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룰렛

허구

by 이영일





※ 트리거가 될 요소가 있으니 주의





나는 오늘도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은 채로 가만히 숨만 내쉬고 있었다. 휴대폰은 일부러 손에 아슬아슬하게 닿을만한 곳에 두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만 확인하고 싶어질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한 번 이불을 내리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역시는 역시였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쯤이면 학원 가는 길에 연락을 할 때인데 왜 안 하지. 나는 괜스레 울고 싶어졌다. 출처도 모를 감정이 가슴속에 응어리처럼 자꾸 맺혀 갔다. 나는 심호흡을 몇 번 반복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그랬다. 죽을 것 같아서. 갑자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주제에 죽을 것 같은 느낌 따위는 두려워하는 게 웃겼다. 그 애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을 때마다, 늦어질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는 주제에. 내 눈에서는 기어코 눈물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어쩌면 죽을 용기가 없는 걸까. 아니다. 죽는 건 용기 같은 것으로 치르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집 밖으로 나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무 생각도 없이 최고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올라가 어느새 문이 열렸다. 나는 조용히 그곳에서 내려서 옥상을 향해 올라갔다. 옥상은 당연스레 닫혀 있었다. 닫힌 문을 두들기기에도 눈치가 보여 그냥 기대 앉고 말았다. 칠이 약간 벗겨진 차가운 옥상 문에 기대고 있으려니 기분이 더 우울해졌다. 나는 누군가가 지켜보는 기분이 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버릇처럼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 사이에 답장이 와 있었다. 별것도 아닌 답장이었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구원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나 완전 지각]


고작 이런 것에 안심하는 내가 우스웠다. 하지만 마냥 비웃을 수도 없었다. 이런 게 사랑이라면 나는 지독한 사랑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내가 그 애를 처음 본 건 중학교 이 학년 새학기 때였다. 그 애는 예쁘고 똑똑하고 모범적이어서 너무나 당연스럽게도 반장을 맡았다. 그 말은 즉슨 나와 어쩔 수 없는 연결고리가 생긴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들었다, 반장인 그 애는 종종 나에게 말을 걸고는 했다. 주로 숙제를 했는지, 수행평가를 제대로 수행했는지 같은 것에 대한 말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랬다. 나도 처음에는 욕심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그냥 학교에서 이렇게 가끔씩 짧은 말을 주고 받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에게서 욕심을 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 문득 하굣길 방향이 똑같다는 걸 알고 나서 그 애와 나는 종종 나란히 걷고는 했다. 그 애는 내가 불편해하지 않게 적당히 말을 걸어 주고는 했다. 나는 그 다정함이 좋았다. 그 애를 더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요소였다. 그렇게 한 학기를 같이 보내다 보니 내 휴대폰에는 그 애 전화번호가 자리하게 됐다. 연락은 그 애가 먼저 했다. 그 뒤로 핑퐁처럼 대화가 이어지고는 했다. 아주 느린 핑퐁. 그래도 좋았다. 이 핑퐁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번잡한 머릿속도, 지루한 일상도 그 애가 끼면 모든 게 완벽해지는 순간이 됐다. 그때 나는 깨달았던 거다. 이건 단순히 좋아한다는 감정을 넘어선 사랑이라고.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주제에 사랑에 대해 뭘 아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그저 이런 감정은 사랑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 생각은 없었다. 나는 내심 그게 두려우면서도 흥분됐다. 나는 지금까지 사랑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으므로 그 애가 내 첫사랑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망가질 생각은 없었다. 그냥 사랑은 사랑으로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애는 나를 망가뜨렸다. 나와 적당히 친한 것보다 남자애들과 더 친밀했고, 나는 그 애가 남자애들과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하며 웃는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웠다. 나는 그 애의 털끝 하나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데에 반해 남자애들은 그 애의 머리를 헝크러뜨리고 장난스레 어깨를 치고. 그게 너무 싫었다. 심지어 학교 내에서는 어울리는 무리조차 달라서 그 애와 나는 시선 하나 제대로 얽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그 애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 애는 나와 눈을 맞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 애가 눈을 맞춰 줄 때는 숙제를 걷을 때 같은 반장스러운 면모를 보여야 할 때였다. 내가 너무 바보처럼 느껴졌다. 소위 말하는 찐따가 나인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였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나는 죽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애와 죽음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겠냐만은 나는 그 애가 나에게서 멀어질 때마다 죽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여야만 했다. 그 애가 내 일상에서 사라지는 게 두려웠다. 머리에 피가 마르고 좀 더 성장한 나라면 이런 것 따위는 한순간일 뿐이라는 걸 알았겠지만 고작 열다섯 해를 산 나에게는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헉 안 혼났어?]

[나보다 늦게 온 애들 있어서 살았어]


학원 수업이 지루했는지 그 애는 수업 중에 답장을 보내 왔다. 나는 답장 속도가 썩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내가 또 바로 답장을 보내면 그 애는 부담을 느낄지도 모른다. 나는 일부러 시간차를 두기로 했다. 다시 번데기처럼 이불 안으로 꾸물꾸물 들어갔다. 그 애는 활발하고 공평한 애라서 반 아이들을 차별하는 일은 없었다. 나보다 더 찐따 같은 애도 챙겼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질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라야.”


