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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렁공주 Jul 06. 2021

엄마는 왜 만족을 몰라?

쉽게 만족하는너는 참 행복하겠다!

지금 내 앞에는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입을 내밀고 여름방학 숙제를 시작하고 있다.

내 옆에는 중 2 딸이 앉아 자신의 숙제를 하며, 어떻게든 쉽게 숙제를 하려는 남동생에게 이제 정신 차리라며 팩폭을 날리고 있다. 가끔은 동생에 대한 누나의 조언이 너무도 객관적이고 예리해서 이야기의 끝이 아들의 울음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오늘의 목표는 정해진 숙제를 할 동안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넘어가는 것이다.

방학을 하고 열흘 동안은 방학을 즐기라 가만히 두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게임이며 유튜브에 네플릭스까지 하루를 어찌나 알차게 보내는지 이대로면 방학중에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못하겠구나 싶어서 오늘부터는 테이블에 다 같이 모여 책을 읽고 숙제를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숙제며 공부를 하는 동안 나는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며 '엄마는 놀면서~'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고군 분투하고 있다.


여행을 가기로 정하면 나는 모든 준비를 미리미리 해두는 편이다. 출발 며칠 전부터 트렁크를 한쪽에 꺼내놓고 나중에 놓치고 못 챙기는 물건이 있을까 봐 생각이 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넣어둔다. 문제는 미리 계획을 세워 일을 해야 하는 나의 이런 성향을 아들은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루에 내가 해야 할 일을 미리 해놓고 마음 편하게 놀자는 게 내 생각이고, 아들의 생각은 다르다. 먼저 놀고 기분을 좋게 만든 후 오후에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기 주도 학습 분위기를 만들어보려 방학 동안 어떻게 생활할지 계획을 세워보라 하고 장을 보고 왔더니, 아들놈 가관이다.


오전 8시-11시 게임

오전 11시-12시 가족시간

오후 12시-12시 30분 자유시간

오후 12시 30분-2시 30분 게임

오후 2시 30분-3시 30분 공부 및 숙제

오후 3시 30분-4시 운동

오후 4시-8시 게임

오후 8시-자기 전 자유시간


가족시간과 자유시간을 중간중간 넣어 계속 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 얼마나 머리를 굴렸을까?

하루에 한 시간만 공부를 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표에 어이가 없어서 또 잔소리를 해댄다.

"그동안은 초등학생이라 놀았지만 이제 중학생이 되니 준비를 해야 해" 

어릴 적 언니와 성적 비교당하는 거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라 말을 하다 보니 그런 뉘앙스가 새어 나온다. "누나처럼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누나 봐봐 누난 이미 숙제 시작하고 매일 해야 할 거 하고 잔대"라고.

돌아오는 대답은..

"왜 모두가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 난 지금 내 성적에 만족하는데 엄마는 왜 만족을 몰라?"

"우리 반 친구들은 다 나보고 공부 잘한다고 하는데, 내가 지금보다 잘해도 엄마는 계속 더 잘하라고 할 거잖아?", "내가 엄마 아바타야? 엄마가 하라는 대로 내가 해야 해?"

순간 띠용~말문이 막혔다. 그렇네.. 네 말이 맞네. 

언니보다 성적이 안 좋아 엄마에게 혼나면 난 더 잘하지 못하는 것이 아주 큰 잘못처럼 주눅 들어 있었고, 이 정도면 된 거 아니냐고 한 번도 말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그런 나에게 이 정도에 만족하라고 하는 이런 돌연변이 아들이 태어나다니.

외국 교육을 받으니 어찌나 자기주장을 확실하게 이야기하는지, '싫은 건 싫다고 얘기하라'는 그 가르침은 어찌나 찰떡같이 알아듣는지. 이럴 땐 참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할지 어렵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미국 국제학교 초등학생은 여름내 아이들이 스트레스받지 말고 건강하게 시간을 보내라고 책 읽기를 매일 30분 읽으라는 권고 외에 그렇다 할 숙제를 내어주지 않았다. 가을에 중학생으로 올라가는 둘째가 이번 여름도 그냥 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 그동안의 경험이겠지. 하지만 예비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학교는 숙제를 많이 내준다. 레벨에 맞는 두 권의 영어책을 읽고 자신만의 관점에서 리뷰를 해서 그림과 글로 표현해서 작품을 내야 한다. 이는 첫 학기 성적에 반영되는 것으로 부모로서는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이밖에도 학교에서 정해주는 스페인어 책도 한 권 읽고 주관식 답안을 작성해야 하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을 말해야 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수학 숙제는 optional이지만 하고 오면 도움이 될 거라고 프린트물과 웹사이트 주소가 링크되어있고, 이는 어떤 부모가 봐도 시켜서 보내야 한다는 감이 온다. 그러나 이 optional이라는 단어가 또 문제다.

원하는 사람만 하라고 내준 숙제이고 자기는 원하지 않으니깐 하지 않겠다고 한다. 옆에서 누나가 나를 거들어 자기 경험상 그 문제를 다 풀어봐야 학교에 갔을 때 하지 않은 아이들보다 쉽게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얘기를 한다. 나는 단호하게 얘기한다. "엄마한테는 optional도 숙제야!" 

진이 빠진다.


남편에게 이 상황과 계획표에 대해 어이없음을 토로했더니 "남자애들은 그러다가도 정신 차리면 잘해"라고 얘기한다. 언제일지 모를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건 참 고되다.

9월에 개학인데 혼자 행복한 아들과 만족을 모르는 나는 어떻게 슬기롭게 여름 방학을 보내게 될지 앞이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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