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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Dec 05. 2023

나에게 예의바른 사람이 되도록

주어진 기회를 소중히 여기게 하는 캐나다 교육

핸드폰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는 요즘에는 쓸모가 없다고 하지만, 불과 20년 전만해도 길거리에 있던 공중전화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공중전화 박스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 공중전화 박스에는 두 가지 메시지가 항상 붙어 있었다. 


"용건만 간단히"
"통화는 3분안에"


그러다 보니, 공중전화는 3분 안에 끝내는 것이 일종의 예의처럼 여겨졌고, 3분이 지나도 용건이 끝나지 않아 동전을 추가해야 할 때면, 뒤에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목례라도 하고 사과를 표현해야 했다. "거 좀 빨리빨리 끝냅시다!"라며 기다리다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아니, 어떻게 모든 통화를 3분 안에 끝낸다는 거야?


아마도 공중전화를 사용해 보지 않은 세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물론 3분이 넘는 용건도 많다. 그럴 때는 우선 3분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은 뒤에 맨 뒤에 가서 줄을 섰다가, 다시 차례를 기다려 두 번째, 그렇게 다시 세 번째 통화를 하는 것이 예의였다. 다른 사람들도 3분안에 전화를 끊으려 노력하니, 내 차례도 오래지 않아 다시 오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나도 최대한 3분 안에 전화를 끊으려고 했고, 앞 선 사람들이 3분 넘게 통화를 하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유럽에 출장 가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공중 전화도 드물고, 공중 화장실도 돈 내고 사용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에이, 설마... 하고 갔는데, 정말 그랬다. 화장실을 쓰는데, 한국 돈으로 환산해서 천원 정도를 내면서 화들짝 놀랐고, 거래처에 전화할 일이 있는데 호텔을 나오니 당최 공중 전화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가까운 광장에 롯데월드에서 인기있는 탈 것 앞에 줄 서 있는 것처럼 긴 줄을 발견했는데, 그게 바로 공중 전화 줄이었다. 호텔로 갈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니 줄을 섰는데, 암만 기다려도 줄이 줄어들지를 않는 거였다. 도대체 왜 이렇게 줄이 줄지를 않나, 하고 살펴보니, 사람들이 3분이 지났는데도 전화를 끊지 않는거다. 


3분은 커녕, 10분, 20분이 지나도록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그러니, 줄이 줄지 않을 밖에. 아니, 이렇게 긴 줄이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어떻게 '용건만 간단히' 하지 않고 마치 안방 전화를 쓰듯이 그렇게 전화질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 때 나는 거기에서 유럽인들의 '의식 수준'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래처에 이 이야기를 해 주면서 "뒤에 그렇게 긴 줄이 있는데 중요한 것만 말하고 끊는 것이 예의 아니냐"고 물어보니 "공중 전화라도 지금 전화기를 잡은 사람이 충분히 필요한 용도로 전화를 다 쓰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예의 아니냐" 라는 답이 돌아와서 예의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느꼈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도 상황이 비슷했다. 캐나다에서는 냉장고를 수리하려고 해도, 의사를 만나려고 해도, 오래 기다려야 한다. 마치 유럽 공중전화 앞에서 하염없이 차례를 기다리던 것 같은 경험을 매일, 매주, 매달 겪게 된다. 예전에 한 한국 교수님은 6월에 암 진단을 받은 후에 12월이 되어서야 전문의를 만날 수 있었고, 그 사이에 암이 너무 많이 전이되었다며 억울해 하기도 하셨다. 


그러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일단 기회가 주어지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 기회에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 기회가 다음에 또 올 지, 오지 않을 지를 알 수가 없으니 할 수 없다. 


다시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는 두 번째 기회를 얻는 것이 참 쉬웠다. 아이스크림 사는 걸 잊었네 - 슈퍼에 다시 갔다 오면 되지 뭐. 아, 의사한테 이거 물어봤어야 하는데 - 내일 다시 가서 물어보면 되지 뭐. 아직 전화로 용건 다 말 못했는데 - 줄 섰다가 전화 다시 하지 뭐. 


알지 못했는데, 두 번째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보니, 지금 주어진 기회를 소홀히 하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 기회에 충실하지 못하고, 마치 다음 번에도 같은 기회가 늦지 않게 찾아 올 것을 당연하게 기대하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 내게 주어진 기회를 다 잡으려고 애쓰는 것이, 마치 줄이 긴 공중전화를 붙잡고 10분이고 30분이고 내 용건을 다 보겠다는 이기적인 행동처럼 여겨진다. 


어쩌면 남에게 이기적이고 예의없어 보일까 싶어 지금 주어진 기회를 소홀히 하는 것이야말로 나에게 예의없는 사람이 되는 길인 것이 아닐까. 


두 번째 기회는 없는 것이라 여기기에 기회를 잡았을 때 최선을 다 하는 것이, 혹시 나를 예의 바르게 대하는 방법인 것은 아닐까. 


나중에 생각하니 유럽의 그 긴 공중전화 줄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서, 앞 사람이 전화를 길게 한다고 해서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 혹여 줄 선 사람이 화를 낸다고 해서, 지금 전화를 잡은 사람이 전화를 빨리 끊었을리도 만무이긴 하지만, 어쨌든 남에게 주어진 기회도 소중히 생각해 주는 문화는 배울 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아니고, 비록 매일 매일의 삶을 매우 불편하게 하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두 번째 기회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지금의 기회에 충실하게 하는 캐나다의 교육은 나름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두 번째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은 꼭 축복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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