시간 내내 밖에 있었다고 했다.
아니, 가뜩이나 감기에 잘 걸리는 애들을 영하 20도 이하라는 이 추위에 밖에 나가서 1시간이나 떨게 하다니, 선생님들 제정신이야?
어이가 없어서 학교에 전화라도 할까 하다가 참았다. 더 어린 학년들도 예외가 없었다니, 어쩌겠는가. 나중에 오타와로 옯겨가 보니, 영하 30도가 넘어도 그 놈의 야외 활동은 취소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좋은 점이 하나 있었다.
어려서 그렇게 커서 그런지, 아이들이 추운 건 여전히 너무너무 싫어하는데, 그렇다고 추운 걸 무서워 하지는 않는다.
추위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할 일을 피하게 하는 장벽도, 핑계도 되지 않는다. 싫어하지만, 피하지 않는다. 그게 얼마나 큰 자산인지를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캐나다는 실패가 흔한 나라다. 예를 들어 대학을 들어가서 4년만에 딱딱 졸업하는 아이들이 한국처럼 흔하지 않다. 학교를 옮기고, 과를 바꾸고, 중간에 그만 두는 학생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대학 졸업장 따는데 10년씩 걸리는 일도 흔하고, 그걸 보는 한국 1세 부모들은 가슴이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다. 자녀들이 실패하는 것을 매일 보는 것도 고역이다.
그런데 이 '실패자'들이 절망하지 않는다. 바로 일어나서 다른 것을 한다. 물론 또 실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그러면 그러려니 하고 또 다른 걸 시도한다.
미국에서 도시락 사업으로 거부가 되었다는 화이트폭스의 김승호 사장이 강연하기를 '사업이 망해도 팔굽혀펴기 100개를 할 수 있는 체력이 있으면 언제든지 재기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분뿐이 아니라 사업이든 학업이든, 모든 일의 근간은 체력이라고 강연하시는 분들의 영상을 요즘 유튜브에서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캐나다는 어린 학생들에게 영어나 수학을 가르친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학교에 모아 놓고는, 사실은 언젠가는 겪을 수 밖에 없을 실패를 이기고 일어날 수 있는 몸의 근간을 키워 주는 것을 더 중요한 교육 목표로 삼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나이도, 체력도 핑계가 될 수 없는 상황을 매일 몸으로 겪다보니, 그렇게 키워진 몸이 마음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어쩌면 학업이든, 사업이든, 한국에서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재기하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어려서 몸을 충분히 단련시키지 않아서, 그래서 한 번의 실패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이 방패 없는 마음에 새겨지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일어나지 못하는 핑계를 받아들여 주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리고 내 아이들이 언젠가 한 번은 실패할 것 같다면, 또 그 때 아이들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어려서 아이들은 밖에서 돌게 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마음의 방패를 기를 수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