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지?
“엄마! 오늘 친구들이랑 마라탕 먹고 바로 집으로 갈게요!"
학교 마칠 시간에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9월인데도 폭염주의보, 아직 여름날처럼 날씨가 너무 덥기도 더웠고 집에서 학교까지 오가는 길이 멀기도 멀어 오늘은 때마침 학교 마치는 시간이 같길래, 그 근처에서 서성이다가 오랜만에 아이를 데리고 같이 집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생각해서 일부러 데리러 갔으나 점점 아이는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엄마가 데리러 가면 눈치를 준다. 어느덧 그러는 나이가 되었다. 언젠가 후회가 될까봐 자주는 아니지만 시간이 있을 때 일 년에 몇 번은 아이를 꼭 데리러 간다. 가보면, 줄줄이 교문 앞에 차가 줄지어 서있다.
"딸아, 엄마 오늘 엄청 놀랐어. 이렇게 많은 차들이 있다니... 엄마가 자주 오지 못해 미안하네...."
정말이지 어떤 이유에서건 데리러 오가는 학부모들의 차를 보면서 놀랐던 때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먼 길을 뚜벅이 걸음으로 버스 타고 오가는 딸아이가 참으로 더욱 대견스러워 보였던 적이 있다.
그건 그렇고...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해 보였는데, 집에 와서 초저녁부터 피곤했는지 아이는 잠이 들었고 새벽녘에 공부를 좀 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고 했다. 아침에 눈을 뜨더니, "엄마, 오늘 학교를 안 가면 안 돼요?" 흐물흐물 거리는 몸짓으로 양손으로 엑스자를 그려가면 내게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가야지!", "어제 멀쩡하더구먼.."
조금 돌아보면, 우리 기상은 6시 30분이어야 7시 30분에 1시간 만에 부랴부랴 챙겨 등교하는데 8시면 아이학교에 도착하고 다음 내 직장으로 오다 보면 8시 15분에서 20분쯤에 도착한다. 아침밥을 제대로 챙겨 먹으려면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등교 후, 아침 8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의 꽉 짜인 시간표는 지금 보면 헉헉 숨이 막힌다. 나야 교사로서 중간에 1시간 비고 그때 밀린 업무도 처리하고 그러지만.. 학생들은 쉼 없이 7교시를 꽉 채운다. 내 학창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궁금할 정도다. 그러니 수업 시간 그 옛날에도(30년 전) 졸기도 하고 학교수업에 열중한 날은 집에 와서 초저녁 9시가 되면 피곤해서 바로 잠들곤 했던 것 같다. 그때 내 에너지는 학교에 오롯이 써댔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학교생활에 올인하지 않는다. 할 게 또 얼마나 많은가?
학교라는 공간은 보육의 개념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수업 시간에 졸고 있는, 혹은 딴짓하고 있는 학생들과 크게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고 보니, 학생들이 왜 학교 와서 졸고 있는지, 자야만 하는지 좀 더 이해가 되고 학교 안에서 교사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된다. 무조건 "자지 마, 일어나자!"가 아닌...
출근을 했다. 여전히 수업을 하는데 집중하지 못하고 안간힘을 쓰면 눈을 뜨려고 하는 학생도 보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엎드려 자는 학생들도 보인다. 난 솔직히 학교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시간이 훨씬 줄었으면 좋겠다. 공부도 공부지만 적당한 휴게 공간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비해 학업 성취 수준은 낮아졌다고도 하는데, 과연 그 기준이 무엇인지.. 오히려 요즘 학생들이 요즘 시대에 훨씬 잘 적응하며 살아간다. 인터넷도 잘하고 새로운 전자 기기도 잘 다루고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더 빨리 알아차리기도 한다. 학교에 갇혀 있는 연륜 있는 교사보다.. 그래서 아이에게 배우듯 학생들에게 배우는 점들도 꽤 많다.
분명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고, 학교라는 공간도 가르치는 내용도 많이 달라져야 한다. 수업과 생활지도가 우선시되어야 하는데 가끔은 내가 행정업무 담당자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더 많다. 학생들의 끼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뱡향이 아닌 다양한 방향을 학교는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그 중심에 현직 교사가 주축이 되어 교사의 역량과 재량을 자유롭게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난 결국 오늘 하루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믿어주고 학교를 보내지 않았다. 학교 교육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