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심리학이 가르쳐 준 죽음의 자세
젊을 때만 하더라도 주로 친구들의 부모상에 조문하러 다녔다. 그런데 중년이 되어서는 어느새 친구들의 본인상 조문도 자주 다니게 된다.
A는 군대 동기였는데, 80kg에 키 180cm의 아주 튼튼한 운동 체질이었다. 회사 산악회 총무를 맡아 활발하게 활동했고, 성격도 서글서글해 붙임성이 좋았다. 작년 봄만 해도 소주 한두 병은 거뜬히 마시던 친구였는데, 작년 가을 장협착으로 세 번의 큰 수술을 받더니 이번 구정에 본인 상을 당했다는 부고를 받았다. 친구 B는 작년 말 송년회에서 갑자기 자신이 파킨슨병에 걸렸다고 고백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 나이에도 그런 병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런 친구들을 보면 건강관리를 소홀히 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도저히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 같다. 건강 검진을 아무리 성실히 받아도, 운동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죽음과 같은 큰 충격에 직면하면 누구나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제시한 이 모델에 따르면, 처음에는 죽는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두 번째로는 '왜 하필 나인가?' 하는 분노가 찾아오며, 세 번째로는 '어차피 인간은 죽는다'라며 스스로와 타협하게 된다. 네 번째는 깊은 우울의 시간이고, 마지막에야 비로소 운명을 수용하며 받아들이게 된다.
아내는 40대 중반에 유방암 3기 말 진단을 받았고, 11년간의 긴 투병 끝에 50대 중반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내는 40대의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나라면 도저히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이 다섯 단계를 겪으면서도 그 진폭이 놀라울 만큼 작았고, 내내 정신적으로 평온함을 잃지 않았다.
아내가 떠나고 난 뒤, 나는 오랫동안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신앙심이다.
아내는 끝까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쳐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 믿음이 극심한 암의 고통을 버티게 해 준 힘이었을 것이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둘째는 심리학적 자산이다.
아내는 상담사들을 지도하는 슈퍼바이저 상담사였다. 수많은 내담자의 고통과 아픔을 오랫동안 공감하고 함께 치유해 오면서, 아내의 내면은 조용하고 단단하게 깊어졌을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고도 부른다. 타인의 고통을 오래 곁에서 지켜본 사람은 삶과 죽음에 대해 남다른 통찰을 갖게 된다. 그 내면의 단단함이 죽음의 공포를 견디는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실제로 비교적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면, 타인의 고통과 죽음을 가까이에서 오래 경험한 분들인 경우가 많다. 성직자, 의사, 간호사, 심리상담사들이 그렇다.
죽음을 앞두고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내는 하늘나라로 떠나기 한두 달 전, 나에게 문득 이런 말을 꺼냈다. "내 삶이 의미가 있었을까?"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사람이 던지는 그 물음 앞에서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나는 두 가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상담사로서 수많은 사람의 아픔을 치유해 주었으니 그것 자체로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었고, 자녀들이 잘 자라 저마다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으니 엄마로서도 충분히 잘 살았다고. 아내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죽음을 생각하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첫 번째는 지금, 이 순간(here and now)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성공지상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늘 미래를 위해 현재를 유예한다. 지금 아끼고 참아서 나중에 여행도 가고 풍족하게 살자고 한다. 하지만 중년에 접어들면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다. 젊을 때는 미래를 위해 사는 것이 맞지만, 중년부터는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더 지혜로운 태도가 아닐까.
두 번째는 자신이 생각하는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암 병동에서 여러 환자 곁에 함께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은 "내 삶이 가치 있었는가, 의미 있었는가"였다. 의미 있는 삶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적어도 스스로 '이것이 내 삶의 의미'라고 여기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 질문 앞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