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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an 15. 2023

나는 낙숫물이 아니라 바위다

계란, 계란프라이, 그리고 프라이드치킨

우리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속담을 수도 없이 들어서 알지만, 보통 우리를 그 물방울에 비유하며 끝없이 노력하라는 뜻으로만 이해한다. 그래서 매일 매일 노력해서 열심히 사는 나는 물방울이고, 언젠가는 나를 막아서는 바위가 뚫릴 줄 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직장에서 사실 우리가 바위인 건 아닐까. 그리고, 지나가는 순간순간이 물방울인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한방울씩 떨어지는 시간이라는 물방울이, 순간이라는 물방울이, 언젠가는 나를 뚫어내고야 말 것이다. 물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내게 한 방물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나를 뚫어낼 것이라는 건, 외면 한다고 해서 변하는 일이 아니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바위같던 삶에 구멍이 나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목격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부장님, 이사님의 모습이 나의 미래라고 생각하면 회사 다닐 맛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건, 우리가 바위라는 걸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저 애써 우리가 물방울인 척 하고, 우리가 물방울인 경우만 생각하려고 할 뿐이다. 


내게 떨어지는 물방울을 향해 행동을 취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달리 행동을 취하지 않는 건 위기감이 작아서이고 현재가 버틸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방울을 받아내며 버틴다. 계속 버틸 수 있을 줄 알고 말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가끔씩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순간이 찾아 온다. 물방울이 갑자기 두 배, 세 배로 커지는 때가 있어 '지금이 대비할 때야, 버티는 건 한계가 있어' 라고 우리에게 신호를 준다.

  

예를 들어, 내가 다니던 다국적 회사에서 어느 날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봉급 시스템을 적용시키기로 했다고 통보가 왔다. 매년 누구나 조금씩 월급이 인상되는 형태는 더 열심히, 더 잘  일하는 사람에게 불합리하므로 이에 맞는 봉급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취지였다. 


지금까지는 내 월급은 회사하고만 이야기하는, 내 성과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의 성과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대 평가제도에서 살게 된 것이다. 부서별 평가야 새로울 것이 없지만, 그래도 입사 동기라면 부서가 달아도 월급 차이는 거의 없던 시절이었는데, 이제는 달라진 것이다. 내가 잘 해도 회사의 전체 성적이 좋지 않아 총 인상액이 별로 오르지 않는다면 월급인상은 물 건너 간 것이고, 우리 부서가 잘 하고 나도 잘해도 내 동료가 나보다 더 잘 했다면 월급 인상 폭은 작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내가 위기를, 변화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사건들이 생기는 때가 물방울이 갑자기 두 배로 커진 때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변화가 직장-인에게 주는 신호다. 물방울이 '나'라는 그릇에 한 방울씩 떨어질 때는 30년을 버틸 수 있었지만, 물방울이 커지면 20년, 아니 15년만 지나도 물이 넘치기 시작할 것이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물방울이 이제는 두 방울이 되었다고 생각된다면, 바로 그 때가 고민에서 행동으로 한 발짝 옮길 때이다. 하지만, 문제를 외면하면 물방울의 크기를 잘 느낄 수 없다. 내가 임원 승진에서 탈락했을 때에도, 처음에는 물방울이 커진 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계속 고민을 하다보니 물방울이 아니라 폭포수가 쏟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민을 피하지 않고 마주해야 내가 얼마만한 물방울을 받아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보통 큰 변화가 생기고 위기를 느끼는 상황이 생기면 고민을 시작한다. 하지만, 고민을 하고 마음을 먹은 후에도 행동은 미룬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계속 생각하지만, 시작을 미룬다. 왜인지 모르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행동하기 전에 더 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이런 조심성 자체는 당연히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조심성'이 나를 고민에 붙잡아두고 나의 행동을 늦춘다면 나쁜 생각이다. 


이제 두 배로 커진 물방울도 맞다보면 곧 익숙해진다. 그러면, 그 '조심성'이라는 나쁜 생각은 곧 핑계가 되고 변명이 된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라는 말은 내가 지금 상황을 아직 위기로 보고 있지 않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물방울 한두 방울 정도, 아직은 받아낼 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지나지 않는다.  


적절한 시기는 상황이 만들어 주는 것도, 남이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누가 시작을 대신해 주면 그 다음은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무도 나 대신 시작해 주지 않는다. 


고민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두렵다. 시작이 두려운 건, 무엇을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가 보지 않은 길이니까. 


피자집을 하고 싶으면 우선 피자를 먹어보고, 피자 가게들을 둘러보고, 피자에 대한 기사와 피자 가게에 대한 책을 읽는 것으로, 조사하고 공부하는 것으로, 그렇게 시작하면 된다. 조금씩 움직여서 조금씩 알아가면 다음에 밟을 작은 걸음이 보이고, 그러다보면 나중에는 큰 걸음을 내 디딜 수 있다. 처음부터 피자 가게 계약을 고민하고, 집기를 고민하고, 권리금을 고민한다는 건 정보가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준비없이 시작해서는 안 되겠지만, 준비마저 미룬다면 언젠가는 떠밀려서 시작하게 되고, 그 때는 이미 바위에 구멍이 난 후이고 이미 그릇에 물은 차서 넘치는 중이다. 준비할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급하게 시작할 수 밖에 없다면 제대로 된 다음 발걸음을 내 디디기 어렵다. 


내가 알을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알을 깨면 계란프라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이야기의 끝은 또 아니다. 병아리가 되는 것이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병아리가 자라서 알을 낳을 수 있게 될지, 그 전에 프라이드 치킨으로 튀겨질지 모르는 일 아닌가. 


프라이드 치킨이 되느니 알 속에 있자...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보면, 결국 계란프라이로 끝난다. 병아리가 된 후에 혹시라도 프라이드 치킨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그 일상은 긴장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긴장들이 모이고 모여 언젠가는 나를 닭으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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