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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Feb 26. 2024

후회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내 과거를 가치있게 만들기 

내 딸의 표현에 의하면 나는 '케이케이오엔디에이이', 즉 꼰대다. 아빠를 완곡하게 비난하는 말이지만, 별로 섭섭하지는 않다. 그러려니 한다. 내가 대학생 때에는 비록 꼰대라는 단어는 없었지만, 나도 부모님을 그렇게 대했을 테다. 나는 부모님과 다르기를 바라기에는 부모님께 면목이 없고, 내가 그걸 바랄 만큼 그렇게 염치가 없는 사람도 아니다.


꼰대답게 나는 기술에 조금 뒤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학생 때는 Fortran이니 C++이니 뭐니 해서 프로그래밍도 좀 하고, 관련 과목을 들으면 A를 받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동기 중에서는 컴퓨터를 꽤 하는 편에 속했지만, 이제는 일단 핸드폰을 쓰는 정도에서도 아들, 딸에게 밀린다. "아빠는 스마트폰이 필요없고 전화만 되는 핸드폰이면 되겠다"는 핀잔도 종종 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소위 말하는 IT 기술과 담 쌓고 사는 것도 아니다. 회사 컴퓨터 시스템을 구상할 정도는 되고, 클라우드도 잘 활용하고, 집안 온도도 외부에서 원격으로 조절할 줄 안다. 게다가 이렇게 인터넷에 글도 쓰지 않는가! 


그러니 아이들에게 그렇게까지 핀잔들을 일은 아닌 듯 싶다. 


나는 그저 수 없이 많은 선택지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에 더 관심을 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더 시간을 쓰고, 내가 관심 없는 일에 노력을 덜 하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나에게 핀잔을 주는 내 아이들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나는 내 아이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선택을 했을 뿐인데, 다만, 그 선택지가 다르다는 것만으로 나를 '케이케이오엔디에이이'라 한다면, 그건 좀 억울하기는 하다. 


하지만, 이미 '케이케이오엔디에이이' 로 자리잡은 지금, 굳이 그걸 바꿀 필요를 느끼지는 않는다.


물론 '그 때 이렇게 했어야 하나. 아님 저렇게 했어야 할까' 하는, 그런 생각을 들게 하는 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앞으로 나가기에도 바쁜 나이이지만, 나를 뒤돌아 보는 일이 없지는 않다. 그렇게 돌아보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잔뜩 있다. 돌이킬수 없는 것들이라 그런지, 다르게 해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교감 선생님 말 듣지 말고 아버지 조언을 따라 대학을 갔으면 어땠을까. 안 될거라고 지레 포기하지 말고 그 때 그 회사에 지원을 해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다가 생각했다. 

이건 후회일까. 나는 후회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 '그 때 이렇게 했으면 큰일 났겠지 - 안 하기를 잘했어' 하는, 이런 안도의 감정을 주는 생각이 아니라면, 어쩌면 과거의 선택에 대한 회상에는 후회라는 감정이 조금씩은 묻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쩐지 그런 생각들을 '후회'라 부르고 싶지는 않다. 


내가 걸을 수 있는 수 만가지의 길에서 내가 매번 했던 선택들은, 내가 지금 궁금해 하는 과거의 다른 선택지와는 어차피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택하지 않았던 그 다른 '과거'의 길들을 걸어, 지금과는 다른 '현재' 에 다다르는 것을 나는 그다지 원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지금 선 자리에서 해야 할 일들이 아직 많고, 이 길에서 좀 더 걸어가 보고 싶은 욕심이 그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선택'에 대한 미련보다 더 크다. 


위키피디아는 후회를이렇게 정의한다 - 후회(後悔)는 이전에 자신이 내린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느끼는 감정이다. 


글쎄, 잘못된 결정 하나 없이 현재에 다다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그 잘못된 결정 덕분에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의 단편적인 사건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미련을 통털어 후회라 부르기에는, 내 과거의 고민들이 가볍지 않다. 


아마도 과거를 바꾸어 그로 인해 끝끝내 나의 '현재'를 바꾸고 싶은 그런 부분이 있을 때, 그런 부분만이 좁의 의미로 진정한 '후회'라 칭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과거형 후회, 나의 현재가 아니라 나의 과거를 바꾸고 싶은 부분은 후회가 아니다. 그건 오히려 추억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몇 개의 과거를 후회가 아닌 추억으로 저장해 놓는다. 후회대신 추억이 늘어나니, 내 과거는 그렇게 더 가치 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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