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글쓰기 24일째
습관을 몸에 배게 하는데 최소 21일이 걸린다고 한다. 드디어 하루하루 글을 써온지 21일을 넘겼다. 오늘 브런치 통계를 보니까 가파르게 100을 넘겼음.. 겨우 104 일수도 있지만 아침에 98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고, 누군가 내 글을 읽어 준다는 게 재미있고 신기한 요즘인 게 사실이다. 푹 빠졌다. 책을 내지 않고도 이렇게 인터넷 상으로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80년대 초등학교를 보낸 나에게 그 멀게만 느껴졌던 2022년의 미래 모습이었나 보다.. ^^
최근 이틀 동안은 디즈니 만화 영화를 봤다. 하루는 <엔칸토: 마법의 세계>, 오늘은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디즈니를 방학 한 달 동안 9900원을 주고 구독하고 있어서 틈만 나면 하나씩 보고 있다. 내가 짚은 핵심은 모두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엔칸토>에서 큰 갈등은 주인공만 마법을 물려받지 않았다는 외로움, 두려움, 우울함 등에서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용기에 도전하고 자신을 믿는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서는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아빠와 소중한 많은 사람들을 잃는다. 서로를 미워하고 싸울 때 하나가 될 수 있는 믿음을 '시수'라는 드래곤을 통해 배우고 깨닫는다. 모두 해피엔딩! 그래서 난 '디즈니' 만화 영화를 참 좋아한다.
<믿음>이라.. 사람에 대한 믿음이 먼저 떠오르기도 했는데, 이건 좀 더 깊은 사색과 통찰 후에 글을 써보기로 한다. 그럼 오늘은 가볍게 내 글에 대한 '믿음'에 대해 잠시 끄적여볼까 한다. 읽는 것이 먼저일까 쓰는 것이 먼저일까? 잘 쓰기 위해서는 잘 읽어야 한다는데 요즘 나는 마음 가는 대로다. 코로나19 상황 전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관련 책을 쫙 펼쳐놓고 글 쓰는 것을 좋아라 했는데 요즘은 도서관도 맘 놓고 못 가니 핑계일 수도 있지만 확실히 글을 다양하게 읽지 못하는 것 같다. 기존에 있는 것에서 무언가를 바꾸는 것 변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향 그리고 안정지향적인 성격이 강한 편이었어서 식당, 먹는 것도 가던 곳만 자주 가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 많이 변했다. 달라졌다. 세상도 빨리 변하고 있는데 나만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몸이 알아서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전자책도 이제야 구입했다. 도서관에서 책 보는 느낌과는 다르지만 별 수 없다.
난 어떤 글을 써왔을까? 학창 시절 글짓기 대회에 나가면 어김없이 수상을 했다. 최고상을 받기도 했지만 가작부터 장려, 우수 등 다양하게 받았다. 글을 쓰고 나면 느낌이란 게 있다. 상 받게 될 느낌의 글은 마무리를 짓는 순간 '그래, 잘 썼다!' 딱 느낌이 온다. 문학 백일장에 나가면 '시'가 짧아 시가 얼른 창작이 될 줄 알았는데 사실 시라고 쉬운 건 아니었다. 대부분은 산문에서 수상을 했다. 내가 소설처럼 이야기를 꾸며내거나, 수필처럼 내 솔직한 이야기를 썼을 때 내 스스로의 만족감이 더 높았다. 대학생이 되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시의 느낌을 알았다. 당시에 수상하고 작가 활동을 바로 이어갈 수 있었지만 내 삶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았기에 여력이 없었다.
응모는 1년에 1-2번 했는데 대회에 나갈 때마다 응모할 때마다 상을 받았다. 작년 10월에는 <한라산>이라는 주제로 글을 하나 써서 일반부 최우수상을 하나 받았다. 조금 더 용기가 생기면 공개를 해볼까 한다. 진심을 담아 썼더니, 한 자리에서 2시간만에 글을 완성시켰다. 느낌이 왔다. 상 받겠구나. 좀 잘난 척 같긴 하지만, 사실 글을 자주 쓰는 편은 아니었다. 내 감정이 우울할 때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말에도 글에도 힘이 있는데 글은 기록에 평생 남을 수 있는 것이어서, 가능하면 좋은 긍정적인 글만 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에서 함부로 펜을 들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 글짓기를 해서 상을 받으러 자주 단상 앞으로 나갔다. 학생 전체 조회 때 운동장에서 대표로 나가 교장 선생님과 악수를 할 수 있는 영광의 시간이었다. 내가 글을 잘 쓰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 그 때 담임 선생님이 글을 쓸 때 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그 뒤로 내 주제는 좀 달라졌다. 예를 들어 백일장에서 "땀"이 주제로 나왔다면 노동으로 흘리는 땀이 1단계의 소재라고 생각하고 다른 시각에서 떠오르는 땀을 생각해냈다. 긴장해서 흘리는 식은 땀이 바로 그것이었다. 2단계의 나만 가지고 있는 색다른 경험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던 것이다. 그 때부터 다른 친구들과 좀 다른 글을 참신하게 쓰게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런 부분이 내가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지금도 글짓기 수업을 할 때 이 이야기를 종종 해준다.
어느 한 면접에서, "지금 당신이 산 속의 숲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사람들은 당장 이 위기를 맞서야 할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나무 위로 올라가겠습니다, 맞서 싸우겠습니다." 등등의 말로 대답하지만, "저는 꿈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라고 새로운 시각에서 답을 하듯이 내 글짓기의 내용은 때론 좀 엉뚱했지만 그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주었던 것 같다.
이제 학창 시절이 지나고, 밥벌이하는 직장인이 되고 결혼과 육아에 올인하다가 이제서야 내 시간을 갖고 있는 요즘 3단계의 글쓰기를 고민할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쓰던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쓰고는 있지만 좀 더 신중하게 써야 할 글들이 있고 말들이 있는 것 같다. 내 글에 대한 믿음은 강한 편인 것 같다. 아마 교사가 되지 않았다면 문예 창작과에 입학해서 조그만 카페를 운영하며 유명하지는 않아도 방송작가로서 아니면 평범한 동네 문인으로 소소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한 분야의 직장에 오래 있다보니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내 전문 분야는 분명 있다. 그 중 하나로 쓸거리는... <삶을 이해하는 국어 공부법>에 대한 글을 준비하고 싶다. "밑줄 쫙~!, 자자, 이 부분은 중요한 표현법이지?" 뭐 이런 식의 국어 공부법이 아니라 삶의 통찰력을 높여주는 국어 공부법, 문학 작품을 통해 내 삶의 세계를 이해하고 다른이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국어 공부법 말이다. 제목은 좀 더 재미있게 근사하게 차근차근 생각해봐야겠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지만, 그림을 통해서, 음악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때로는 글을 통해서 등등 변화의 기회를 맛볼 순간들은 수없이 우리 곁을 스쳐지나지 않는가. 기질은 바뀌지 않는다 해도 더 나은 성장을 바라는 건 공통된 인간의 심리라고 한다면 노력해서 잠시나마 변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나는 내가 변하고 성장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 최고의 희열을 느낀다.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천성이라고 생각하고 더 고유한 기질로 받아들이자.
통계 100을 찍으면서 순간 무척 기분이 좋았던 게 사실이지만, 수치에 연연하지 말고 내 천성의 글쓰기의 힘을 믿고 내 생각을 조금씩 그리고 오롯이 펼칠 수 있는 그런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저 글을 쓰는 게 기쁘고 신이 난다는 것.. 함께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룰 수 있는 친구들이 그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글쓰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내 글의 힘을 조금씩 조금씩 믿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