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교육에서 하나만 건진다면
내가 한국을 떠나 올 때만 해도, 한국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의약품이 하나도 없는 나라였다. 동물 약품도 상황은 마찬가지였고, 그나마 작물보호제 (흔히 농약으로 불리는)는 딱 하나가 한국의 자체 기술로 개발되어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당시 우리가 먹는 약은 다 외국 기술로 개발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한국에도 기회가 적어도 한 번 있었다. 내가 회사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대기업 중 한 곳에서 획기적인 신약 후보를 발굴해 냈던 거다. 임상 시험 결과도 매우 좋아서, 굴지의 다국적 의약품 회사들이 앞다투어 협업을 제안했다.
그 대기업은 그냥 약 개발비만 받고 약을 넘기고 싶지 않았다. 기존에 가장 잘 나가던 약보다 더 좋은 성능을 자랑했고 더 저렴한 가격이 가능하다고 보았기에, 판매가 좋을 것이라 예측했고 그래서 개발비 보상 보다는 판매에 대한 로열티를 원했다. 약제에 대한 권리를 싸게 넘기는 대신 약이 판매되는 물량에 따라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을 제안한 회사와 계약했다.
그 다국적 기업은 해당 신약이 대상으로 하는 병에 대해서 기존에 가장 잘 팔리던 (그러니 잠재적 최대 경쟁자가 될) 약제를 생산, 판매하는 회사였는데, 신약의 효능이 훨씬 우수하니 기존 약제를 쉽게 대체할 것이라고 한국의 대기업은 생각했다. 게다가 이미 경쟁 약제를 오래 판매해 온 회사이니 시장 확보도 용이할 것 아닌가.
그 뿐만 아니라, 기존에 이미 많은 자금을 쏟아 부은 터였는데, 다국적 기업이 예상하는대로 매출이 이루어지고 로열티가 들어오면 수익 창출은 물론이요, 향후 추가 약제 개발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한국의 대기업은 기대에 부풀어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그런데, 웬걸. 한국 대기업으로부터 신약에 대한 전권을 이양받은 이 다국적기업은 신약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생산이나 판매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폐기해 버린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새로운 약제를 개발하고 등록하고, 공장 설비를 새로 하는 등의 비용을 투자하는 것보다 기존 약제를 계속 파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그 다국적 기업은 더 좋은 약제를 더 저렴한 비용에 공급한다는 사명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 대기업에 준다고 한 건 판매된 물량에 비례한 금액인데, 판매가 없으니 돈을 줄 이유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다국적 기업은 돈 한 푼 안 들이고, 최대 경쟁자를 시장에서 지워버렸고, 한국의 대기업은 그 동안 투자한 돈을 모두 날렸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래도 명색이 한국의 3대 대기업이니, 사내에서 사외에서 내노라 하는 변호사들을 써서 계약서를 검토했을 텐데, 왜 이렇게 큰 구멍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한 번도 신약을 개발하고 계약을 해 본 적이 없다는 문제도 있었겠지만, 한국의 교육에도 책임이 있다.
나는 한국 회사에서 일본 회사와의 계약을 담당했다. 쌍방이 해야 할 일을 확실히 하고, 이익의 분배를 확실히 하고, 그렇게 계약의 이행에 서로 최선을 다해 원하는 결과를 이루어냈다. 계약은, 그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는 용도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캐나다의 로스쿨에 가서 계약법 자체를 배울 때까지만 해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판례들을 접하고 보니, 사실 계약서에서 쌍방이 이루고자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신의성실이 중요한 경우는 사실 계약이 없어도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중요한 것은 계약이 이행되지 않았을 때의 처리였다. 세상에는 계약서를 이행하지 않기 위해 계약을 하는 사람과 회사가 너무 많았고, 계약을 계획대로 이행하지 않음으로 이익을 보기 위해 만드는 계약서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보다, 계획에 없는 것을 계획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토론토에서 중국인 파트너들과 동업을 하는 한국 분들 중에서 빈 손으로 회사를 빼앗기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고, 소송을 고려하는 배부분의 고객들이 유태인 변호사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아도 그렇고, 중국인과 유대인 사회에는 이렇게 계획에 없는 것을 계획하는 교육이 가정에서 그리고 그 공동체에서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계획되지 않은 상황을 계획하는 능력이 우리보다는 더 좋은 것이다.
하지만, 중국인이나 유태인식으로 교육하지 않더라도, 캐나다에서 교육받은 고객들이 사고하는 방식을 보면, 변호사인 나도 간과한 계약의 헛점을 짚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직 사회 경험이 별로 없는 젊은이들인데도 그렇다.
캐나다인들이 헛점을 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냥 한 가지 질문을 한다.
What is the exit plan?
그리고 exit plan 하에서도 손해가 없는 경우에 비로소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이 건 변호사 자격이 있고, 판례를 얼마나 많이 아느냐의 게임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이 생활에서 배워온 것이고, 어디서인지는 모르지만 캐나다 교육의 어디에선가 그들은 exit plan을 염두에 두도록, 계획되지 않은 것을 계획하도록 교육을 받는 것이다.
좋은 대학을 준비하다가 좌절하는 한국의 많은 고3들을 보면 아마도 exit plan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없지 않을까. 좋은 회사에 입사 준비를 하는 많은 예비 직장인들이나, 대기업에 취업한 새내기 직장인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Exit plan을 짜는 습관 하나만 캐나다에서 건져도, 아이들을 위해서는 참 남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