나는 그 애가 부르는 내 이름이 좋았다.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던 이름도 그 애가 부르면 귀에 쿡 박히는 느낌이었다. 다른 애들이 부르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런 걸 두고 콩깍지라고 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이 콩깍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 애가 내 이름을 스스럼없이 부르는 것에 비해 나는 그 애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었다. 그냥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휴대폰에도 딱 이름 두 글자로 저장해 놓았으면서 그랬다. 그래서 늘 이름을 생략하고는 했다.


“잘 가. 내일 봐.”

“응.”


그 애는 사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바로 뒤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집에 가야 되는 게 맞지만 나는 늘 그 애를 데려다주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조금이라도 그 애와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랬다. 그 애의 옆모습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애가 해 주는 잘 가라는 인사가 듣기 좋았다. 그렇게 그 애와 헤어지고 나면 나는 늘 먼저 그 애에게 연락을 하고는 했다. 대체로 잘 들어갔냐는 물음이었다. 아까까지 바로 코앞에서 엘리베이터 타는 것까지 봐 놓고 그랬다. 그렇게 연락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띄엄띄엄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학원을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게 아쉬우면서도 좋았다. 어쨌든 나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길에서 그 애라는 오아시스를 발견한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망가지기 시작한 건 방학을 하고부터였다. 나는 부모님께 방학 동안은 학원을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잔뜩 혼날 각오를 하고 한 선언이었지만 부모님은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이셨다. 나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껴야만 했다. 내 의견을 존중받기보다는 방치를 당하는 기분도 없잖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방학 내내 집에만 있게 됐다. 망가지기 좋은 환경이었다.

나는 점점 그 애와의 연락에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나와는 달리 방학을 해도 성실하게 학원을 다니던 애라서 연락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머리와 마음이 따로 놀았다. 나는 때때로 울었다. 종종 괴로웠고 가끔 슬펐다. 이게 사랑이라면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잠시 동안은 해 봤다. 누가 들으면 비웃을만한 생각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 애에 대한 생각에 파고들고 싶지 않았지만 자꾸만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혼자 있고 싶었다. 혼자 가만히 불을 끄고 누워 있으면 그 애 얼굴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흐릿한 얼굴 선과 또렷한 눈이 둥둥 떠다녔다. 그 애는 눈이 크고 쌍꺼풀이 없었다. 나와는 반대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처진 눈매가 웃을 때마다 순해 보였다. 웃을 때조차도 억세 보이는 나와는 달랐다. 그래서 그 애를 더 좋아하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이제 끝났다 완전 피곤해]


밤 아홉 시가 넘어간 시간이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될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친구들과 연락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라 더 어려웠다. 나에게 있어서 그 애와의 연락은 일종의 사회성 기르기였다. 어떤 타이밍에 어떤 대답을 하는 게 올바를지, 상대에게서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와 같은 실험과도 같았다. 실험 대상이 그 애인 한 아마 영원히 끝나지 않을 실험일 것이다.


[고생했네 집에는 잘 가고 있어?]


아마 답장은 늦게 올 것이다. 그 애는 학원 버스 안에서 다른 애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을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애에게 답장이 올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 적막부터 깰 필요가 있었다. 왠지 적막 속에 있으면 일 초조차 십 분처럼 느껴지고는 하니까 말이다. 나는 내 기분을 고려해서 휴대폰으로 적당한 노래를 틀었다. 방 안은 금세 그 노랫소리가 차올랐다. 느리지만 늘어지지는 않는 템포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듯 했다. 나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 애가 떠올랐다. 그 애의 얼굴이 떠오르다가도 그 애가 나에게 하던 말들이 떠오르다가도 자꾸만 그 애와 관련된 것들이 비집고 튀어나왔다. 생각을 안 하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것처럼 그랬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역시나였다. 십오 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답장이 올 리도 만무했다. 나는 어느샌가 그 애의 일상을 꿰고 있었다. 방학 동안 그 애의 일상은 대부분 학원이었다. 오전에 일어나 점심을 먹고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밤 늦은 시간에 학원 버스를 타고 귀가를 한다. 그러면 씻고 나서 그제야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방학이라고 하기에는 방학답지 않은 일상임에는 틀림없었다. 물론 주말에는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 같았다. 내가 확신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애는 친구와 노는 걸 굳이 나에게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평소보다 답장이 한참 늦게 오면 누군가와 놀고 있는 거겠거니 했다. 그런 탓에 내가 먼저 그 애에게 나서서 놀자고 할 수도 없었다. 말을 하면 거절을 당할 것만 같았다. 그러면 나는 또 숨을 헐떡이며 옥상 문 앞에서 기대 앉아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혹은 칼을 들고 설치거나. 어쨌든 내 목숨 하나 귀한 줄 모르고 마구잡이로 난도질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 스스로 숨통을 조이려 애를 쓰고 말 것이다. 나는 그렇게 될 상황이 무서웠다. 그러면서도 때때로 각오를 다지고는 했다. 누군가 보면 내가 너무 유약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한심하리만치 파멸적일지도, 파멸적인 것처럼 한심해 보일지도. 주된 키워드는 한심함이겠지. 고작 중학생 따위가 어떻게 사랑을 알아서 사랑에 목숨을 내놓니. 동성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어딘가 비뚤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제 집 피곤해]


