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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Nov 06. 2023

어설픈 재능도 꽃이 되는 캐나다

보듬으면 꽃이 된다

내가 아는 한인 아주머니 중에 자칭 수포자가 있으셨다. 어려서부터 산수든 수학이든 이 분야는 너무 어려우셨고, 게다가 그 문제와는 별개로 학업을 유지할 형편이 되지 않아 고등학교부터 학업을 포기하셔야 했다. 


한국에서 남편을 따라 이주한 캐나다에서 이 아주머니는 남편을 잃고 홀로 힘겹게 아들 둘을 키웠다. 아주 잘 키웠다. 하지만, 아이들이 다 크니 못했던 공부를 하고 싶으셨다. 


대학 진학률이 한국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고, 고등학교도 가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캐나다에서는 성인이 된 후에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Adult School이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Adult School은 대부분 정부 지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비가 저렴하거나 무료이고 고등학교 과정에 대한 졸업장을 제공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 아주머니는 어차피 영어도 이대로는 안 되겠고, 영어 뿐만 아니라 교과 공부도 하기 위해서 Adult School에 등록하시고 영어로 공부를 시작하셨다. 


그런데, 두 주쯤 지나자 이 아주머니께서는 본인에게 별명이 붙었다며 좋아하셨다. 별명은 Genius - 영재라는 것이다. 영어도 그렇게 편하지 않으신 분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셨기에 그런 말을 듣나 했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수학은 너무 잘 해서 영재라고 불리게 되었다며 기뻐하셨다. 그러려니, 했다. 한국에서 온 학생들이 캐나다에서 수학 영재 소리 듣는 건 흔한 일이다. 산수 시험에서부터 계산기를 쓰게하는 캐나다에서는, 구구단만 외워도 고등학교까지 영재 소리 들을 수 있다. 


그런데, 학기가 시작되고 몇 주후에 Adult School 수학 선생님께서는 이 아주머니께 "직접 다음 수업을 진행해 보시면 어떻겠냐 (가르쳐 보라는 뜻)"라고 하셨다고 한다. 본인을 수포자라 여기던 아주머니는 물론 극구 사양하셨으나 그 선생님은 이 아주머니를 다독이고 또 다독여서 결국 한 시간 짜리 수학 수업을 영어로 진행해 보게 하셨다. 


내가 수학을 가르치다니 - 그 아주머니는 감격했고, 그 이후로 수학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하셨다. 


모든 부모는 자기 자녀가 어릴 때 다 영재인 줄 안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지만, 사실 아무 재능도 없는 아이를 찾기가 더 어렵다. 누구든 남과 다른 재능들이 있다. 


문제는 그 재능이 어설프다는 데에 있다. 


남보다 조금 나을 지는 몰라도, 그것으로 과학 경시대회 수상을 하거나, 미술 경시대회에서 수상을 하거나,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을 하기는 어렵다는 데에 있다. 조금 잘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만, 별로 차별화 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고, 그 재능으로 성공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닌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한국에서는 그런 어줍잖은 재능, 어설픈 재능들은 꽃이 되기는 커녕 꽃망울도 맺지 못한다. 어쩌면 오히려 어줍잖은 재능으로 절망할 일이 더 많으니 그런 재능은 없느니만 못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아무리 어설픈 재능이라도 한 번은 꽃을 피울 기회를 준다. 예쁜 장미가 될 수는 없을 지라도, 작은 안개초 꽃 한 송이라도 피울 수 있게 해 준다. 예의 그 한국 아주머니에게 수학 영재라는 별명을 붙어 준 것으로 모자라 수업까지 진행하게 한 것이 그런 일이다. 그런 일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항상 일어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수업 시간에 도대체 왜 저런 발표를 듣게 하고, 도대체 왜 이런 것에 상을 주면서 수업 시간을 낭비하나. 그 시간에 진도를 나갔으면 벌써 다음 학기 분량까지 끝냈겠다... 라고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남의 아이들은 물론이고, 우리 아이들도 그 낭비된 시간에 대한 혜택을 크게 받았다. 캐나다의 학생들은 대부분 한 번이라도 본인이 꽃이었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있다. 적어도 한 번씩은, 적어도 학교 내에서, 아니면 학급 내에서, 그것도 아니면 더 작은 동아리 모임에서라도 크게 칭찬받고 크게 인정받을 기회를 주다보니, 아이들 마음 밑바닥을 받쳐주는 자존감과 자신감이 한국의 아이들에 비해 훨씬 높다. 


그 아주머니도 수학 경시대회에 나가 상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Adult School에서 한 번 수업을 진행했을 뿐인데, 수 십 년 된 수포자 열등감을 떨쳐내셨다. 한국에서 오래 동안 받은 마음의 짐을 그 한 시간에 다 털어 내셨다. 그렇다고 그 아주머니의 수학 실력이 한국에서 보다 월등히 나아진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어설픈 재능도 한 번은 꽃으로 핀다.


어쩌면 아이들 교육에는 영어나 수학보다도 그렇게 한 번쯤은 어설픈 재능으로라도 꽃을 피웠던 기억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캐나다 청년들이 한국의 청년들보다 도전에 더 적극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보다 크기 때문일 듯 하고, 이 근간은 '내가 꽃이 되었던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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