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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렁공주 May 07. 2021

확! 떠날까?

하루만 지나보자

 편지함에서 나에게 온 편지 하나를 들고 집으로 들어온다.

이 외국에서 나에게 온 우편은 무엇일까?

자동차세 세금 고지서다. 스페인에 처음 와서 3개월 학원 다니며 배운 실력으로 지금 까지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지만 빽빽이 쓰여있는 이런 종류의 종이는 나를 주눅 들게 한다. 더군다나 이곳은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지역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어 말고도 Catalan이라는 독립된 언어가 있다. 어딜 가든 표지판도 두 가지 언어 또는 Catalan만 기재되어있는 것도 많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Catalan이 더 통용되는 곳. 2가지 언어로 된 우편이 머리를 아프게 한다.

'그래, 이맘때 냈지.'매년 납부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지금은 4월 말인데 납부 기한이 3월 30일 까지란다. '이게 무슨 일이고'

발행일은 3월 10일, 남부 기한 3월 30일.

도대체 이 우편은 어디를 떠돌다 한 달 지난 지금에야 오게 된 걸까?

'이놈의 나라 느려 터진 건 진짜 알아줘야 해' 할 수 없이 은행 앱을 통해 납부를 하려 하니 기한이 지나 납부를 할 수 없단다. 오케이, 옆에 자기네 웹사이트에서도 납부할 수 있다고 쓰여있네. 들어가 보자. 인적 사항을 적고 지로 번호도 적고 납부를 눌렀더니 여기서도 기한이 지나 받을 수가 없단다.

'참내, 내고 싶어도 못 내는 건 뭐람?' 이쯤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이 이상은 내 언어 실력으론 안되니 같은 커뮤니티에 사는 이웃집에 도움을 청했다.  자기도 이렇게 고지서가 몇 달 뒤에 온 적이 있단다. 자기들도 이해할 수 없지만 가끔 있는 일이라며 별 일 아니라는 듯 웹사이트에서 다시 고지서를 발급받는 절차를 할 수 있단다.  친구 컴퓨터로 스페인 거주증 외 인적 사항을 넣고 클릭. 정보가 일치하지 않는단다.

미치고 팔짝 뛰겠네. 신분증에 쓰여있는 거 그대로 옮겨 적었는데 계속 에러가 뜬다.  

여러 번 시도한 후에 친구는 내일 아침에 전화를 하는 편이 낫겠다고 한다. 

아침에 남편 회사 통역 직원에게 부탁해 고지서를 다시 받아달라 했는데, 전화하다가

바로 납부할 수 있다며 그 자리에서 납부를 했단다. 

'아니, 이렇게 쉬운 걸' 어제 몇 시간을 고생해서 알아보고 했던 게 확~짜증이 난다.


 이쯤 되면 이 나라에 정나미가 또 떨어진다. 뭐 제대로 하는 일이 없는 것 같다.

유럽으로 발령받았다고 들뜬 마음으로 왔건만 일 처리하는 거 보면 어디 오지에 있는 나라보다 못하다. 

현지 직원과 일하는 한국에서 온 직원들은 다들 이들의 일처리에 고개를 젓는다.

더 미치고 팔짝 뛰겠는 건 정작 이들은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것.

은행에 갈 때도, 동사무소 갈 때도 예약은 필수다. 어렵게 며칠을 기다려 예약을 하고 가도 그들은 한가하게 업무를 하면서도 옆 직원이랑 잡담을 하며 세월아 네월아 시간을 끈다. 점심시간 2-3시간은 웬만한 상점들은 문을 닫고 응급 상황이 생겨도 기다려야 한다.

'이 나라에서는 아무 일도 없이 그냥 조용히 있다가 가는 게 상책이다.'가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스페인 살이 바이블의 한 구절쯤 되는 거 같다.

외국에 나온 한국인들이 애국자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외국에서 살아보면 한국이 그리울 때가 정말 많다. 너무나 아날로그인 나라라 디지털 도어록 회사가 망해나가고 무거운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녀야 하는 나라.

종이티켓으로 대중교통을 타야 하는 나라.  예약을 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업무를 보지 못하는 나라.


 아침에 고지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지인과의 약속을 위해 나간다.

날씨가 너무나 좋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도 날씨가 좋기로 유명하다. 주변 유럽에서도 날씨가 좋은 바르셀로나는 산과 바다를 모두 즐길 수 있어 쉬러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청명한 하늘과 기분 좋은 따스함. 파란 하늘과 가로수의 초록색이 조화를 이루어 그냥 길만 걸어도 힐링이 된다. '맞아, 여긴 이런 곳이지'

그냥 걸어만 다녀도 좋은 곳. 

오늘은 새로운 곳에서 점심을 먹어보자고 한다. 차를 타고 외곽으로 20분쯤 나가면 아직도 양을 몰고 다니는 곳도 있을 정도로 산이 많다. 지도를 켜고 평점이 좋은 산속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어머, 어머!!"연신 감탄이 쏟아진다. 이런 산속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 갑자기 다시 이곳이 좋아진다. 20분 벗어난 외곽인데. 이곳은 아직 중세시대 모습 그대로다.

연신 비디오를 찍으며 테이블에 앉으니 이건 뭐 더 말이 안 나온다. 기온은 따듯한데 바람은 적당히, 저 멀리 높은 아파트들이 보이는데 내가 앉은 곳은 너무 산속 수도원 같고, 난간마다 분홍색 화분을 걸어놓아 그냥 그림이다.


"이런 멋진 곳에 이 가격이 말이 되니?" 평일 음료 포함 3코스 런치메뉴 13유로. 띠용~

"정말이지 이 나라는 가성비가 너무 좋다!!!!" "우리나라였음 이거 5만 원도 넘었을 거야"

고지서로 인한 그 짜증은 잊은 지 오래다. 나보다 3-4년 먼저 스페인으로 온 지인 두 명과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냥 들떠서 식사를 하는 중에 한참을 '좋은' 바르셀로나 얘기로 꽃 피웠다.


 나는 이렇게 한 가지 일로 짜증내고 흥분하며 또 다른 일로 보상받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좋은 바르셀로나'와 '나쁜 바르셀로나'는 한 끗 차이다.

어떤 날은 당장 떠나고 싶다가도 어떤 날은 이런 곳에서 살아보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에 대해 떠드는 

나는 이상한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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