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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Feb 14. 2024

애플을 이긴 할머니

피는 사과보다 진했다

딸은 대학을 가면서부터 소위 애플 빠순이가 되었다. 딸이 고등학생일 때까지 우리 가족은 항상 안드로이드 핸드폰을 썼고, 그러니 보통은 LG나 삼성폰이었다. 


캐나다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가장 큰 폭의 할인을 해 주는데, 2년 약정을 하면 무료로 기기를 주는 경우가 많아 보통 2년에 한 번씩 크리스마스 때에 핸드폰을 바꾸곤 했다. 한 번은 LG, 다음엔 삼성, 이런 식으로. 그런데, 대학을 가더니 어느 날 갑자기 애플 핸드폰을 사 달라고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애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소비자를 물로 본다는 인식이 있어서다. 그런데, 그런 것을 떠나서 기계만 놓고 보았을 때에도 내 기준에는 애플 핸드폰이 그 당시의 LG나 삼성폰보다 더 나아 보이는 점이 없었다. 


왜 갑자기 애플 핸드폰을 사 달라는 걸까? 내가 모르는 애플폰의 장점이 있나? 했는데 특별히 기계가 더 좋아서는 아니란다. 애플 핸드폰에서 셀카가 더 예쁘게 찍힌다는 말은 있지만, 성능이나 핸드폰 색상, 아니면 사진의 품질이나 스피커 품질,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단다.


그럼 왜 애플이냐고 했더니, 애플 기계끼리는 서로 연동이 너무 잘 된다나. 안드로이드에서는 따로 앱을 깔아야 되는 기능들이 애플끼리는 그냥 된다고. 핸드폰 뿐만 아니라 컴퓨터도 그렇다고. 요즘은 심지어 가방을 잃어버려도, 내 가방 안에 애플용 칩을 넣어두면, 그 근처에 있는 남의 애플폰을 통해서 잃어버린 내 가방의 위치를 알 수 있다고 하니, 같은 애플끼리의 연동성이 대단한 건 확실한 듯 하다.


어쨌든 친구들끼리 연결하려면 애플이란다. 그것 때문에 안드로이드 쓰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애플로 핸드폰을 바꾸고 있고, 그래서 자기도 바꿔야 된단다. 아무리 기계가 좋아도 안드로이드로는 친구들과 연결하기가 어렵하고 했다. 아,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애플 생태계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나도 그랬으니. 그 나이에는 친구와 연결되는 게 중요하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딸은 애플로 갈아탔다. 그 후에도 나는 딸을 안드로이드로 꼬셔 보려고 매해 크리스마스마다 잔머리를 썼다. 일단 같은 기종으로 4대를 사는 것이 가장 할인이 크기도 했고, 내가 애플을 계속 안 좋아 하기도 했고. 하지만, 내가 아무리 좋은 조건을 걸어도 딸은 안드로이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딸에게는 할머니인 내 어머니를 보내드리면서 나보다도 많이 울던 딸은, 할머니 유품인 삼성 핸드폰을 캐나다로 가지고 오겠다고 하더니, 캐나다에서 할머니 전화기를 쓰겠단다.


한국에서 파는 핸드폰은 사직을 찍을 때 소리가 나게 설정되어 있어서 캐나다에서 쓰기는 불편하다고 말하던 딸인데, 그 전화기를 쓰겠단다. 안드로이드라도 쓰겠단다. 갤럭시도 아닌, 사양이 좀 떨어지는 어르신용 핸드폰인데, 그래도 쓰겠단다. 조금 놀랐다. 


이유는 말 안하지만 할머니를 기억하려는 것이려니... 생각한다. 기특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더니. 사람은 잊게 마련이니 애플 빠순이가 얼마나 오래 할머니의 안드로이드 핸드폰을 쓸 지는 모르지만, 어머니 계신 곳에 스티브 잡스도 가 있다면 자랑 좀 하시라고 하고 싶다.


어머니가 애플을 이기셨어요. 대단하세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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