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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Feb 29. 2024

의료비 120만원 vs 1,200만원

의사 증원 계획에 즈음한 단상

대학생 시절, 한국에서 Epidemiology (역학)을 배울 때 교수님께서 질문을 하셨다. 


"제한된 국가 재정으로 예산을 마련한다면 매년 발생하고 어느 정도 예측이 되는 재해에 대해서 예산을 잡아야 할까, 아니면 예측도 안 되고 올 지 안 올 지도 모르는 재해에 대해 예산을 잡아야 할까?"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전자는 감기이고 후자는 COVID-19라고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혹은 전자는 매년 오는 장마이고 후자는 몇 십년 만에라도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기후 피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매년 닥치는 감기에 대한 피해는 실재하는 것이니 예산이 분명 잘 쓰일 수 있지만, 올 지 안 올 지도 모르는 위험은 피해가 없을 확률이 더 높은 것인데 그런 분야에 매년 예산을 잡아 돈을 묶어 두는 건 좋은 재정 관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측이 되는 위험에 예산을 잡는 것이 답일 것 같았다. 하지만, (정책에 정답은 없다고 하셨만) 교수님께서는 예측할 수 없는 재해에 정부 예산을 잡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셨다. 


예측할 수 있는 위험에는 피해를 볼 개인들 차원에서도 일정 수준의 예방 조치나 대비 가능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은 개인이 대비하기 어려운데다가 그 피해가 커서 대비되어 있지 않으면 개인은 물론이고 기업이나 나라까지 심각하게 망가지는 피해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사례를 들어 주셨던 기억이 있다. 


이 두 가지가 잘 대비되는 것이 한국과 캐나다의 건강보험 시스템이 아닌가 한다. 캐나다와 한국은 둘 다 다른 나라, 특히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의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그 접근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 


지난 겨울 한국에 가서 종합 검진을 받았다. 방문 기간이 짦아 검사 결과는 캐나다에 돌아온 이후에 이메일로 받았고, 그 자료로 캐나다의 family doctor와 면담을 했다. 면담이 끝나고 의사가 물었다. "굉장히 세부적으로 진단을 받았는데, 한국에서는 이게 얼마야?"


그래서 내가 "좀 비싸. 120만원 정도였어'라고 했더니 피식 웃으면서 "무슨 소리야, 비싼 거 아니야, 캐나다에서는 1,200만원을 줘도 이런 검사 받기 어려워" 라고 했다. 


그건 그렇다. 한국은 전문의를 만나 진료를 받기가 매우 쉽고, 여러 가지 검진을 받기도 쉽고, 게다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비용도 싸다. 


이번에 귀도 좋지 않은 것 같아 한국 방문 동안 이비인후과를 갔는데, 예약도 없이 갔지만 5분 정도 대기하고 바로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그런데 진료 후에 간호원이 머뭇거리면서,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 의료 보험이 없어서 비용이 좀 많이 나온다고. 알고 왔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지만, 간호원께서 너무 망설이기에 조금 겁도 났다.


도대체 얼마이길래? 간호원이 머뭇거리며 말한 비용은 약 14,000원.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14만원을 줘도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얘약없이 만날 방법이 없으니, 전혀 비싼 비용이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전문의를 만나기위해 3-4달 대기하는 건, 캐나다에서는 흔한 일이다. 


대신 캐나다는 중대 질병에 걸려도 의료비가 무료다. 암이든 백혈병이든 나랏 돈으로 끝까지 치료하고, 간호도 병원이 도맡아 한다. 밤에 간병을 위해 가족이 병워에 머무리지 않고, 웬만하면 머무리지 못하게 한다. 가족이 할 일은 아무 것도 없고 돈이 없어도 걱정할 일이 없다. 집안에 암 환자가 있으면 집이 망한다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일견 부러울 수 있다.


대신, 그런 치료를 받기까지의 대기 시간이 너무 길다. 그래서 캐나다에는 치료는 무료지만, 치료 기다리다 죽는다는 말이 있다. 돈을 쓰고 검사나 치료를 더 받을 수 있는 길도 열려 있지 않다. 그래서 기다릴 수 없는 사람들은 의료보험이 안 되는 비싼 진료비를 내더라도 다른 나라에 가서 치료받는 길을 택해야 한다. 


한국에 있는 환자들은 캐나다를 부러워하고, 캐나다에 있는 환자들은 한국을 부러워한다. 그리고 미국의 환자들은 두 나라를 다 부러워한다.


한국은 예측이 되는 질병에서 국민들을 더 잘 보호할 수 있고, 캐나다는 예측이 안 되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좋으니, 미국처럼 공공 의료가 무너지는 상황으로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금의 상황이 결국 공공 의료를 민간에 이양하기 위한 절차라고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측 가능한 병에도 예측 안 되는 병에도 돈 없는 사람들은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그런 시스템이 아닌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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