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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 작가 Jan 09. 2023

혼자 살기로 했다

용기가 필요해

'이 사람과 함께여서 나는 행복한 걸까?'

'이 사람과 살아서 나는 지금 행복한가?'

누군가는 결혼 생활이 너무도 지옥 같아, 뛰어내려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서 이혼을 결심했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그 혹은 그녀가 내 몸에 타고 오르는 독뱀같이 느껴져서 단 한순간도 같이 있을 수 없어 이혼을 결심했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미워도 다시 한번'이란 생각을 하며 단 한 가지라도 행복한 것이 있다면 참고 다시 살기로 했다고 했다.


나는 나는... 그 단 한 가지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혼자 살기로 결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를 데리고 나와 혼자 살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그는 내가 믿어왔던 그가 아니었다. 10년이 지나고 이렇게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가 있을까, 되짚어보면 그의 변화를 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던 바보 멍청이었다. 분명 시그널, 신호가 있었는데 말이다. 그 결정은 7개월 만에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한 결론이었다.


철없이 세상물정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 갓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 보는 눈이 매우 순수했던 나는 P를 남자로 처음 만났다.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만났다. 내게 직진이었던 그가 전세금을 사기당했다며 오갈 곳 없게 되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고 그 마음을 사랑과 구별하지 못했던 당시의 나였다. 그 안쓰러운 마음이 사랑으로 변하고 있었는데 단단하게 굳어지지 못했다. 그의 잦은 거짓말과 또 다른 거짓을 낳고 낳는 시댁의 부모님, 서류상 아들을 결혼시키자마자 이혼을 황혼이혼을 하였고 시부모님 각자의 삶에서 결국 우리 가족의 삶, 그리고 나의 삶을 편히 놓아주지 않았다. 잦은 출장과 집 앞에 기다리던 여자, 그리고 다른 여자와의 데이트, 유부남이면서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고 낯선 만남을 즐기려던 그 역시 더 이상 내 머릿속의 아이 아빠가 아니었다.


오빠에서 내 남편, 그리고 아이 아빠... 다시 오빠가 되려던 찰나 그는 내게서 떠났고 난 머릿속에서 영원히 그를 지우기 시작했다. 아무 미련이 없다. 아무것도 없는  P를 만나 무료 예식장에서 제대로 구입한 반지 하나 받지 못하고 '사랑'하나로 결혼을 약속했는데 집이 생기고 아이가 생기고 차가 생기더니 그에게 다른 여자까지 생겨버렸다. 어떤 미련도 없을 수밖에...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처음엔 몰랐는데, 사실은 답을 찾기 싫었던 것이지 몰랐던 것이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나에게 맞지 않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연애다운 연애를 해보지 않았고 사람을 보는 안목이 부족했다. 지금은 아니다. 대신 그 큰 대가를 기어코 시간과 돈으로 치르고야 말았다.  


새롭고 즐거운 환경이 주어지면 사실 그저 신나고 활기가 더불어 생긴다. 그래서 '신명 난다'는 말도 나온다. 난 결혼하면서부터 사실 건강했던 몸이 계속 여기저기 아파왔다. 그게 바로 신호였다. 시그널...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결혼했다는 책임감으로 그 결혼을 계속 이어갈 이유는 없었다. 단호하게 '아니다'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는 분명 아닌 게 맞다. 결코 사람을 보는 안목이 '아예 꽝'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자기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기 마련이다. 그러니 안목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결혼은 실제 생활이다. 얼마간 지나면 훤히 본모습이 거의 나온다. 난 알았다. 그 사람 P에겐 이상하리만큼 비밀이 많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식후 실제 결혼 생활이 힘들 수 있겠다는 것도...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 힘들어도 살겠어요?"

제삼자가 내게 물었다. 살아온 날들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난 엉엉 울면서,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대답했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힘들면 다시 찾아오라 했는데 그 후엔 갈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학창 시절 감기 한번 걸려보지 않을 정도로 튼튼했던 내가 결혼 직후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신경을 너무 써서 감당하기 힘들었고 결국 서서히 말라갔고 아파갔고 온몸이 다 타들어가 아픈 와중에, 이상한 병들이 내 몸을 휘휘 젓고 있을 때도 용기를 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살아야죠, 당연히 힘들어도 살아야죠."


난 책임감이 무척 강한 아이였다. 하나를 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해냈다. 그러니 성실하고 끈기 하나만큼은 학교 선생님들도 인정해 주셨다. 모범생이었던 비결이랄까?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감사한 재능은 바로 '성실함과 끈기'다. 그러니 무엇을 해도 굶어 죽을 일은 없다는 게 진리다. 단 1천 원이라도 빚지는 것 자체도 단연코 안 되는 일이라 가르치신 어른들이니, 망할 일도 없다. 절약과 검소함을 몸소 실천하면서 보여주는 분들이다. 그러니 부자로 사실 수밖에...


특히 우리 엄마는 돈이 없어도 반듯하게 성실하게만 살면 다 살아진다고 하셨다. 결혼을 유일하게 허락한 분이시도 했고 손수 결혼식에 입을 한복을 직접 만들어서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둘에게 선물 주시기도 했다. 이 둘째 딸에게만 손수… 지금 돌아보면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혼하고 없는 살림에 갈 곳도 없었던 우리를 기꺼에 맞아주시고 집을 내어주신 그분, 내가 부모라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그 사람이 이 지역 사람도 아니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나라면 단연코 "노(No)"다. 그래도 딸이 선택하면 어쩔 수 없지만, 처음부터 좋은 소리는 못했을 것 같다.


내 삶은 어찌 보면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고 순리를 따르지 못했다. 나를 가장 많이 걱정했던 아빠가 "이 결혼은 아무래도 아니다. 얼른 돌아와라."  첫날밤 몰래 전화를 주었던 떨리던 아빠의 목소리도 나는 기억한다. 돌아와 파혼을 할까도 했지만, 내 환한 표정을 보고 그저 단번에 받아들이시고 내 의견을 존중해 주셨다. 정말이지 내게 따로 걸어 말했던 그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말 그때 외엔 어느 순간에도 싫은 소리를 단 한 번도 내뱉지 않으셨다. 돌아보면 존경스러울 정도다. 난 그럴 위인이 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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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미련이 티끌도 없는 내 삶에서 유일하게 반짝이는 보석이 하나 있다. 내가 말이지~~ 전생에 ~~ 아마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난 이 아이를 꼭 만나게 해 달라는 유언을 하고 죽은 것 같다. 난 어떤 누구를 만났어도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만났을 거라고 확신하니까 말이다. 비록 싱글맘이 되었지만 이 아이는 내 눈 속에서 그 어느 누구보다 가장 빛나고 소중한 존재다.


이 아이와 있었던 그동안의 이야기도 하나씩 풀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진정 용기가 필요했다. 혼자 살기로 결심했을 때도, 그리고 아이를 양육하기로 다짐했을 때도, 이런 이야기를 하기까지도....


- 다음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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