기다리던 답장이 왔다. 아주 간결한 글자들이었다. 나는 조금 허탈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내가 고심해서 꾹꾹 눌러 담은 한 글자 한 글자가 그 애에게는 별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우습게도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습관처럼 또 다시 한 글자 한 글자를 신중하게 생각했다. 이래서 습관이 무섭다고 하나 보다. 관성적인 게 크기도 하겠지. 나는 마치 잘 길들여진 개처럼 그 애의 답장을 기다리고 그 애에게 할 말을 하나씩 골라내기 바빴다. 이걸 행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내심 내 마음 한구석은 부풀어 터질 것만 같았다. 설렘이라면 설렘이라고 할 수 있을 만했다. 이것도 관성일까. 그 애에 관련된 거라면 일단 설레고 보는 게 있는 걸까.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했다. 막상 그 애는 아무런 생각도 없을 텐데 나 혼자 유난이었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네]

[좀 놀다 자려고 어차피 늦게 일어나도 되니까]


그렇구나. 나는 그 말에 왠지 모르게 안심했다. 과장을 보태서 놀다가 자겠다는 그 애의 말이 꼭 나와 놀다가 자겠다는 말처럼 들려서였을지도 몰랐다. 원래 사랑에 빠지면 이렇게 착각을 하기 십상인가 보다. 이제 곧 그 애가 씻을 시간이 가까워 왔다. 이제 답장은 또 늦어질 것이다. 나는 다시 가만히 정자세로 누워서 그 애를 상상했다. 씻고 있을 그 애. 하지만 그 애의 몸을 본 적은 없기 때문에 또렷하게 상상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애라면 잘록한 허리와 적당한 크기의 가슴을 가지고 있겠지. 나는 이런 상상을 하며 약간의 죄책감을 함께 느껴야 했다. 쭉 뻗은 다리와 함께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떠올렸다. 사춘기일 때는 이런 성적인 것에 큰 흥미를 가지게 되기 마련이라고 했다. 나 역시 사춘기를 거치고 있는 아이에 불과했고 좋아하는 사람을 상대로 성적인 호기심을 드러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 것뿐이었다. 물론 상상만으로 끝낼 뿐 다른 것으로 나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무심코 눈을 떴다. 어둡던 눈앞에 갑작스레 빛이 들이닥치니 모든 게 흐릿하게 보였다. 눈을 몇 번 깜빡이자 눈의 초점이 다시 돌아왔다. 휴대폰을 확인하고 싶다가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확인 후에 내 마음이 어떨지 뻔히 알면서. 결국 나는 확인하고 말았다. 곧 연락이 올 시간이었다. 나는 일부러 휴대폰으로 다른 것들을 보며 그 애의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 휴대폰에서는 아직도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노래를 끄고 대신에 다른 영상을 보기로 했다.


그 애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연락이 올 시간이 조금 지났는데도.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연락이 와야 한다고 생각한 게 벌써 몇 분이 흘렀다. 눈은 영상을 보고 있으면서도 귀로는 메시지 알림 소리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죽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졌으면 했다. 나는 극단을 향해 치달았다. 방 밖에는 부모님이 있어서 나갈 수는 없었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양손을 들어 포갠 뒤 내 목을 감쌌다. 그대로 힘을 주니 목이 아파왔다. 이렇게 숨이 멎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이상 그 애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면 차라리 행복할 것 같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목에서 손을 뗐다. 용기 없는 찐따. 그게 나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 스스로가 혐오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추하다. 별볼일없다. 도대체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자학을 하고 만다.


그때 메시지 알림 소리가 울렸다. 나는 파블로프의 개마냥 휴대폰을 확인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나는 휴대폰을 집어던지고 싶다는 충동을 참아내야 했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휴대폰을 수도 없이 던져서 너덜너덜해졌지만 현실의 나는 그 충동을 생각보다 잘 참아냈다. 그게 딱히 기특하다든가 그런 건 아니었다. 이것도 사춘기 증상 중 하나인 걸까. 나는 그런 증상을 잘 억제하고 있는 걸까. 이딴 생각을 하다가도 또 그 애. 그 애가 머릿속을 침범한다. 짜증 난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나열해 보자면 아마 너무 추하고 유치해서 봐 주기 힘들 정도일지도 모른다. 나는 숨이 턱 막혀 걸리는 기분이 들어 다시 크게 호흡을 했다. 후, 하, 후, 하. 몇 번을 반복했다.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플라시보 효과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휴대폰을 저 멀리 놓아두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머리 끝까지 푹 덮고 나니 마치 관짝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물론 나는 죽으면 화장을 할 테지만 만약에 관에 들어가게 되면 이런 기분이겠지. 어둡고 비좁고 숨이 턱 막히는 공간. 어쩌면 그게 지금 나에게 딱 알맞은 공간일지도 몰랐다. 나는 문득 내 머리통을 으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도중에 다시 메시지 알림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속지 않겠다는 마음을 반쯤 먹은 채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 애였다.


