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왜 내가 행복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20대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회사에 취업하면 행복할 것이라 믿었고, 30대와 40대에는 직장에서 성과를 내고 승진하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중년기에 접어들어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도 얻고 경제적 여유도 생기며 자녀들도 무난히 성장했는데, 정작 나는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뒤돌아보니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세월 동안 진정으로 행복했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중년기에도 행복하지 않다면, 육체적으로 쇠퇴하게 될 노년기에는 더욱 행복하지 않을 텐데, 그렇다면 인생이 과연 행복한 것일까? 행복이란 대체 무엇일까?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이 마음속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과 미국 사람들의 행복이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국에 이민했다가 귀국한 친구와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한국 중년 남성이 추구하는 행복
우리나라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첫 번째 요소는 직장에서의 성공과 사회적 지위에서 오는 인정받음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회사에 취업하고 승진하면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두 번째는 자녀들이 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들이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특히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배우자와 결혼하는 것이 부모에게 행복을 준다고 여긴다. 특히 중년 여성들에게는 자신의 행복을 자녀들의 성공과 일치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과연 이런 방식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경쟁 사회를 통해 인정받는 것인데, 경쟁에는 항상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설령 계속 승자가 된다 하더라도 최후에는 결국 소수만이 남게 되므로 끝까지 성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런 방식의 행복 추구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 부모에게 행복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자녀들 역시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원하는 대학이나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 더욱이 자녀들은 대학 이후 독립적으로 살아가며 부모를 떠나게 된다. 자녀들이 떠나면 부모들, 특히 여성들은 극심한 상실감을 느끼게 되어 행복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게 된다.
미국 중년 남성이 추구하는 행복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에 따르면, 미국 사회의 행복은
첫째로 개인적인 성취와 자아실현에 있다고 한다. 직업적 성공뿐만 아니라 개인적 관심사를 추구하고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할 때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둘째는 의미 있는 관계이다. 배우자와 자녀들과 깊은 유대감을 갖고 친구들과 교류하며 공동체 활동을 통해 소속감을 가질 때 행복을 찾는다고 한다. 관계의 양보다는 질을 중시하는 것이다.
문화적 차이와 시대적 변화
한국과 미국에서의 행복은 문화가 다르고 사회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행복 추구 방식은 개발도상국, 특히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압축 성장을 통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려는 나라에서 흔히 겪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우리 중년 세대는 개발도상국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자녀들은 선진국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 가치관과 생각도 많이 다르다.
우리 중년 세대가 겪은 행복이라는 개념은 개발도상국에서 적용되는 행복 개념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으므로, 선진국에서 갖는 행복 개념으로 바꾸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새로운 행복의 패러다임
사회적 성공을 통한 사회 발전 기여가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개인에게 행복을 주기 어렵다는 뜻이다. 오히려 자기 내면의 성찰과 수용,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을 수용하고 만족하는 태도를 통해 중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제는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동문회, 직장 사람 등 넓은 인간관계를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의미 있는 관계, 특히 배우자와의 깊은 유대감, 좋은 친구들과의 교류, 그리고 교회나 절 등 공동체 생활을 통해 소속감과 지지를 얻으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중년기 행복의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개발도상국 시절의 성장 중심 행복관에서 벗어나, 선진국형 성숙한 행복관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결국 중년기의 행복은 외부적 성취보다는 내면적 성숙에서, 넓은 관계보다는 깊은 관계에서, 경쟁을 통한 승리보다는 자기 수용을 통한 평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