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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an 18. 2023

뜨거운 아이스커피 한 잔 주세요

나의 욕망은 조작된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많이 아팠던 날이 있었다. 열이 39.8도를 기록하고, 몸은 사시나물 떨 듯 떨리는데, 땀은 비오듯 났다. 양호 선생님께서 조퇴를 종용하셨으나, 나는 우기고 우겨서 조퇴대신  외출을 허락받고 조금 멀지만 어려서 다녔던 소아과 (소아과 이후에는 병원을 다닌 적이 없어서 다른 병원을 알지 못했다)를 찾아가 주사를 맞고 다시 학교로 왔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집에 가서 쉬어야 한다고 하셨으나 고집스럽게 학교로 돌아갔다. 


내가 그렇게까지 한 건 조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퇴를 할 수 없었던 건 졸업식 때 개근상을 받기 위해서였다. 


초등학교 시절에 병치레가 잦았던 나는개근상이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고, 한 달에 한 번은 편도선이 붓고 열이 나서 학교를 갈 수 없었으니 언감생심 개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데, 졸업식 때 교장 선생님께서 개근상을 수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이 상이 가장 가치있는 상이라고. 


나는 초등학교 때에는 여러가지 상을 많이 받았다. 우등상부터 시작에서 글짓기, 서예, 노래, 그림 등등 못 받아본 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많은 상 중에서 하필이면 내가 받지 못한 개근상이 가장 가치있는 상이었다니. 너무 아쉬웠다. 


중학교 때에는 꼭 개근상을 받아봐야지... 했으나, 그놈의 편도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 번 결석을 했더랬다. 그리고 중학교 때 편도선 수술을 했다. 골칫거리가 사라졌다. 이제는 만반의 준비가 되었으니 고등학교에서는 꼭 개근상을 받으리라. 가장 가치있는 상이라는 개근상을 꼭 받고야 말리라. 입학식에서부터 다짐했었다. 그러니, 조퇴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개근상을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처럼 소수만 받는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에서는 전체 학생의 1/3 이상이 받는 대중적인 상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기뻤다. 12년만에 이루어낸 성취같았다. 다른 상 10개를 줘도 안 바꾼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꼭 초등학교 때 개근상을 받게 하고 싶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에는 흔한 상이지만 초등학교 때에는 많이 받지 못하는, 6년간의 꾸준함을 보여 주어야만 받을 수 있는 상이라고 아이들을 독려했다. 그런데, 아이들도, 애들 엄마도, 선생님도, 세상이 바뀌었단다. 개근상을 받는 초등학생은 여전히 소수이지만, 개근상은 더 이상 가치있는 상이 아니라고 했다. 개근상을 받으면, "쟤네는 가족 여행도 안 다녔나?" 이런 생각을 먼저 한다는 것이다. 어디 갈 곳도 없고, 어디 갈 돈도 없는 아이들이나 받는 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고, 그래서 개근상 자격이 되어도 받기를 창피해 한다는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난 왜 그렇게 개근상에 집착했던 것일까. 열이 40도를 넘으면 죽기도 한다는데, 나는 왜 개근상에 목숨을 걸었던 것일까. 개근에 대한 내 욕망은 정말 내게 유용한 것이었을까.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들은 교장 선생님의 한 마디 때문에 6년을 고생해서 받은 상인데, 정작 그 상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는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선생님 말 한마디가 나의 욕망이 되어, 뭣이 중한지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개근, 개근을 외쳤더랬다. 


개근에 대한 나의 욕망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남에 의해 조작된 것이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걸 몰랐다. 


스티브 잡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우리의 일은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라고.


이 말은 사실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나를 읽어내고 조종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물론 다른 핸드폰 회사들이라고 이렇게 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대 놓고 나의 욕망을 자기들이 더 잘 안다고 말하는 회사의 제품을 소비하기는 싫다. 그래서, 소심한 반항의 일환으로 나는 애플 제품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다른 사람에 의해 조작된 욕망을 안고 산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로스쿨을 졸업하면 주어지는 특혜 중의 하나는, 별도의 과정없이 바로 미국 뉴욕 주의 변호사 자격시험에 응시하고 뉴욕 주의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뉴욕 주의 변호사 시험은 온타리오의 시험보다는 어렵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통과가 어려운 시험은 아니라 준비하고 응시하면 거의 다 합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함에 온타리오 주 변호사, 그리고 뉴욕 주 변호사 이렇게 두 가지가 있으면 남들이 좀 더 능력있게 보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는 온타리오의 한인 변호사 분들 중 미국 뉴욕 주의 변호사 자격도 함께 가지고 계신 분들이 좀 있으셨다. 사실 나도 이렇게 두 가지 자격증을 가진 분들을 보면 와! 대단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더랬다. 


그래서 로스쿨을 다닐 때에는, 졸업하면 미국과 캐나다 변호사 두 자격증을 다 따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두 자격을 다 가지신 분과 저녁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분 말씀이 그러지 말란다. 굳이 두 자격으 다 따고 싶으면 먼저 한 곳의 자격증을 획득하고 일을 하다가 나중에 더 생각해 보란다. 이 분도 막상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두 자격증을 다 따고 보니 보기 좋은 떡인 것은 분명하지만, 무용지물이라는 것이었다. 


뉴욕과 온타리오를 연계하는 건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과 캐나다 두 군데에 사무실을 운영할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매년 변호사 자격 유지 비용은 양쪽에 다 내야 하고, 자격 유지에 필요한 추가 공부도 양 쪽 나라 것을 다 해야 한다.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결국 뉴욕에 가서 일 하거나 온타리오에서 일 하거나 선택해야 하고 그래서 한 자격증은 쓸모가 없다. 시간과 돈은 썼지만, 그리고, 지금도 매년 돈은 쓰고 있지만, 결국 하나는 버려야 한다. 


그러면서 물으신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보기 좋고 느낌 좋은 명함인가? - 그렇다면 두 가지 자격증을 다 따는 것이 의미가 있다. 하지만, 실용성으르 따진다면 의미가 없다. 


두 나라 자격증을 추구하면서 실용성까지 있기를 바라는 건 마치 '뜨거운 아이스커피'를 찾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저녁이었다. 


그래서 일단 캐나다 변호사 자격증으로 시작했는데, 미국 변호사 자격증은 이제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미국 쪽 일은 미국 변호사와 처리하면 된다. 굳이 내가 시간쓰고 돈 써서 자격증을 따고 유지할 일이 아니었다. 


나이 40에 로스쿨에 와서도 여전히 나는 예전 고등학교 시절처럼 남들이 원하는 것을 욕망하고 있었다. 내게 좋은 것,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다보니, 그저 남들이 욕망하는 것을 따라서 욕망하게 되었다. 이러니까 스티브 잡스가 만만하게 본 것이다. 


직장-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임원으로 이어지는 욕망의 사다리는 사실 나의 욕구가 아닌지도 모른다. 모두가 바로 위만을 동경하니, 나도 그것을 욕망하게 된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옆을 보아야 할 때를 놓치고, 아래를 보아야 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진짜 욕망은 무엇인가? 오늘도 내가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것 중에서 혹시 '뜨거운 아이스커피' 가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면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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