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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렁공주 Jul 05. 2021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여인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늦은 오후까지.

아이들이 아빠를 볼 수 있는 시간,

내가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중국 상해에서부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사는 지금까지 

우리는 8년 차 주말부부다. 

남편의 회사가 위치한 곳은 어느 나라건 도시와는 떨어진 시골이고 근처에는 외국인이 다닐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영어로 하는 학교를 찾다 보면 우리는 도시에 남편은 회사 근처에 다른 주재원들과 생활을 해야 했다. 몇 년에 한 번 나라를 옮기게 되니 그 나라 로컬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어디로 옮기든 학제를 이어갈 수 있는 국제학교를 선택하게 된 것이 떨어져 살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애들 육아부터 학교, 잡다구리 한 일처리까지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것이 너무 버겁고 힘들었다. 

 '이 나라만 뜨면 같이 공동 육아를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특별한 일 없게 보내는 것을 목표로 시간을 보냈다. 위험한 곳에는 가지 않고, 항상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들로만 일상을 보냈다. 

상해에서 바르셀로나로 발령을 받았다고 했을 때, 이번에는 무조건 회사 근처에서 같이 살리라 마음먹고 학교를 알아봤으나 역시 상황은 같았다. 회사와 가장 가까운 국제학교를 찾다 보니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두 가지 옵션이 있었고, 이왕이면 바다가 있는 바르셀로나로 오게 되었다.

적응 하기까지 또 한동안의 시간이 필요했고 지금도 말을 잘하지는 않지만 눈치껏 살 수는 있는 상태이다.

다행인 건 아이들이 그동안 많이 커서 이제 내 도움이 많이 필요한 시기는 지났고, 그저 학교 생활 잘할 수 있게 옆에서 보조만 해두면 되는 입장이라 훨씬 수월해졌다. 아이들이 크고 여유가 생기니 친구 엄마들과 교류할 시간이 많아졌고 외국 엄마들과 이런저런 얘기들을 많이 한다. 


영화에 나오는 외국 가족은 항상 화목하고, 자상한 아빠가 엄마와 함께 저녁을 차리고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하며 가족시간을 많이 보낸다. 처음 주말부부를 시작할 때 외국에 나와서 평상시에 남편이 옆에 없다는 게 다른 가족과 비교가 될 거 같아 참 싫었다. 그런데 친한 외국 친구들은 항상 나를 부러워한다. 주말에만 남편이 있는 게 자기의 꿈이라고, 너는 복도 많게 그렇게 오랫동안 그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냐고.. 한국 엄마들이 말하는 '전생에 나라를 구해서 주말 부부를 하는 거라는 그 의미가 외국에도 있나' 처음에는 나를 위로하는 말이겠거니 했는데 얘네들. 진심이었다!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안식년처럼 몇 년 쉬러 오던가 집에서 일을 많이 한다. 그러니 하루 종일 붙어있을 수밖에 없겠지. 


미국 친구의 일상.

애들 학교 보내는 준비를 하는 바쁜 오전 시간에는 남편은 일어나지 않고,

운전해서 보내고 오는 사이 남편은 준비하고 일을 시작한다. 

집에 와서 정리를 하고 자유시간이 생기면 좋으련만 아침 뒷정리를 하고 아침과 다른 메뉴로 점심 준비를 해야 한단다. 혼자라면 대충 샌드위치 하나 먹거나 스무디 한잔을 마시거나 친구들과 밖에서 외식을 해도 되는데 남편은 일을 하는데 자기가 나가기가 눈치가 보여 점심 약속도 자주 잡을 수가 없단다. 일하는 도중에 점심시간이니 영화에서처럼 같이 준비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점심을 차리고 먹고 치우고 아이들이 오면 먹을 간식과 저녁 준비를 하면 애들 픽업 시간이고 ,

이 역시 모두 그녀의 일인 것이다. 남편이 없어서 내가 하는 것과 남편이 방에 있는데 도움 1도 안되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어떤 날은 너무 열 받아서 이제부터 점심은 혼자 나가서 사 먹으라고 하기도 했다고 하니 그녀도 스트레스가 많았나 보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스페인 친구의 일상.

아침 먹고 학교 데려다주고 집에 가면 뒷정리할 것이 신경 쓰여 집 근처에 공유 오피스로 향한다.

일을 하고 집에 돌아가면 아침에 뒤로 하고 나왔던 그 광경 그대로 부엌이 어질러 있고,

이내 아이를 픽업하고 저녁 준비를 한단다. 

가끔 주말에 그 친구 집에 초대받아서 가면 남편이 요리를 해주기도 하지만 평일에는 자기가 맡아서 해야 한다고 한다. 스페인 저녁시간은 일반적으로 8-9시에 시작하니 먹고 치우면 10시가 넘고, 씻고 자기에 바쁘다고 한다. 외국인들도 남편이 있는 식사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이 친구들과 한국 레스토랑에 가면 너도 이렇게 여러 메뉴를 차려놓고 먹느냐고 묻는다. 솔직히 평일에는 아이들과 일품요리로 식사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려 한 가지 메인 메뉴만 있으면 된다고 하니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챙겨야 하는 자기들보다 너는 너무 좋겠다며, 어떻게 하면 너처럼 주말에만 남편과 함께 지낼 수 있냐고 어디서 가르쳐 주는 곳이 있냐며 우스개 소리를 한다. 예전에는 남편이 없는 빈자리가 너무 버겁고 힘이 들었는데 솔직히 요즘은 나도 가끔 너무 편하다. 

물론 금요일이 되면 주중에 혼자 챙겨 먹었을 남편 잘 먹이려고 장을 보고 열심히 저녁 준비를 한다. 벨이 울리면 우리 모두 달려 나가 반갑게 맞이하고 준비된 저녁을 먹고 못다 한 얘기로 밤늦게까지 깨어있다. 토요일에는 꼭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함께 하고 밖에 나가 외식도 한다. 일요일에는 회사로 또 가야 하니 보내기 전 먹고 싶은 메뉴를 함께 만들어 먹고 함께 있다가 보낸다. 신랑의 도착했다는 전화가 올 때까지는 맘이 놓이지 않지만 일단 신랑이 떠나고 나면 내 자유시간이 생기는 것 같은 홀가분한 느낌이랄까? 주중에는 떨어져 있으니 서로 주말 동안 최선을 다하게 되고, 함께 하는 시간이 짧으니 언성을 높일 일도 없다. 

슬기로운 주말부부 생활을 터득했다고나 할까?

어제도 "우린 언제쯤 다시 함께 생활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남편과 이야기를 했는데 

결론은 "아무도 모른다" 


대체 나는 전생에 몇 번이나 나라를 구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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