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붙잡은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다. 빅터 프랑클이 수용소에서 배운 것
목회는 실패했지만, 삶의 의미를 찾는 친구
A는 대학을 졸업한 후 진로를 고민하다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힘들고 낯선 타지 생활 속에서 그는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고, 신학대학을 마친 뒤 귀국했다. 대형 교회의 부목사로 첫발을 내디뎠지만, 다음 부임지인 개척교회는 녹록지 않았다. 궁핍했고, 가난했다. 결국 아내는 그 가난을 견디다 못해 이혼을 선택했다. A는 교인들의 권유로 재혼했지만, 6개월 만에 또다시 이혼했다. 두 번의 이혼, 교회는 사실상 무너졌다.
목회에 실패한 A는 한동안 방황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섰다. 지금은 노숙자들 곁에서 전도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A의 삶을 오래 바라보았다. 과연 그 삶이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가족을 부양하고 기본적인 경제생활이 이루어지지 않는 목회는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A는 달랐다. 경제적 궁핍도, 아내의 요구도, 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삶의 방향과 맞지 않으면, 그는 가차 없이 선을 그었다.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그것이 삶의 의미였기 때문이다.
세 가지 삶의 유형
첫 번째는 손끝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골프, 당구, 맛집 탐방처럼 감각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에서 삶의 기쁨을 찾는다. 이 또한 분명히 인생의 즐거움이다.
두 번째는 지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음악, 예술, 여행을 통해 지적 만족과 행복감을 얻는다.
세 번째는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다. 감각적 쾌락이나 지적 만족을 넘어,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의미 있기를 바란다.
이 세 가지 유형에는 우열이 없다. 어떤 유형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다. 살아온 배경, 직업, 학식, 경험이 쌓여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게 된다. 경제적 여유가 행복 추구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행복의 방향을 결정짓지는 않는다.
임종 앞에서 던지는 질문
아내를 11년간 간병하면서 암 요양원에서 환우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분들은 과거의 재산이나 경력, 학력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분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단 하루를 더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틈틈이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내 삶은 의미가 있었을까?"
아내도 임종을 앞두고 나에게 물었다.
"여보, 내가 잘 살았어? 내 삶에 의미가 있었어?"
인간은 본질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존재다. 그러나 모두가 그 물음에 다가가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삶이 다르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에 대해 가장 명료하게 이야기한 사람은 빅터 프랑클 박사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어 생명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 나날을 보냈다. 그 극한의 시간 속에서 그는 이상한 통계를 발견했다. 1944년 크리스마스부터 1945년 새해 사이, 수용소의 사망률이 급격히 치솟았다. 추위가 더 심해진 것도 아니었고, 식량이 더 줄어든 것도 아니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많은 수감자들이 "크리스마스 전에는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버텨왔다. 그러나 그 날짜가 지나갔다. 희망이 현실에 부딪히는 순간, 그들은 버텨온 모든 힘을 한꺼번에 잃었다. 몸이 먼저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기대가 무너지자, 몸도 따라 무너진 것이었다.
반면, 살아남은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에게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 완성해야 할 일, 살아서 세상에 전해야 할 이야기 — 그 이유가 거창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삶이 자신에게 여전히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믿음이었다. 의미를 붙잡은 사람들이 극한의 고난을 견뎌냈고, 끝내 생명을 이어갔다.
프랑클은 수용소에서 배운 것을 이렇게 말했다.
"삶의 의미를 묻지 마라. 삶이 당신에게 묻게 하라."
수용소는 이름도, 옷도, 가족도 모두 빼앗아 갔다. 그러나 프랑클이 끝내 빼앗기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선택하는 자유였다.
어떤 지위에 있든, 무엇을 이루었든, 중요한 것은 자기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다.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큰 무언가일 수도 있지만, 지극히 사소하고 자기만의 것이어도 충분하다. 그 의미 하나가, 어떤 역경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나에게 삶의 의미를 묻는다면, 그것은 사진이다.
아내를 잃은 후, 나는 한 사람의 일생이 그냥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서 소멸되어 가는 것이 마음 아팠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었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사람들의 마음, 상실 슬픔 미안함을 셀프 포트레이트를 찍었다.
다음으로는 아내가 살았던 흔적을 담았다. 유물을 직접 찍지 않고, 그가 머물렀던 자리, 벤치, 침대를 통해 한 사람이 살았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요즘은 상실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서서히 빛으로 나아오는 장면을 찍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고통과 아픔을 겪는다. 그렇다고 누구나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절망과 좌절 가운데서도 한 줄기 빛은 반드시 있다. 견디다 보면, 그 빛이 나에게 비친다.
나는 그 순간을 포착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