[치킨 먹고 싶다]


이때 올바른 대답이란 무엇일까. 내가 사 줄까? 나랑 같이 먹으러 가자? 말없이 기프티콘 보내기? 나는 가늠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양념치킨 맛있는데 같은 시덥잖은 소리나 했다.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멍청한 놈.


[나는 간장도 좋아]

[뭐가 제일 좋아?]

[요즘은 그냥 후라이드?]


귀엽다. 별게 다 귀엽다. 나는 마치 귀엽다는 말을 처음 배운 사람처럼 그 애에 관련되기만 하면 귀엽다는 말을 남발하게 됐다. 귀엽다와 죽고 싶다라는 말 사이에 수많은 감정이 촘촘히 세워졌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누군가 죽여 줬으면 좋겠다. 살려 줘. 네가 나 좀 살려 줘. 너는 나에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존재야. 오늘도 마음속 깊은 곳에 되뇌였다. 곧 죽어도 입밖으로는 낼 수 없는 말이었다. 그 애는 아마 이런 내 마음을 알면 나에게서 멀리 아주 멀리 도망갈 게 뻔했다. 내 마음은 그 애가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깊었고 퀴퀴했다.


그 후로 나는 종종 번지점프를 하는 생각을 했다. 말이 좋아 번지점프지 그냥 안전장치 없는 번지점프, 그러니까 추락일 뿐이었다. 옥상에서 떨어지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면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들고는 했다. 떨어지는 중간에 심장이 멎어 고통을 덜 느끼기라도 할까. 그런 생각도 해 봤다. 그러면 차라리 다행일 거라는 생각도 더불어 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운이 안 좋아 내 몸에 있는 모든 뼈가 으스러지고 머리통이 으깨지고 나서야 숨이 멎는다면 어떻게 하지. 아니면 그러고도 숨이 붙어 있어서 살아남으면 어떻게 하지. 그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을 텐데. 이렇게 생각을 하다 보면 내 마음은 복잡해졌다. 겨우 살아남아서 불구가 된다면 그 애와 지금처럼 연락할 일도, 하교길을 함께 걸을 일도 사라지겠지. 끔찍했다.


그 애를 볼 수 없는 방학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매일 매시간 그 애의 연락을 기다렸고 그 애는 조금씩 연락이 느려졌다. 나는 괴로웠지만 그걸 티 낼 수는 없었다. 대신에 스스로가 삐거덕거리며 더 고장나기 시작했다. 거진 매일을 울었다. 어느 날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도 했고 어느 날은 소리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종종 옥상 문에 기대 앉아 있기도 했다. 손잡이는 뻑뻑하게 잠겨 있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는 다른 방법보다도 옥상에서 떨어지는 방법이 제일 근사하게 느껴졌다. 제일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인 것도 같았다. 나는 어리석게도 자유를 찾기만 했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게 메여 있는 막막함에 숨이 막혔기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누군가 그랬다. 사춘기가 제때 오는 것도 축복이라고. 그렇다면 나는 축복을 받은 걸까. 아니면 이 지독한 사춘기는 저주와 같은 걸까. 왠지 모르게 우울함이 내 몸을 잠식해 왔다. 나는 마치 수렁에 빠지는 것처럼 우울에 깊이 빠져만 갔다. 그 애는 이런 내 마음을 절대로 모를 것이다. 아니, 몰라야 한다. 나는 그 애에게 있어서 같은 반에 속하는 애일 뿐일 테니까. 때때로 지겨웠다. 그 애 하나 때문에 죽음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남을 보듯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커터칼로 손목에 살살 자국을 남겼다. 아주 연한 자국이었다. 나는 아픈 게 싫었으므로 그보다 더 깊이 칼을 꽂아 넣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일시적으로 붉게 일자로 떨어지는 자국을 보며 만족하고 말았다.


[오늘 수업 지루해서 땡땡이 쳤다]


그 애에게서 연락이 왔다. 늘 모범적인 모습만 보이던 그 애와는 거리가 먼 단어가 쓰여져 있었다. 나는 그 사실에 놀라기도 잠시, 또 다시 뭐라고 답장을 보낼지 고민을 시작했다. 왜 땡땡이를 쳤는지 물어보면 너무 궁금해하는 것처럼 보일까. 취조하는 느낌이 들기라도 할까? 나는 그 애에 관련된 거라면 사소한 것까지 예민할 정도로 신경을 썼다. 그래서 그 애와 연락을 두세 번 주고 받는 것만으로도 피곤할 때도 있었다.


[땡땡이 치고 뭐 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그거였다. 그 애에게는 친구가 같이 피시방에 가자고 했다는 답장이 왔다. 그 애와 피시방 또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아는 게임이라고는 땅따먹기밖에 없을 것 같이 생긴 애. 나는 가만히 누워서 그 애가 피시방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마우스를 달칵거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애도 욕이라는 걸 할까? 열을 내며 험한 말을 쏟아내고 마우스를 던지기도 할까. 그런 모습도 인간적일 것 같기는 하다. 아무래도 콩깍지가 단단히 끼었나 보다. 한숨 쉬듯 웃었다. 이게 무슨 망상이람.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누운 채로 하도 몸부림을 쳤더니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다. 나는 머리를 정리하고 부엌으로 가 물을 마셨다. 냉수 마시고 속 차리기라도 해야 될 것 같았다. 집 안은 고요했다. 나밖에 없으니 고요한 게 당연하겠지만. 나는 이 고요함이 좋다가도 거슬릴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거슬리는 때였다. 무슨 소리라도 필요했다. 다시 방 안으로 걸어들어가 휴대폰으로 노래를 틀었다. 그제야 나는 안심이 됐다. 아무래도 나는 청각에 예민한 것 같다.


