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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Sep 12. 2023

한 학기 빨리 가려다가 그만 11년을.

빨리 가기와 멀리 가기

캐나다는 미국처럼 9월에 학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캐나다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모든 부모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한 학기를 빨리 걸 것이냐, 한 학기를 늦게 갈 것이냐.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7월에 왔으니, 내게도 선택지가 두 가지 있었다. 9월부터 다시 1학년 1학기로 시작을 할 것이냐, 아니면 한국에서 한 학기를 마치고 왔으니 2학년 1학기로 들어갈 것이냐. 학교 측에서는 부모의 결정을 따른다고 했다. 


나는 누가 뭐래도 한국인 아닌가 - 당연히 빠른 길로 갔다. 그렇게 작은 아이는 한국 친구들보다 한 학기 빠른 교육을 받게 되었다. 비록 한 학기지만, 만일 한국 친구가 미국이나 캐나다 대학으로 유학을 온다면 작은 아이보다 한 학년 밑으로 와야 하니 1년을 건너 뛴거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아이가 2학년을 잘 버틸까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나이 때에는 1학년이든, 2학년이든 적응하는 데에는 별 차이가 없었을 듯 하다. 수학이나 과학은 캐나다 2학년이 한국 1학년만 못하니 문제는 영어였는데, 그것도 금방 극복이 되었다. 


그래서 작은 아이가 고 3이 되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나의 결정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할 즈음 한국에 꽂힌 딸이 한국의 의대에 지원을 하고 싶다고 한다. 국어도 불편하지 않고 한자도 좀 시켰으니 한국에서 공부하는 거야 따라갈 수 있으려니... 했지만, 문제는 한국 고 3들도 가기 힘든 의대에 어떻게 캐나다 대학 출신이 진학할 수 있을 지였다. 


작은 아이는 한국의 입시 요강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열심히 이것 저것 알아보더니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외국에서 12년 이상 교과 과정을 이수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특채가 있는데, 자신은 초등학교 2학년터 대학교까지 11년이라, 딱 일년이 모자라서 신청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수능을 볼 수는 없으니. 


작은 아이가 안타까워하니 괜히 미안해졌다. 한 학기 앞서간다고 좋아했는데, 오히려 그 녀석이 원하던 기회를 날린 셈이 되었다. 다행히 이 녀석은 엄마, 아빠가 1학년으로도 넣을 수 있었다는 걸 모르니, 원망은 안 하고 있을 듯.


알아보니 그 특채는 사실 내가 캐나다 왔을 때에도 있던 제도인데. 11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1학년 1학기로 시작을 하련만.


빨리 가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더 큰 그림을 보지 못했다. 


어쩌겠냐. 아빠가 시야가 좁아서 미안하다. 내가 캐나다에 이렇게 오래 머무르게 될 줄 몰랐다. 네가 한국의 의대에 지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달려가기에도 바빠서 멀리 보지 못했다. 빨리 가느라 눈 앞만 보고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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