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입니다
여기에서 MBTI를 들먹이고 싶지만 내 MBTI는 동화 같은 세상,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사람으로 쓰여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말대로 나는 동화 같은 세상과 영원한 사랑을 꿈꾸고는 했다. 처음 좋아하게 된 언니는 내 나름대로 필사적으로 좋아했지만, 어린 나이와 함께 고백을 거절 당한 뒤로 사랑에 대한 큰 욕심이 없어지던 차였다. 그 후로 나는 현실 세계에 있는 인간을 좋아하는 일이 그다지 없었다. 만약에 있어도 그냥 덕질 하는 것마냥 좋아할 뿐이었다. 모니터 안에는 예쁜 언니들이 곳곳에서 보였으며 그들은 내 고백을 거절할 일도 없었다. 그래서 더 빠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성인이 되면서 나름대로 연애는 몇 번 해 봤다. 처음에는 꼭 진실된 사랑일 거라고 착각하면서 시작하고, 눈물과 함께 끝이 난 연애였다. 1년, 2년, 500일, 600일씩 사랑을 키워가는 커플들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지? 내가 너무 어렸던 탓일까, 철이 없었던 탓일까. 그런 사랑을 부러워하면서도 내가 거기에 몸을 담게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봤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로맨틱한 연애 소설을 읽고 부러워하는 감정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나이를 더 먹고 나서야 새로운 세상에 발을 한 발짝 내딛었다. 오프라인에서 다이렉트로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연애를 하는 사람들, 연애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늘 듣는 소리가 연애나 사랑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조급함이 생겼던 것일 수도 있다. 나도 누군가를 좋아해야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사람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또 저 사람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중간에 위화감을 느낀 후로는 그 생각을 멈추기로 결심했다. 나에게 연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좋은 친구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하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아무런 생각이 없어진 순간 나는 한 사람을 알게 됐다. 보통은 SNS 계정을 알려 줘도 팔로우만 하고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는데, 그 사람이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초반에는 그냥 편하게 친구 하고 싶다는 말에 '그렇구나' 하고 공통점을 찾고, 일상을 조금씩 공유했다. 그리고 온라인에서만 이렇게 밍기적거릴 수는 없으니 실제로 만나기로 정하고 만나게 된 날, 나는 의자에 앉아 있는 그녀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반에 언급했던 '친구'라는 단어 때문에 나는 그녀를 친구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최대한 친구로서 이야기를 하려고 애썼다. 사실 낯을 가리고, 내향적인 성격인 탓에 초반에는 대화가 쉽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뇌를 굴려가며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내가 그 당시 머리가 굴러가는 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대화를 나눴으니 헤어지려나? 싶을 때 돈을 다 낸 그녀가 나를 어딘가로 또 데리고 갔다. 영화와 관련된 곳이었다. (그녀와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처음 알게 된 곳에서 신기하게 구경을 하다가 또 헤어지려나 싶을 무렵 다른 곳을 또 같이 가고, 갑자기 밥을 함께 먹게 되고, 벚꽃을 보고, 한강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분위기 좋은 바에 가서 하이볼을 마시며 또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나는 매순간마다 '이제 헤어지려나?' 라는 생각을 했다. 친구라는 틀에 사로잡혀 적당히 이야기 나누고 다음에 또 만나기를 약속하고 헤어질 줄 알았던 것이다. 다만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새로운 곳으로 데리고 가며 돈을 지불했다. 그렇게 택시 타고 가다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이게 친구가 맞나?'라는 의심을 시작했다. 둔하게도 그제야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다시 만나게 된 날에는 어색하게 영화를 함께 보고, 지불할 일이 생기면 최대한 내가 다 사고, 또 여기저기 가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다음 만났을 때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조언대로 슬쩍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했으나, 너무 긴장해서 팔짱을 끼워넣었다. 그런데 그녀는 뿌리치지 않고 계속 팔짱을 끼우고 다니다가 손을 맞잡기까지 했다. 나는 그제야 완벽하게 알아챌 수 있었다. 그 뒤로 한 번 더 만나며 그녀에게 고백을 받았다. 내 대답은 당연히 "예스"였다. 사실 그 당시 나는 자존감이 낮은 상태였으므로 '이런 사람이 내가 어디가 좋은 걸까?' 라는 생각을 조금 했었다. (지금은 그냥 내가 귀엽나 보다 하고 살고 있다.)
