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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렁공주 Jul 09. 2021

아프면 내 손해

억울한 내 팔자야

 코로나 백신 2차를 맞았다.

현재 스페인은 믿기 힘들 정도의 빠른 속도로 나이 별로 백신을 맞고 있다.

처음에 정부에서 백신 계획을 얘기할 때 내 주변에서는 다들 이곳 일하는 속도로는 올해 안에 맞긴 힘들겠다 얘기했었다. 그러나 웬걸! 스페인 사람들도 일을 빨리 할 수 있다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제발 다른 곳에서도 이런 속도감을 볼 수 있길... 물론 EU에서 공동으로 백신을 미리 잘 확보해서 순서대로 접종만 하면 되는 상황이라 가능했겠지만 80대 이상 접종을 시작으로 몇 달 만에 현재는 만 16세 이상까지 신청을 받아 접종을 받고 있다.


 지난 1차 접종을 하던 날, 남편은 나보다 접종대상 기한이 빨라 일정을 잡고 내가 동행했었다. 백신을 맞고 기절을 한 사람도 있다더라, 어지러움을 느낄 수도 있다더라 등등의 이야기들이 퍼져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내가 운전을 해서 와야 하니 동행을 했던 터였다. 다행히 주사를 맞고 그날은 아무 증상이 없었고 다음날 팔이 뻐근한 증상만 이삼일 있었다. 주말에 집에 오는 일정과 맞춰 금요일에 주사를 맞은 터라 그동안의 주말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게 주말을 보냈다.

내 1차 접종은 평일에 잡혀 평일에 바르셀로나에 없는 남편은 동행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백신예약이 되어있는 친한 언니와 함께여서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 나도 그날 밤부터 팔이 아픈 증상만 며칠 지속되었고, 3주가 흘러 남편의 2차 백신 예약일.

남편보다 먼저 2차 백신을 맞은 지인이 밤새 아파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혹시나 하는 생각에 또 남편과 동행을 했다. 1차와 마찬가지로 팔이 아픈 증상만 나타났고 나는 더 이상 내 2차 백신이 걱정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 나도 2차 접종을 마치고 평상시처럼 지내고 있었는데 밤에 몸이 으슬으슬 추워진다. 평상시처럼 반팔 반바지 차림인데 자꾸만 이불을 덮고 움츠리게 된다. 여름 이불로 바꾼 지 오래라 덮어봤자 한기를 달래줄 정도가 아님에도 내 손은 자꾸 이불을 더 당긴다.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 일어나 옷장을 열어 긴팔 긴바지를 입는다. 부엌으로 가서 파라세타몰(아세트아미노펜)을 한 알 먹고는 얼마 전 아들친구 엄마의 백신 후기가 생각난다. '맞아. 맞은 날 밤부터 오한에 미열이 났었다고 했지' 

이불을 하나 더 꺼내 덮고 다시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약효 때문인지 지낼만한 거 같다. 

아니, 내 몸은 괜찮아야만 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아침을 먹이고 아이들을 피아노 레슨 하는 곳에 운전해서 데려다주고 장을 보겠어?'. 자꾸만 나한테 세뇌시키듯 '괜찮은 거 같은데? 이 정도면 오늘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약을 한 알 더 먹고 길을 나선다.

아이들을 내려주고 장을 보기 전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며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백신 때문에 어젯밤에 몸이 안 좋았었다고 했더니 자기 일인 양 걱정하며 약도 밥도 잘 챙겨 먹으라는 친구의 얘기에 "아파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괜찮아지는 것 같아"라고 했더니 나의 정신력이 대단하단다.


사실이다.

그동안 나는 아프면 안 되었다. 다른 가족은 엄마가 아프면 아빠가 밥을 하고 아이들을 케어 하지만 주말부부인 우리는 내가 아프면 집이 엉망이 된다. 그 꼴을 보지 못하는 나는 아파도 움직이고 그러다가 하루에 끝날 수도 있는걸 며칠을 끌고 간다. 그래서 아프면 나만 손해다.   

지레 걱정되어 남편의 두 번의 백신 접종을 따라갔던 게 가만히 생각해보니 꽤 억울하게 느껴진다.

준 만큼 받아야 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지만 정작 내가 아플 땐 누가 나를 돌봐주나..

백신 때문에 이것저것 그동안 혼자 감당해야 했던 억울했던 감정이 떠오른다. 

전생에 나라를 여러 번 구하면 뭐하나, 내가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데.. 전화로 약 챙겨 먹으라는 얘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남편의 이런 상황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인걸 알면서도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괜한 트집을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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