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슈바이처 박사
캐나다, 특히 토론토에서 한인 사업자를 양육해서 한인 사회의 영향력을 넓혀 보려는 공동의 취지를 가진 법률, 마케팅, 인사, 디자인, 회계, 경영 컨설팅 등 전문직 한인 몇 명이 모여 한인창업자협회를 설립했다. 지난 12월부터 "한인 창업자 100명 세우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던 사람들이 협회를 만들어 일을 벌이기로 (?) 한 것이다.
그리고 어제, 한국을 떠난 지 정말 오랜만에 Vision 과 Mission을 놓고 반나절을 논의해서 Vission Statement와 MIssion Statement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간만해 해 보는 것이었고, 시간도 많이 들었지만, 뿌듯했다.
그런데, 나는 그 완성본이 온전히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좀 찝집했다. 여러 달 논의를 해 온 주제라서 개념은 다 공유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의견을 모으고 모아도 뭔가 땅! 하고 결론을 지을 수 있는, 쾅! 하고 머리와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영어로 하려니 더 그랬을 듯.
그래서 ChatGPT 에게 물었다. 묻고, 또 묻고, 토론하고 다시 묻기를 반복했더니 모두가 환호할 만한 Vision Statement 가 나왔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나로서는 지난 1년 간 꾸준히 ChatGPT를 만지작거린 중에, 이번이 가장 생산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이었다. 인공 지능을 생산적으로 잘 사용했다.
그런데, 인공지능을 도구로 잘 썼으니, 사전 뒤져보고, 용법 찾고, 유사어 찾아가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니, 그것으로 난 사람 구실을 충분히 한 것일까?
노벨상을 수상했던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어느 날 런던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한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오늘 날 인류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끼?"
그랬더니 슈바이처 박사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건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최근에 시간을 좀 들여 배우던 Promt Engineering 이라는 기술은 나를 생각하게 하기는 하지만, 그건 내가 해결책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ChatGPT가 해결책을 찾도록, 내가 아닌 ChatGPT가 더 생각하게 하도록, 그렇게 일을 잘 시키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지 일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의 기술들은 ChatGPT 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생각들이다.
예전에는 윗 사람이 결정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정보를 모으는 것이 아랫 사람의 중요한 업무였다. 신입 사원이 이런 저런 정보를 모아서 보고를 올리면 부장님들이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로펌도 예외가 아니다. 판례를 찾고, 법과 판례를 정리해서 고참 변호사들에게 보고하는 research 업무는 지금도 신참 변호사들의 일이고, 신참 변호사들이 가장 꺼리는 일이다. 그리고 파트너 변호사들이 research를 읽어보고 변론의 방향을 정한다.
그렇게 보면, 요즘 신입 사원들은 예전의 부장 위치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하는 셈이다.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일들을 인터넷과 인공 지능 툴들이 뚝딱뚝딱 처리해 주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니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는 한국에서 고등학생 시절, 대부분의 이과생들과 마찬가지로 주기율표를 외우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20번까지는 술술 어렵지 않게 외운다. 그러나, 캐나다 고등학교에서는 그걸 바보짓이라고 한다. 책만 펴면 되는데 그걸 왜 외우냐는 것이다. 내가 필요한 지식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지, 그 지식 자체를 외우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점점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 마저도 무관심해지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 보다는 인공지능이 잘 생각하도록 하는 일에 시간을 쓴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까지 생각을 포기해도 되는 것일까. 어쩌면 슈바이처 박사는 거기에 대한 해답으로 미리 이런 경구를 남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색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정신적 파산 선고와 같은 것이다"
"생생한 진리는 인간 사색에 의하여 산출된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