낯부끄럽던 초반을 지나 중반을 향할 때 한 번, 헤어질 결심을 했다. 사실 정말로 헤어지고 싶다기보다 내가 더 상처받기 전에 관계를 끊어내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또 한 번 더 나는 그녀에게 시간을 가져야 될 것 같다는 개소리를 하며 엉엉 울었다. 그때 그녀는 나를 토닥이며 항상 옆에 있을 거라고 해 주었다. 나에게는 그 말이 너무나 크게 와닿았다. 그 뒤로 나는 결코 그런 생각들을 입에 담지도, 생각도 하지 않게 됐다.
그런 식으로 순조롭게 2주년이 가까워지는 동안 많이 편해지기도 했고, 사랑이 더 커져가기도 했다. 그녀와 껴안고 있는 순간이 좋고, 자연스레 손을 꼭 잡고 걸어다니는 순간들이 좋다. 나는 여전히 어른은 되지 못해서 종종 그녀에게 툭툭 수동 공격스러운 말을 내뱉고는 하지만, 그래도 시정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녀는 나에게 너무나도 잘해 줬고, 잘해 주고 있다. 그걸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고는 한다. 그녀가 힘들어할 때는 혹시나 내가 이 사람을 힘들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못난 나를 위로해 주고, 힘을 주는 그녀에게 모든 걸 갚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초반에 장난스레 말했듯이 호호 할머니를 넘어서 죽어서까지도 뼛가루를 블렌딩해 함께 있고 싶다. 그만큼 그녀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고, 내 인생의 순간에 한 자리를 크게 차지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벅차올라서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사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원래도 표현을 잘 하기는 하는 편이었지만 그녀 앞에서는 유독 더 표현을 하게 된다. 다른 걸로 증명을 못하니 표현으로라도 증명을 하려고 하는 걸까. 종종 나는 불안하다.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 걸 알면서도 툭툭 말이 튀어나올 때도 있다. 영원히 내 곁에 있어 줬으면 좋겠는데, 평생 지금처럼 같이 살아가고 싶은데 등등. 온갖 생각을 하다 보면 그렇다. 특히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별 이야기를 보면 괜히 이입해서 더 슬퍼지고는 한다.
그 전에 했던 연애가 소꿉놀이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정말로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자꾸 그녀를 생각하게 되는 건. 그녀를 생각하면 너무 좋아서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다는 감정이 드는 건. 괜스레 벅차오른 오타쿠마냥 그녀 생각에 벅차올라서 가끔은 답답할 정도다. 그녀는 내가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그녀가 없는 삶을 떠올리면 내게는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목숨도 기꺼이 내놓을 만큼 그녀에 대해 깊이 사랑을 느끼고 있다. 만약에 내가 100억을 가진 부자라면 뭐든지 사 주고, 지원해 주고 싶다. 그녀가 나에게 로또를 사 줘서 1등에 당첨된다면 나는 그 사실을 그녀에게 알리고 함께 돈을 쓸 것이다. 내 마음이 이렇게 쉽게 느껴지게 할 비유가 그런 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만큼 나에게 그녀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녀가 하는 말이면 뭐든 다 그대로 하고 싶고, 들어 주고 싶다. 나는 그렇게 유치하게 그녀를 사랑한다. 언젠가는 같이 살고, 서로가 옆에 있는 게 더욱더 당연해지고, 늙어서도 손을 잡고 돌아다니며 살고 싶다. 하루 하루가 지나가며 2년이 20년이 되고, 5년이 또 50년이 되는 순간들 속에서 늙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다. 함께 늙어 나가고 싶다.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나는 죽어서도 뼛가루 블렌딩해서 영원히 함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