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광훈 Jan 23. 2023

형식이 본질을 압도할 때

노벨상을 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요즘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 ChatGPT에 국어로 이렇게 물어보았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랬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탁월한 과학적 업적을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국제 과학 커뮤니티에서 인정받는,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틀린 말도 아니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견 당연해 보이는 답이다. 어쩌면 노벨상의 본질을 잘 압축해서 풀어낸 설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꼭 맞는 답도 아니다. 


노벨상의 본질적 요소는 짚었지만, 노벨상의 형식적 요소는 간과했기 때문니다. 


노벨상은 추천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수상자가 생존해 있어야 한다. 노벨상 수상이 확정된 후에 사망하면 대리인이 받을 수 있지만, 적어도 수상이 결정되는 시점에서는 생존해 있어야 한다. 교통사고만 아니었다면 노벨상 수상이 확정적이었다는 한국인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가 노벨상을 받을 수 없는 이유다. 


다른 요소도 있다. 하나의 노벨상은 최대 3명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요즘 이과 논문들을 보라. 3명이 아니라 13명, 아니 그보다도 훨씬 많은 수의 연구자가 공동 저자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런 경우, 설사 그 연구로 노벨상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첫 3인의 저자 안에 들어야 노벨상 수상이 가능하다. 


본질이 좋아도 형식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변호사라는 직업도 결국은 서비스 업이라,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다보니, 본질이 아닌 형식으로 평가받는 일이 참 많다. 서류가 잘 준비되었는지, 고객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냈지 이런 것보다, 응대가 친절한지, 커피는 종이컵에 내 왔는지 머그컵에 내 왔는지, 대기실 의자는 편안한지, 이런 것으로 변호사와 변호사 사무실을 평가하는 글이 여기저기에 커뮤니티에 보이면, 우리 사무실 이야기가 아닌데도 응대를, 커피를, 의자를 신경쓰게 된다. 


어쩔 수 없다. 서비스업이니까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본질에 신경쓸 마음과 시간이 자꾸 줄어드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하다. 살아있어도, 3명의 저자 안에 들어도, 탁월한 과학적 업적이 없다면 노벨상은 커녕 교수되기도 힘들 것 아닌가.


형식이 본질을 압도할 때가 있다는 건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할 때 지겹도록 겪었고 한편으로는 익숙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고객들이 본질에 집중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최선의 반대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