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뽑아야 할 WHY를 전달하는 방법
독일에는 하이델베르그라는 성이 있다. 나는 이 성에 두 번 가 보았다. 한 번은 독일 출장가서 혼자 하루 관광을 할 때였고, 다른 한 번은 가족들과 함께 유럽 단체 관광을 가서였다.
방문이 편한 프랑크프루트에서 당일치기가 가능한 곳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독일 여행 코스에 들어 있는 곳인데, 1년에 300만명이 넘는 여행자들이 찾는 관광 명소라고 한다.
400년간 증개축을 반복해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이 성은 웅장하기도 했던 듯 하고, 나름 화려한 면도 있었던 듯 한데, 두 번이나 가 보고 나름 시간 들여 둘러 본 성이건만, 지금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건 딱 하나다.
성 뒷편에 있던, 땅 바닥에 푸-욱 패인 사람의 발자국 하나.
도대체 왜 시멘트 비스무리한 것으로 마무리된 바닥에 사람 발자국이 깊게 파여져 있는 것일까? 두 번째 가족 여행 때 한국인 여행 가이드는 이 부분을 언급도 하지 않았으나, 내 첫 번째 방문시에 성 가이드를 했던 현지인은 이 발자국을 콕 꼬집어 설명을 했더랬다.
성을 또 수리하던 어느 시절에, 성에 살던 귀족 부인이 바람을 피웠더란다. 그렇게 정부와 밀회를 즐기던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성으로 돌아왔고, 그래서 황급히 도망을 쳐야했던 그 정부는 2층에서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그 곳이 마침 바닥 공사를 하고 아직 땅이 다 굳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 곳에 한 발이 푹 빠졌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된 남편은 대노하여 부인을 벌했고, 후대에 교훈을 남기기 위해 발자국을 그대로 두라고 했다... 는 다소 믿기지는 않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하이델베르크 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건, 그 성이 아니라 땅바닥의 그 발자국 하나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스토리의 시대다. 애플 컴퓨터의 멋진 본사보다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를 조립해서 파는 일을 하다가 300개 대량 주문을 받고 좋아했다는 그 시절의 차고가 스타트업들의 관광 명소가 되는 시대다. 컨텐츠 마케팅의 시대라고도 하지만, 그 많은 컨텐트 중에서도 가장 잘 팔리는 것은 스토리다.
예전에 큰 가치를 부여했던 '데이터'는 정보를 획득하는 도구로는 여전히 유용하지만, 나를 팔고 내 제품을 팔아야 할 대상에는 결국 데이터가 아니라 스토리로 승부해야 한다. 유튜브를 하든, SNS를 하든 마찬가지다.
https://www.gainge.com/contents/videos/3225
이전에는 나를 알리고 나의 제품과 서비스를 알리는 '광고'와 나의 '이야기', 나의 제품의 '이야기', 나의 서비스의 '이야기'가 따로 노는 방식으로는 다른 이들에게 어필할 수 없다고 한다. 제품이 아니라 제품을 사용한 경험을 이야기 하고, 서비스가 아니라 서비스를 받은 이들의 경험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한다. 스토리가 곧 광고여야 한다고 한다.
이건 '나'를 알려야 하는 취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캐나다는 일반적으로 한국보다 개인 정보 노출에 민감하다고 알려져 있다. 차량을 불법 주차하면서도 차량에 핸드폰 번호를 남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친하지 않다면 개인의 취향, 결혼, 아이 등에 대한 질문은 금기시 되어있다.
하지만, 이런 나라에서도 면접을 볼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나와 함께 회사 생황을 할 사람을 고를 때에는 캐나다든, 미국이든, 아마 이제는 한국도, 스토리 없이는 자기를 어필하기 어렵게 되었다. 스토리가 없는 학점, 스토리가 없는 복장, 스토리가 없는 자격증은 면접이 끝난 후에 면접관의 뇌리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내 개인 스토리가 도대체 왜 궁금한데요? 라고 이상해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노출시키려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예전에 보던 "반드시 나오는 면접 질문"이나 "영어 면접 준비하기" 이런 책을 지금 다시 펼쳐 보니, 웃음만 난다.
이제 이해가 된다. 나의 로펌 취업 면접이 그토록 이상했던 이유가.
내가 어렵게 성취한 학점에 대해 변호사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한국 회사에서 이룬 성과에 대해서도 변호사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내가 로스쿨 학생이라는 것 자체에도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내가 한국에서 캐나다에 와서 로스쿨에 입학하게 된 과정만 재미있어 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 로펌에 합격했던 동기들은 다들 면접이 이상하다고 했었다. 학점이 높은 편이 아니라서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로스쿨과 관련된 질문은 없었고 킬리만자로에 다녀왔던 이야기로 1시간이 다 지나가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는 동기도 있었고, 홍콩에서 이민을 온 친구도 면접 내내 홍콩 이야기로만 시간을 보내서 "내게는 관심이 없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뽑혔다고 하기도 했다.
그래서 면접에서는 스토리를 만들어 가야 한다. 면접까지 갈 정도면 기본은 되었다는 뜻이다. 이제는 '더 나은 데이터'가 아니라 '인상깊은 스토리'를 준비할 단계다. 경험이 곧 제품에 대한 광고요, 경험이 곧 서브지에 대한 광고가 되듯이, 스토리가 곧 나에 대한 광고가 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스토리로 하여금 회사가 나를 선택해야 하는 Why를 나 대신 주장하게 해야 한다.
아마도 모든 회사의 사원 모집 요강에 빠져있는, 면접 통지서에는 빠져있는, 하지만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사항 중 하나가 이것일게다.
스토리로 당싱의 진정성을 보여주세요.
그렇다면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성취해야 하는 것은 돈이 아니고 워라밸도 아니고 나의 스토리일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