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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an 19. 2023

최선의 반대말

이만하면 됐다고?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자녀와 아이들을 대상으로 아마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아닐까. 물론 최선을 다 했다는 말은 자녀와 학생들이 가장 흔하게 쓰는 변명이기도 하지만, 자녀와 학생을 생각하는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최선을 다하라고, 다하라고 다그치는 이유는 최선의 반대쪽을 선택했을 때에 나타날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도대체 최선의 반대에 무엇이 있기에 자꾸 최선을 다하라고 하는 것일까?


최선의 반대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최악 혹은 극악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부의 추월차선'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저자 엠제이 드마코는, 과거 최악의 상황에 있을 때 너무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선택한 길에서 거대한 부를 일구었다. 사실 최악의 상황을 겪어보았거나, 극악의 상황에 처한 사람은 오히려 그 자리를 벗어날 동기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강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오히려 최악이나 극악은 최선의 반대말이라기 보다는 옆자리 동료에 가깝지 않을까. 최선의 반대말은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혹은 평생동안) 나를 최선에 다다르지 못하게 하는 녀석, 혹은 나를 최선에서 가장 먼 곳으로 끌어갈 수 있는 녀석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최선의 반대말은 차선이다. 


일제 시대에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모 회사 사장님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본인은 일본 친구도 많고 일본 문화에도 익숙하지만 일본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본의 나이든 세대에게 꼭 배웠으면 하는 것이 하나 있다고.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냐고 여쭤보았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날 일본인들에게는 '이만하면 됐다'는 말이 없었어.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말이다. 나는 참 얼마나 흔하게 '이만하면 됐다' 를 외치며 살았는지. 내가 '이만하면 됐다'고 선언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더랬다. 


나는 그 때까지 '이만하면 됐다'는 말을 '이게 최선이야'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만하면 됐다'는 말은 최선에 이르지 못했고, 어쩌면 최선을 다 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그런 것처럼 중간에 멈추어 버리고 내뱉는 변명이었다. 차선의 결과를 들고, 때로는 차선조차 되지 않는 결과를 들고는, 마치 그 결과가 최선의 결과인양 애써 포장하려는 시도였다.  


차선이 무서운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차선에는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감만 본다면 차선은 최선 바로 밑에 있을 것 같다. 실제로도 차선과 최선의 차이는 결과만 보면 얼마 차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알게 된다. 


차선에서 최선으로 넘어가는 건, 절대로 녹록하지 않다. 


보이는 차이는 작지만, 그걸 메꾸어 내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든다.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 야, 요만큼 더 이루려고 이만~~~~~큼이나 더 고생해야 돼? 그러면, 이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이만하면 됐어. 그리고 말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이 말을 풀어쓰면 이런거다 - 결과는 차선이지만, 이게 나의 최선이야.


하지만, 후회는 항상 마지막 하나가 모자랄 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만하면 됐다'는 마음에 후회를 남기는 지름길이 된다.  


물론 최선을 다해서 다다른 차선의 결과는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차선을 지향해서 받은 차선의 결과는 내게 독이 된다. 그래서 최선이라는 말은 목표를 정할 때 사용해야 한다. 최선의 기준을'결과'나 '목표'로 하지 않고 '나의 노력'으로 잡으면 차선의 유혹에, 이만하면 됐다는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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