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영재교육에는 해피엔딩이 드물다
내 아이 중 한 명은 어려서부터 유난히 정리를 하지 못했다. 산만했다. 아빠, 엄마, 선생님 말을 지독히도 듣지 않았다. 게임만 좋아하고 노력이 들어가는 일을 즐기지 않았다.
그나마 학교 생활이 엄격한 한국에서도 그랬으니, 방임형 교육에 가까운 캐나다에서는 더 거리낄 것이 없어서, 숙제를 안 하는 건 기본이고, 수업도 빠지고, 아빠 엄마의 추궁을 피하느라 거짓말도 쑥쑥 늘어갔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야 그렇다 치더라도 고등학교 때에는 뭐라도 좀 해야 대학을 가지 않겠나. 캐나다는 고2부터만 정신을 차려도 얼마든지 원하는 학교에 갈 방법들이 있으니, 고 2가 되기 전에, 아직 고 1일 때 이 녀석에게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교에서도 말썽만 부리던 이 녀셕의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이 아이를 영재 테스트를 받게 해 보자고 하는 거다. 의외였지만, 그래도 희망적인 말이었다. 그래, 정리정돈 못하고 산만하고 게임만 좋아했던 것이 영재성의 발로였다면, 뭐, 좋다 - 아빠 엄마가 영재가 아니라서 몰라 본 것이니 다 용서해 주마.
그 때만 해도 우리 부부는 영재 교육이라는 것에 나름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학원까지 다녀가며 준비하는 것이 영재 학교 입시 아닌가 말이다 - 영재임을 보이기 위해 학원을 다닌다는 건 좀 이상하지만, 어쨌든 영재 교육이 더 좋은 교육이고 더 앞선 교육이라는 환상은 분명 있었다.
한국식 사고를 가지고 있던 나는 테스트를 준비할 자료가 있을까 했는데, 그런 건 없었다. 해당 분야의 담당자가 영재 테스트를 1:1로 한다고 했고 테스트를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했다.
아내는 아이와 함께 테스트를 받으러 가고, 나는 사무실에서 아내의 전화를 기다렸다. 기대는 안 했지만, 기다림은 길었다. 드디어 걸려온 아내의 전화 넘어로 들이는 아이의 함성.
아빠, 저 영재래요!
기뻤다 - 그런데, 좀 미안했다. 아이의 목소리에는 그 동안 맺힌 한이 서려 있었다.
뭘 하든 구박만 받고 야단만 맞던 자신에게 아마 스스로도 자책을 하고 있었나 보다. 그 과거가 자신의 모자람이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영재이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생각이 주는 그 위안감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이는 영재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자유 방임적인 캐나다의 일반 교육보다 더 자유로운, 내 기준에서는 교육같지도 않고, 수업같지는 더더욱 않은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수업 시간에 딴 짓을 해도 건드리지 않고, 숙제는 없고,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답이라고 발표해도 진지하게 들어주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게다가 모든 교육이 무료였다. 영재반이 아닌 곳에서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볼 때는 어쩌면 특별대우, 혹은 특혜로도 보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후로 아이가 달라졌다. 가기 싫어하던 학교를 가고 싶어하고, 자신감이 생기고, 나중에는 학교 대표로 온타리오 주의 수학 경시대회까지 나가 상도 탔다. 나는 부모도 몰라본 아이의 영재성을 계발할 기회를 준 캐나다에 감사했다. 아이가 외톨이로, 패배자로 머무르지 않고, 한 번 도약학 기회를 준 것에 감사했다. 이것만 해도 캐다나에 온 가치는 있고도 남는다고 생각했다.
그 영재 교육이, 내 아이가 빌 게이츠가 되는 해피엔딩이었으면 참 좋았겠다.
그런데, 그 때는 몰랐다. 영재교육은 고등학교가 끝이라는 것을. 영재성이 있는 아이들이 다 내가 생각하던 것처럼 후대를 먹여살릴 인재들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대학교에는 영재를 위한 자리가 따로 없다는 것을.
대학교를 가니, 아이가 영재 학교 시절에 누리던 특별 대우는 없었다. 수업을 빠지면 감점이고, 숙제를 안 해도 감점이고, 말도 안 되는 답을 쓰면 여지없이 낮은 학점이 나온다. 정답이 있는 수업에 아이는 급속도로 흥미를 잃었고, 학점은 낮아 졸업마저도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그 때 생각했다. 어쩌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주어지는 영재 교육의 기회는 영재성을 키운다는 의미 보다는, 영재가 아닌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이 사회에서 소위 영재로 분류될 만한 아이들 중 영재로 성공하지 못할 대다수의 아이들이 도태되는 시기를 조금 더 오래 막아 주고, 조금 더 적은 수가 도태되게 해 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 아닐까.
내 아이는 남들보다 2배는 더 긴 대학 생활을 통해 다행히도 영재성을 버리고 취직해서 열심히, 그리고 평범하게 잘 살고 있다. 내 아이가 고등학교를 잘 버텼던 건 어쩌면 영재 학교였는지 모르지만,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 녀석이 영재반을 가지 않고도 잘 버티도록 해 주고 싶다.
영재 교육의 끝에 그 영재성을 지닌 아이들이 도달하는 곳은,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영재의 해피엔딩이 아니라서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가 선 곳이 아니라서다. 세상은, 영재들만 모여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아이들을 영재 학교에 보내려고 애쓰는 후배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한다. 아이를 지름길에 놓고 싶다면 차라리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 포기하고 학원 다니면서 검정고시 보면 되지 않겠냐고 한다. 물론 그것도 답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답은 내가 어울릴 사람들과 어려서부터 잘 어울리고, 내가 살아갈 시스템에 어려서부터 익숙해 지는 것에서 출발한다. 거기에 해피엔딩이 있다. 영재성이 있는 아이들에게, 영재 교육이 "추가"되면 약이 되지만, 영재 교육이 다른 교육을 "대체"하면 독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