그 애가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간다고 했다. 삼박 사일쯤. 그 나흘을 내가 견딜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변수가 생기면 견디지 못해서 무너져 내리는 내가 그걸 견딜 수 있을까. 나는 갑자기 내 스스로가 너무나도 혐오스러워졌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못하면 버티지 못하는 나. 이 모든 하루하루를 없애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존재하고 싶다는 마음에 조건을 걸고 마는 모습이 치졸해 보였다. 나는 겨우 재미있겠다며 잘 다녀오라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남겼다. 솔직해지지 못하는 내가 한심해 보였다. 온갖 좋지 않은 표현은 다 붙이고 말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마냥 나는 나에 대해 악담 아닌 악담을 했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천천히 내쉬었다. 그 애를 알게 되면서 생긴 버릇이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쿵쾅거리는 심장이 조금 진정될 때도 있었다.


그 애에게 답장이 오지 않은지 네 시간이 지났다. 내 불안도는 높아져만 갔다. 이게 이렇게 초조할 일인가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은 생각을 따라가지 못했다. 일부러 생각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고 애도 써 봤다. 웃긴 영상을 보면서 웃지 않아 보거나 책을 펼쳤다가 한 페이지도 채 읽지 못하고 덮어 버리거나 기타 등등. 울고 싶었다. 속이 답답했다. 속에 담긴 말로 표현 안 되는 감정들이 눈물과 함께 흘러내리면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하지 않을까. 나는 천천히 두 손으로 내 목을 잡아 눌렀다. 힘을 주면 줄수록 기침이 나왔다. 나는 천천히 목에서 손을 떼어냈다. 눈물이 고이려다 말았다. 나는 언젠가부터 그 애에게서 답장이 오는 것과 죽음 사이에서 줄 타기를 하고 있었다. 나 홀로 아슬아슬한 게임 같은 거다. 나는 매번 내기처럼 이 게임에서 그 애가 이기기를 바라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죽음에게 손을 들어 주고 싶고 만다.


“소라야, 너는 죽고 싶었던 적 없어?”


어느 날 그 애가 나에게 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그 애와 공통점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말했다. 있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마치 말해서는 안 될 것을 말하는 사람처럼. 그러자 그 애가 웃었다.


“나도. 나도 있어.”


공통점이 생겼다. 둘만의 비밀이 태어났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어서 조용한 목소리로 떠드는 그 애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 애는 나긋나긋하게 죽음에 대해서 말했다. 사실 나 정말 죽고 싶었던 적이 있어. 나는 그 애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 애가 하는 말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놀라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왜일까. 그 애는 이미 나에게 절대자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걸까. 무조건 받들 수밖에 없는 존재처럼 그 애가 하는 말은 내 귀에 다 옳은 것처럼 들리기 시작한 걸까. 의문을 가지다가도 나는 당연스레 그 현상에 대해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애는 거리낌이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친밀감이 흘러넘치지 않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사춘기 때문에 그런 거래.”

“그렇구나.”

“사춘기 때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대.”


그 애는 어디에서 들은 건지 출처도 알 수 없는 말을 나에게 전달했다. 그 애가 하는 말에 대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긍정뿐이었다. 그도 그럴게 나는 그런 현상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알고 싶은 마음도 그다지 없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오로지 그 애였다. 그 애가 하는 생각이었고 그 애가 하는 말이었다. 그 두 개가 상충해 버렸으니 나로서는 조금 곤란할 따름이었다.


“너는 어떻게 죽고 싶어?”

“글세......”

“나는 최대한 덜 고통스럽게 죽고 싶거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죽고 싶어. 이렇게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니가 하고 싶은 거라면 그게 뭐든 그렇게 하고 싶어. 그게 내 마음이었다. 마치 교주를 따르는 맹목적인 신자가 된 것처럼 나는 그 애를 따르고 싶었다.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내 죽음에 대한 인식은 이로부터 시작된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 후로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죽음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대체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교살하거나 투신을 하고는 했다. 약을 먹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방법을 고르기로 마음먹었다.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심리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옥상에 찾아간 것은 그 애가 평소보다 여섯 시간 가량 답장이 없었을 때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극도의 불안감을 느껴야만 했다. 심장이 평소보다 불규칙하고 더 빠르게 뛰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마음 한 구석이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처음으로 죽고 싶었다. 내 삶을 폐기하고 싶었다. 고작 그 애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내 몸이 산산조각이 날 투신을 결심한 것이다.


