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돈 쓰는 법을 까먹은 어느 아줌마 이야기
대학 졸업 후 바로 외국계 회사로 취업했던 나의 20대. 나에게는 그때가 소비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다.
어디까지나 내 범위에서의 과소비지 다른 사람들이 보면 검소하다 느꼈을 수도 있다.
엄마에게서 받던 용돈이 아닌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 라이프. 모든 취업준비 대학생이 바라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였던 첫 직장은 정장을 입어야 하는 복장 규정도 없었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직원들도 많았으며 사장님 역시 세미 캐주얼을 입으시는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깨어있는 회사였다. 그러나 회사에 들어가서 사원증을 목에 걸고 쫙 빼입은 나를 상상하며 보낸 지난 시간들 때문이었을까 나는 유독 정장 입는 걸 좋아했다. 어느 날은 직원들이 묻는다. 끝나고 선보러 가냐고, 왜 그렇게 입고 왔냐고..
정장을 입었을 때 내가 좀 더 멋져 보이기도 했고, 대학생 때는 살 수 없었던 질감의 옷을 살 수 있다는 것도 한몫했지 싶다. 백화점 신용카드를 만들고 결제일을 월급 다음날로 설정을 해두고, 몇 개월에 한 번 이쁜 정장 코너에 가서 옷을 사고, 정장을 입으려면 그에 맞는 구두와 백이 있어야 하니 가끔씩 잡화 코너에도 들리고 엄마를 나오시라 해서 엄마와의 데이트도 즐기고 동생들에게 용돈도 조금씩 줘가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엄마가 동창분들과 여행이라도 가시면 미리 모시고 가서 옷도 사드리고 면세점 쇼핑도 하며 소소한 소비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좋은 회사도 익숙해지니 지겨워지기 시작했고, "이번 달 월급만 받으면 그만둬야지.", "진짜 이번 달에 꼭 사표를 내야지" 그러던 와중에 시간은 어느덧 7년이 흘러 가족도 생겼으며 나의 직책도 달라져있었다. 마지막 7년 차에 입덧 때문에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앉아서 업무를 볼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서야 승진 기회를 앞에 두고도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사표를 내고 나와야 했다. 예전에는 그렇게 원했던 사표였는데 심한 입덧 때문에 막상 집에 와서 몇 달을 거의 먹지도 못하고 누워 지내보니 회사의 다니는 게 얼마나 나를 활력 있게 만드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소비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만삭에도 배가 많이 나오지 않아 원래 입던 원피스들을 입고 다닐 수 있으니 임산부용 옷을 별로 살 일도 없었고, 잘 먹지 못했기 때문에 거의 친정에서 지내서 식비는 오히려 줄었던 것 같다.
첫째를 낳고 남편의 회사 프로젝트로 잠시 반년 정도 충주에 내려가 사택에 살 때도 나는 특별히 갈 곳도, 살 것도 없었다. 백화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었다 해도 가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둘째가 생겨 또 극심한 입덧으로 나는 친정으로 가게 되고 남편은 그 와중에 해외 주재원 발령을 받아 먼저 나갔다가 둘째 해산일 즈음에 맞춰 들어왔다. 그렇게 둘째를 낳고 백일잔치를 한 다음 날 우리 가족은 다 하노이로 가게 되었다. 지금의 하노이는 많이 발전되었다고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중간중간 더러운 곳이 많았다. 시장에 가면 그 자리에서 바로 닭도 잡아주고 오토바이에 갓 도축한 돼지를 싣고 가는 광경은 흔했다. 그곳에서 내가 무슨 돈을 쓸 일이 있었을까. 먹을 것은 너무 쌌기 때문에 많이 먹는다 해도 과소비라고 말할 정도의 금액이 아니었다. 3년 주재 생활을 끝내는 해 여름 나는 한국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길에 면세점에서 명품 가방과 화장품들을 많이 샀다. '한국에 가면 이제 들고 다녀야지', '이제 좀 꾸미고 살아야지'
사주에 역마살이 있다고 하더니 한국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우리는 반 년 후 바로 다른 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두 번째 나라에서 나의 명품 가방은 일 년에 한두 번을 제외하곤 깊은 장 속에 있다. 해외에서 들고 다니면 되잖아?라고 물어본다면.. 음, 들고 갈 데가 없었다. 일상생활에서는 하고 다닐 일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긴 시간 외출을 할 수가 없고 가방에 어울릴 만한 옷들도 안 산지 오래였다. 그렇게 나의 소비는 점점 의도치 않게 줄어들게 되었고 지금 세 번째 나라에서는 아이들도 컸고, 마음만 먹으면 갈 데도 있고, 쇼핑할 곳도 많고 돈도 있는데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몸이 모른단다. 백화점엘 가도 식품코너 주방코너로만 가고, 아이들 옷을 사고 정작 1층에 즐비한 명품 매장이며 2층에 위치한 여성의류 쪽은 가지를 않는다.
가끔 여름방학에 한국에 나가 오랜만에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의 씀씀이에 놀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도 예전에는 이쁜 거 멋진 거 맛있는 거 좋아했는데, 백화점 무이자 할부로 사면서도 '그래, 세일할 때 사는 건 돈 버는 거야'를 외치던 내가 어찌 만 오천 원의 음식에도 놀라게 되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가끔 잘 모르는 물건을 살 때도 남편은 "모를 때는 비싼걸 사라"로 항상 말한다. "비싼 건 이유가 있을 거야"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그렇겠지.. 하지만 비교를 해봐야지' 내가 비교를 하는 사이 남편은 벌써 주문을 한다. 가끔은 그런 행동이 고마울 때도 있다. 가끔은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 습관을 조금 고쳐 원하는 물건이 있을 때 지를 수 있는 대범함이(어찌 이걸 대범 함이라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생겼으면 좋겠는데 나의 소비성향이 예전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돈도 써본 놈이 쓸 줄 안다'는 말은 10년이 지나면 유효하지 않은가 보다.
나의 이런 성향이 우리 아이들에게 '무조건 아껴야 잘 산다'로 각인되지는 않을지 걱정도 된다. 하지만 언젠가 아이들이 각자 날개를 달고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나의 바뀐 소비성향으로 강제 저축되었던 돈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