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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an 25. 2023

복지말고 배려

사람으로 해결할 일을 제도로 해결하려면 힘들다

(본 글의 앞 부분만 보시고 혹시라도 장애인에 대한 비하가 아닌가 생각하실까 싶어, 그런 내용이 아니며 그럴 의도도 없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요즘 장애인에 대한 기사가 여기저기에 보인다. 장애인과 관련된 제도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장애인과 관련된 일 두 가지가 생각이 났다. 


1. 언젠가 수원역에서 훨체어를 타시는 장애인 한 분을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수원역은 두 발이 다 성해도 오르내기기 힘든 계단과 통과하기 힘든 좁은 개찰구가 있는 곳이었다. 그 분은 별로 어려워하지 않고, 거리낌없이, 당당하게 승무원 둘을 부르셨고, 승무원들은 개찰구와 승강기가 없는 계단으로, 그 분을 휠체어에 앉힌 채로 들어 올려드리고 들어 내려드렸다. 어른 둘이라지만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니 승무원 두 분이 쩔쩔 매셨다. 그 장애인 분은 "아, 수원역은 너무 불편하게 되어 있어서 오기가 싫어" 등등 도움을 받는 내내 불평을 하시고 가셨다. 승무원들에게 감사는 하지 않으셨다. 


2. 아내가 출산 중 몸이 상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퇴근하고 서둘러 병원에 가는데 길에서 한 장애인 분이 휠체어를 좀 밀어 달라고 하셨다. 아내가 병원에서 기다릴 텐데... 하고 마음은 급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밀어 드렸다. 저녁이었지만 한 여름이라 많이 더웠고, 요 앞이라고 하셨는데 내게는 좀  멀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병원에 갈 생각에 급히 나오는데 그 분이 부르셨다. 고맙다고 하시는 줄 알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라고 말했는데, 다른 사람 하나를 더 데리고 와야 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해 달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래야 된다"고 하셨다). 괜찮습니다라고 말해버린 것이 무안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장애인분들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에데 부족한 것이 있어서 도움을 청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걸 나는 경험해 봐서 안다. 갑의 위치에서 요구할 때는 보통 창피하지 않다. 하지만, 을의 입장에서 요구를 하는 마음은 조심스럽고, 어색하고, 불편하고, 또 창피하다. 처음에는 그렇다. 


내 약점을 드러내며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는 건, 절박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 분들은 그렇게 무덤덤하고 당연하게 (혹은 그렇게 보이게) 도움을 구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래 혼자 불편을 참으셨을까. 아마도 그렇게 당연하게 도움을 구하기 위해 혼자 수 없이 불편을 감수하고, 혼자서는 움직이기 힘든 현실에 많이 절망하고, 그리고 나서야 요구를 구하기 시작하셨을 거다. 


서울의 지하철 역에는 발로 길을 감지할 수 있는 노란색 블록이 깔려있다. 장애인을 위한 배려다. 토론토의 모든 버스는 차체를 낮출 수 있다. 노인과 장애인이 타기 쉽게 하기 위해서다. 한국이든 캐나다든 장애인에 대한 복지 제도와 시스템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시스템으로 되어 있지 않더라도, 몸이 불편한 것의 많은 부분은 옆 사람이 도와주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엘리베이터에 점자를 찍어 놓지 않아도, 지하철 바닥에 장애인용 블록을 깔지 않아도, 차도와 인도사이의 블록 높이를 낮추지 않아도, 높이를 내릴 수 있는 버스를 운행하지 않아도, 옆에 있는 사람이 눌러주고, 잡아주고, 들어주면 해결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복지의 반대말은 배려다. 도움을 구하는 쪽이 당당할 수 있다면 배려가 있다는 뜻이다.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적으면 복지 제도와 시스템에 기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배려가 충분하다면, 장애인이 옆 사람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것이 어색하지도, 불편하지도 않게 하는 충분한 양의 배려가 우리 생활에 있다면, 복지의 중요성은 작아진다.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감사를 받을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될 때 복지의 중요성은 작아진다.


장애인의 불편은 사람으로 해결하는 것이 제도로 해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길이라 믿기에, 배려가 복지를 덮을 그 날이 우리나라에 오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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