나는 처음 옥상을 향해 올라가던 때를 기억한다. 괜스레 비장한 각오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끝층을 누르던 내 모습이 지금 보면 퍽 웃기겠지만 그때만큼은 진지했다.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 서서 나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문이 열리고 나서는 일 초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사람마냥 그곳을 떠났다. 몇 계단만 더 오르면 옥상이었다. 나는 바람을 맞으며 떨어져 내릴 내 모습을 상상하며 계단을 올랐으나 현실은 상상과는 달랐다. 옥상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마치 나 같은 사람이 올 줄 알았다는 듯이. 나는 문 손잡이를 잡고 몇 번이나 움직였다. 손잡이는 철컥거리며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옥상 문에 기대 앉았다. 칠이 살짝 벗겨진 철문은 차가웠고 군데군데 까칠했다. 나는 그 부위들을 살살 매만졌다. 마치 교감이라도 하는 것처럼 신중하게 문지르다 보니 손가락 끝이 예민하게 느껴졌다.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내가 마구잡이로 울었던 것은. 나는 소리를 속으로 삼키며 울었다. 억울했다.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 하다니. 그 애가 그랬는데. 자살은 스스로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수단이기에 좋은 것이라고 그랬는데. 나는 자살을 결심했지만 죽음을 결정 지을 수는 없었다. 약간의 허탈함과 죽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다시 집으로 향해야만 했다.


집에 돌아와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휴대폰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답장이 와 있었다. 그 애에게 온 답장은 아니었다. 다른 친구에게 온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허탈해서 웃었다. 휴대폰을 확인하는 짧은 시간 동안 그 애에게서 뭐라고 왔을지 상상한 순간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나는 친구에게 뭐라고 답을 할 의욕조차 잃었다. 또 눈물이 슬금슬금 차올랐다. 이번엔 무엇 때문에 우는지 알 수 없었다. 온전히 그 애 때문에 우는 건가. 그 애가 뭐라고. 그 애가 나한테 그렇게 대단했나. 사실 알고 있었다. 그 애는 내게 대단했다. 그 애는 신과 비슷한 영역에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그 애에게 대적할 이는 없었다. 나는 그 애가 얼마나 굉장한지 계속해서 상기했다. 우는 것에 정당함을 부여하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나는 늘 정당성을 부여하고 합리화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였으므로. 손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눈물이 축축하게 묻어나왔다. 나는 손에 밴 눈물을 티셔츠에 아무렇게나 닦은 뒤 몸을 일으켰다. 얼굴을 씻고 싶었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서니 발갛게 부어오른 눈이 먼저 눈에 띄었다. 나는 찬물로 얼굴을 헹구듯 문질렀다. 그리고 다시 거울 안에 있는 얼굴을 바라봤다. 입꼬리를 올리고 치아를 드러내며 어색하게 웃어 봤다. 어색한 웃음에 그 애의 웃는 모습이 겹쳐진다. 그 애는 웃는 것도 자연스러웠는데. 자연스럽게 그 애 생각으로 튄다. 그렇게 다시 거울로 돌아오면 웃는 둥 마는 둥 하는 내가 있다. 어느새 입꼬리는 어긋나 있었다. 뺨이 경련이 일 듯 아팠다. 나는 정신을 차리듯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부엌으로 가 물을 한 컵 마셨다. 수분을 배출한 만큼 투여한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 애에게 답장이 온 건 그날 밤이었다. 이제 집에 가는데 피곤하다는 말이 담긴 메시지였다. 피곤하다는 말뿐이었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오히려 다른 애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이면을 내게는 보여 주는 것 같아서 흥분되기도 했다. 나는 그 애의 어두운 면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남들은 절대로 모를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종종 심각한 듯 죽음을 속삭이던 그 애를 떠올리면 더욱더 그러하였다. 킥킥거리며 웃었다. 울다가 웃는 꼴이 웃겨서 또 웃었다. 사람의 감정은 어떻게 이렇게 단순할 수 있을까.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이런 것에서 나 혼자만의 특별함을 찾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면 특별함에 잠식될 것 같았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주제에 그러면 꼴불견이라는 걸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특별한 건 그 애 하나로 족하다. 나는 또 다시 그 애를 숭배하고 만다. 누군가가 지겹지 않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그 애에게 잠식되고 말았다. 가라앉고 가라앉다 보면 끝없이 발버둥을 쳐도 다시는 뭍으로 올라올 일 따위는 없다. 그것은 모두가 뻔히 아는 사실이었다. 물론 나는 발버둥 치는 일조차도 없었다. 발버둥을 쳐 봤자 가라앉을 거라는 것을 깨달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발버둥을 칠 의지가 없는 것이었다. 그 애가 그토록 좋았다. 쌍꺼풀 없는 눈두덩이 사랑스러워 입을 맞춰 보고 싶을 만큼, 매끄럽게 흐르는 콧대와 동그란 콧망울이 귀여워서 괜스레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려 보고 싶을 만큼, 뾰족한 윗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을 만큼 그 애를 좋아했다. 그래서 죽고 싶었다. 나는 평생 그 애에게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죽고 싶은 이유도 가지각색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그 애였다. 그 애에게 연락이 오지 않아서, 그 애에게 입을 맞출 수 없어서, 그 애의 사랑을 얻을 수 없어서. 누가 보면 사랑에 미친 줄 알겠지만 나는 생각보다 이성적인 사람이다. 그러니까 사랑에 미칠 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다.


