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주인은 누구인가
한국인이 캐나다에서 운전을 하다보면 정말 속을 터지게 하는 놈이 하나 있다. 바로 스쿨버스다.
다른 주는 모르겠으나, 온타리오 주에서 스쿨버스는 노란색이다. 그런데 이 노란색 차의 힘이 막강하다. 아이들을 태우거나 내리기 위해 멈춰서면, 차에 Stop 사인이 들어오고 빨간 불이 켜지는데, 그렇게 되면 어떤 차도 그 차를 지나갈 수 없다. 같은 방향에서 스쿨버스를 추월해서 지나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반대편에서 오는 차들도 멈춰서야 한다. 아이들이 길을 건너갈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스쿨버스의 Stop 사인과 빨간 불이 없어질 때까지 어떤 차도 움직이지 못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아무래도 아이들이라 웃고 떠들면서 서로 인사하고 타고 내리다보면 시간도 꽤 걸린다. 게다가 보통 스쿨버스가 다니는 시간은 직장인들 출퇴근 시간과 겹치게 마련이니, 노란색 버스가 앞에 보이면 지각을 피할 수 없다.
혹시라도 '살펴보니 아이들 다 내렸는데 괜찮겠지...' 라고 임의로 판단해서 빨간 불이 켜져 있는 데에도 슬쩍 지나가면 스쿨 버스 기사가 바로 신고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스쿨버스 기사에게 경찰과 맞먹는 권위가 있어서, 신고 당하면 형법이 적용될 각오를 해야 한다.
큰 길이건 골목길이건 예외가 없다. 그러니, 한국인들은 앞에 노란 스쿨버스가 보이면 어떻게 해서든지 스쿨버스가 정차하기 전에 추월하려고 애를 쓴다. 캐나다인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는 노란 버스 뒤에 걸리면 늦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
우리 아이들은 한국 에서 유치원에 들어가자마자 길을 건너는 방법을 배웠더랬다. 먼저 신호등을 살피고, 그리고 좌우를 살피고, 차가 있던 없던 손을 번쩍 들고 길을 건너야 한다. 차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을 먼저 배운다. 자동차 무서운 줄 알고 자랐다.
인도는 '사람의 것'이지만, 차도는 '차의 것'이라고 인식하고 자랐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이렇게 과잉(?) 보호를 받아서, 자동차 무서운 줄 모르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만든 시스템이라 그런지, 캐나다는 인도든 차도든 모든 길을 사람의 것으로 인식한다. 차도에서도 사람이 먼저다. 그래서 차들에게 파란 불이 들어오고, 사람에게 빨간 불이 들어온 상황이라도 사람이 바쁘면 당당하게 길을 건너는 캐나다인이 많다.
그래도 차들이 빵빵거리지 못한다. (요즘 토론토에는 워낙 외지인이 많아 좀 바뀌기는 했고, 퀘벡 주의 몬트리올에서도 차들의 권세가 막강하다고는 들었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렇다는 뜻이다). 빨간 불에 길을 건너는 캐나다인에게 화들짝 놀란 내가 빵빵 거렸더니, 멈춰서서 한참 나를 노려보다가 (나는 바빠 죽겠는데 말이다) 내 차 보닛 (후드)에 침을 뱉고 간 적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캐나다 아이들은 길을 걸널 때 좌우를 살피는 교육을 받지 않는다. 그냥 건넌다.
그런 캐나다인들이 한국에 가면, 건널목을 건너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자에게 파란 불이 들어와도 좌우는 살펴야 하는데, 아무 경계심 없이 차도에 발을 들여 놓다가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기사를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성인이 된 후 어느 나라에서나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차도는 차의 것이라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이들이 사고 당하지 않도록 모든 길은 사람의 것이라고 운전자를 가르치는 것이 좋은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