“좋아해.”


세 글자를 입안에서 굴려도 적응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아마 평생을 가도 그 애에게 이 세 글자를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이 말에 절대가 아니라 아마로 덜 확신을 하는 이유는 혹시 모를 약간의 가능성을 열어 두기 위해서다. 어느 날 약간 미친 내가 그 애에게 좋아한다고 어설프게 말을 할 수도 있으므로. 물론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란다. 어쩌면 이 감정은 지금 이 시기에만 느끼고 견뎌내야 할 감정일 수도 있을 테니.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들어 한숨이 늘었다. 그렇다고 답답한 속마음이 뻥 뚫리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 대신에 그 애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 애 덕분에 많이 울었다. 나는 내 몸안에 이렇게 많은 수분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옥상 문에도 하도 기대서 지금까지도 나는 옥상 문의 질감을 기억한다. 그 차갑고 까슬거리던 철문. 그 애에게 연락이 올까 봐 뚫어지게 쳐다보던 휴대폰. 메신저에 숫자가 떠 있으면 그 애일까 봐 빠르게 뛰던 심장 박동. 대부분 그 애가 아니라 실망하던 나. 그런 것들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이제 여섯 시간의 부재는 우스워졌다. 나는 그 애 없이 지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미 십 몇 년을 잘 지내 왔으면서 단 반년 만에 다시 배워야 한다는 건 약간 웃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물론 잘 되어 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마치 십 분이 지난 것 같은 기분에 시계를 들여다 보고 고작 일 분밖에 지나지 않은 것을 보며 짜증을 느껴야 했다. 때로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잠을 잤다. 꿈에 그 애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사실 꿈을 잘 안 꾸기도 했다. 꿈에서도 못 보는 게 너무나도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 좀 억울했다. 나는 자꾸만 그 애의 얼굴을 되새겼다. 잊어버릴까 봐 무서워서였다.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을 어떻게 잊을 수 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대체로 사람 얼굴은 잘 잊는 편이었다. 오히려 그 애가 예외였다. 나는 매일 있는 힘껏 그 애를 기억해냈다. 때로는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 있는 그 애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했다. 가지런한 눈썹이 귀여웠다. 누군가가 찍어 준 듯 정면을 보고 웃고 있는 그 애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그렇다고 어떻게 저렇게 행복할 수 있는지 질투는 나지 않았다.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대체로 내 앞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으므로 더욱 그러했다.


그 애는 퍽 다정했다. 방학을 해서 굳이 연락을 할 필요가 없는 나에게 꾸준히 연락을 해 주는 것만으로도 다정함은 충분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걸로 만족해야 했다. 더 욕심을 내서는 안 되는 위치라는 건 명백히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고개를 드는 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날 같은 욕심을 부리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애에게 더 큰 다정을 느끼고 싶었다. 사실 다 거짓말이었다. 나는 그 애를 껴안고 싶었고 그 애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그 애와 손을 잡고 거리를 걷고 싶었다. 그 애가 나에게도 해맑게 웃어 주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음이라고는 모른다는 듯이. 둘만의 비밀 따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유치했다. 문득 죽고 싶었다. 별반 이유는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그 애를 떠올리며 죽으면 근사할 것 같았다. 나는 매일 매순간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추락해 가고 있었다. 추락을 반복하다 보니 무의식 속에서 무뎌진 게 아닐까. 그래서 자꾸만 옥상 문을 두드리고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리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물론 다 추측일 뿐이다. 내 마음이지만 나조차도 제대로 알 수 없었으므로. 아직 여물지 않은 마음이었다. 이럴 때나 깨닫는 거다. 맞아. 나 어리지, 하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상상을 한다. 여전히 그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할까. 어느 길거리라면 뒤로 돌아선 채 잠시간 멈춰 있게 될까. 마주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재빨리 눈동자를 굴려 그 누군가를 찾게 될까. 키가 좀 더 컸을까. 그 얼굴은 여전할까. 여전히 빛나고 있을까. 여전히 죽음에 대해 생각할까.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어른이 되었을까. 상상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내가 멈추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었을 그 애 모습이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으면서도 성숙해진 그 애를 떠올리게 된다. 그 애는 나를 마주하면 알아볼까. 사실 못 알아볼 확률이 높다. 그 애에게 나는 중학교 동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까. 그게 서러울 일은 아니다. 원래 첫사랑은 홀로 기억하기에 특별한 존재라고 누군가 그랬으니까.


생각해 보면 고작 중학교 이 학년이었다. 중학생인 내가 이토록 자기파괴적인 사랑에 빠져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하면 아깝다고 할 사람이 꽤나 많을 것이다. 나는 어쩌면 대범한 동시에 소심했다. 혹시라도 내가 죽게 된다면 내 죽음을 가족이 알지 않기를 바랐다. 적어도 그 죽는 순간만이라도. 어설프게 살고 싶지 않았다. 어설프게 장애를 안고 생존자가 된다면 나는 그 애를 원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상한 말이었다. 죽으면 행복하고 살면 원망하게 될 거라는 것이 어쩌면 와닿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고작 그 정도의 사랑이라고 치부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죽고 싶었다. 기를 쓰고 죽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든 죽어야 했다. 그 애를 사랑해야 했으므로. 이제는 죽음이 당연해졌다. 그 애에게 답장이 오든 말든. 아니, 답장이 오는 때때로의 순간에도 나는 죽음을 생각했고 울기도 했다. 아무래도 사춘기인 것 같았다. 사춘기에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그 애가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 사춘기만 지나면 이 호르몬은 사라지는 걸까. 생각해 봤다. 애초에 호르몬이라는 게 뭐지. 세포 같은 건가. 그러면 사춘기가 끝남과 동시에 툭툭 터지듯 없어지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살고 싶어질까. 그 애를 사랑하면서도 살고 싶어질까. 그 애를 사랑한 감정조차 잊혀져 나갈까.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 눈가가 빨개지도록 운 탓이었다. 나는 팔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이마가 꾹 눌리자 오히려 머리가 덜 아파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감각이 마음에 들었다. 시야가 차단돼서 어두운 게 나았다. 밑바닥으로 더 깊게 빠져드는 감각이 좋아서 더 나은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내게 마치 종교와 같던 그 애가 어느 순간 그냥 방을 빼듯 그렇게 빠져나가게 될까. 궁금했다. 알고 싶었다. 하지만 먼 미래라고 생각했다. 또한 올 수 없는 미래일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알 수 없는 법이다. 원래 미래는 알 수 없을수록 재미있는 법이라고 했는데 나를 생각하면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그 애가 긴 머리카락을 올려 묶었을 때를 떠올렸다. 드러나는 하얀 목덜미가 예뻤다. 그 애라면 어느 쪽이든 다 잘 어울리지만 그래도 묶은 쪽이 조금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더럽게 욕정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내 사랑은 그런 더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금 더 숭고했고 조금 더 우아했다. 이건 아무래도 사춘기 호르몬이 제대로 작용을 하지 않은 탓인지도 몰랐다. 알다시피 사춘기에는 그런 욕정과 같은 욕망들이 주류가 되니까 말이다. 물론 나에게도 그런 욕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저 나는 조금 더 고상하게 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사랑과 내가 하는 사랑은 수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 애에 대해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욕망은 입맞춤이었다. 그거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모를 그 애를 상대로 그 어떠한 상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단한 이유를 가져다 붙이지는 않겠다. 무슨 이유를 붙이든 간에 시간이 지나면 그 이유는 퇴색되고 우스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새 강박적으로 그 애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것을 나도 인식하고 있었지만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강박을 즐기고 있었다. 그 애를 좋아해야만 돼. 그 애를 좋아하기에 죽음에 더 가까워져야만 돼. 그런 생각들이 종종 머릿속을 어지럽히고는 했다. 멈출 수가 없었다. 사실 멈출 리가 없었다. 그 애와 더 가까워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포기일 수도 있고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나는 그 애에게 욕심을 내지 않았다. 사실 잘 모르겠다. 지금 내가 부리고 있는 것이 욕심인지 아닌지. 나는 그 애와 더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지만 그 애에게서 답장이 오는 것은 바라고 있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생각인가.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모순을 안고 살아간다고 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나는 아랫입술을 짓이기듯 씹었다. 아픔에 비해 피가 맺히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나는 혀를 내어 입술을 핥았다. 옅은 피 맛이 느껴졌다. 나는 그것만으로 만족했다. 마치 예행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죽음을 향해 한 발짝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면 기뻤다. 정말 어딘가 뒤틀린 사람이 아닐 수가 없었다. 죽음에 가까워진다고 해서 기뻐하는 꼴이란. 우스워 보이겠지. 나조차도 어느 부분에서는 스스로가 우습게 느껴지고 있었다.


공허했다. 무언가가 텅 빈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그 애에게서 오는 답장이 느려진 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답장이 늦어지는 데에 무언가 이유가 있는 것만 같은 기시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개학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선 교실에는 이미 대부분의 아이들이 와 있었다. 오늘 같은 날에도 나는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한 모양이다. 사실 오기 싫었는데 억지로 온 거라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이것도 핑계처럼 느껴지겠지만. 나는 자리에 앉아 그 애 위치를 살폈다. 교실 안 어디에서도 그 애를 찾을 수는 없었다. 내가 초조해질 때즈음 담임이 들어왔다. 아이들은 일사분란하게 자리에 앉았지만 여전히 한 자리는 비어 있는 채였다. 내 시선은 그곳으로 꽂혔다. 다만 여전히 쓸쓸했다. 나는 눈길을 돌리려 했지만 쉽게 돌려지지 않았다. 그 애가 거기 있으면 했다. 하지만 예상을 빗나가지 않게 담임은 그 애가 전학을 갔다고 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마음과 그래도 혹시나 했던 마음이 공존했다. 나는 무얼 바랐던 걸까. 죽을 만큼 숨이 쉬어지지 않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맥이 풀렸을 뿐이었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렇게 목을 매던 그 애를 향한 마음이 단순해질 수 있다니.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애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애를 사랑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애를 사랑했다. 몇 번이고 반복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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