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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렁공주 Apr 21. 2021

강박을 장점으로

잘하는것을 소문내기

 약속이 없이 집에 하루 종일 있는 날.

[애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소파에 앉아 밀린 일을 뒤로하고 넷플릭스를 보며 하루를 보내는 것] 은 나에게는 일 년 중 며칠 되지 않는다. 물론 가끔은 이렇게 보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나는 나를 못살게 만든다. 

손님이 오지도 않는데 누가 우리 집을 보고 흉이라도 보면 어쩌나 개수대에 쌓인 접시는 바로 헹궈 식기세척기로, 부피가 커서 들어가지 못하는 그릇이며 조리도구는 바로 씻어서 물기가 조금 빠지면 마른행주로 닦아 각각 서랍으로 찬장으로 넣고, 각을 탁탁 잡는다. 다 쓴 물건들을 최대한 안 보이게 하부장 아래로 치워 싱크대 상판에 아무것도 없게 만든 후 물기가 없도록 여러 번 닦고 나서야 안심이 된다. 아무도 보지 않고 깨끗하다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가끔 강박처럼 싱크대 상부장을 사수한다.  가끔 예고 없이 지나가다 들른 지인은 "밥은 해 먹고 사냐?"며 "밥을 해 먹는 집이 이렇게 깨끗하냐?"고도 얘기한다. 그러면 그 말들이 칭찬인 양 나는 참 뿌듯해진다. 나의 싱크 강박은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 날에도 계속된다. 워낙 친한 친구라 말없이 치워줘도 "난 왜 상부장을 비워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꼭 치워야 돼? 난 이게 편한데?" 하다가도 보이는 곳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면 연신 "대박"을 외친다. 

'그래, 이 맛에 치우는 거지' 나는 또 혼자 뿌듯해한다.


 어제 장이라도 보고 온 날이면 나의 할 일은 이제 시작이다. 

외국에 살다 보니 한국의 정육점에서 만큼 원하는 부위를 살 수 없어 크게 포장된 덩어리 고기를 사서 내 입맛대로 찌개용, 국거리용, 구이용으로 나눠서 자르고 지퍼백에 담아 라벨링 하고 바로 먹을 것이 아니면 냉동실로 차곡차곡 각을 잡아넣는다. 이쯤 되면 '당장 필요한 거 아니면 장을 보질 말아야지. 일을 사서 하고 있네. 뭔가 다른 일이 있어야지 이건 진짜 살림 강박이다' 생각하면서도 내 손은 다음 일을 찾고 있다. '그래 오늘은 불고기를 먹어야지' 불고기 양념을 만들며 지난번에 갈아서 얼려둔 키위와 배 큐브조각을 꺼낸다. '어? 배가 몇 조각 안 남았네, 더 사다가 갈아서 얼려야겠네?' 일감 하나 획득하셨습니다!

얼려둔 생강을 꺼내어 강판에 갈면서 생각한다. '따듯하게 생강이랑 대추차 마시면 좋겠다' 

일감 두 개를 획득하셨습니다!

자투리 채소를 보관했던 통을 꺼내 채를 썬다. 아무렇게나 썰면 어떤데 각을 잡아 흐트러지지 않게 접시에 색깔별로 담고 조리만 하면 되게 준비를 해서 랲을 씌우고 냉장고에 넣고 나서야 끝이 난다. 그럼 도마와 사용한 칼은? 당연히 빨리 싱크에서 치워야 한다! 그렇게 나의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의 하루를 앗아간다.


 아빠, 엄마를 닮아서인지 나는 식물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테라스를 그냥 비워 두기가 싫어 또 일을 찾는다. 한국 파를 찾기 힘든 이곳에는 일 년에 한 철만 나오는 깔솟이라는 우리나라 대파와 비슷한 종류가 겨울에 나온다. 이때가 아니면 이걸 구할 길이 없다. 예전에 엄마가 화단에 파를 심어 오랜 시간 먹을 수 있게 관리하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이 방법을 종종 이용한다. 깔솟이 없어지기 전에 마트에서 깔 솟과 흙을 사 오면 일부는 뿌리만 남겨두고 잘라 냉장고에 넣어 보관할 수 있게 씻어서 잠시 두고 (일감 세 개 획득!) 나머지는 사온 그대로 길쭉한 화분에 흙을 덮어 쭈욱 심는다. 한동안은 파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며 혼자 좋아하며 한참을 쳐다본다. 네 번째 일감 완료! 

그 옆으로 민트며 로즈메리 고수가 자라고 있다. 번식력이 좋은 민트는 금방금방 잎이 나서 무성해진다. 민트를 딸기에 올려 꿀을 뿌려 먹으면 맛과 향이 끝내준다. '아이들이 오면 간식으로 그렇게 해줘야겠다'

그렇게 다섯 번째 일감을 스스로 만들어 민트 잎을 따고 딸기를 씻고 이쁘게 담아 냉장고로 보관.

세어 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나의 일은 하나에서 금방 몇십 개로 늘어나고 그 일들을 하다 보면 오후 네다섯 시가 금방 되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온다. 

 

 그전까지는 일의 개수가 문제였다면 아이들이 돌아오면 그때부터는 속도를 내야 한다. 힘들다며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내어주고 "식탁으로 와서 먹어~런치박스 들고 나와!!" 소리를 지른 후 다 먹고 가져온 도시락통과 물통을 받아 내일을 위해 씻어둔다. 가끔 금요일에 학교를 다녀온 아이들이 도시락통 내어 놓는 걸 잊으면 일요일 밤이 되어서야 안 씻은 런치박스가 생각나 "너희 또 이러면 도시락 안 싸준다! 그냥 굶을래?" 경고를 하곤 한다. 숙제를 하라고 시키고 나는 저녁 준비를 한다. 준비해 두었던 재료를 꺼내고 볶으려다가 밥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낮에 그렇게 일만 했는데도 아직도 잊고  못한 게 있어!' 재빨리 쌀을 씻어 밥을 하고 한쪽에서 팬을 꺼내 불고기를 준비한다. 어떤 날은 그냥 고기와 야채만 볶기도 하지만 가끔 당면이 들어간 불고기가 당기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인데 다행히 오전에 당면을 물에 넣어 불려두었다. 휴우~시간이 절약되었다.  밥이 완성되는 타이밍에 맞춰 고기를 넓고 이쁜 (이것도 문제다. 아무 접시에나 먹으면 어떠냐만 어떤 접시를 사용할지도 미리 계산해야 한다) 접시에 옮겨 담아 참기름과 통깨로 마무리. 한편에는 양상추를 채 썰어 올리고 나머지 한편에는 밥을 이쁘게 담아 아이들에게 전달한다. 

저녁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각자 일을 할 때 나는 또다시 부엌행이다. 먹은 그릇을 치우고 내일 아침 도시락에 무엇을 쌀지 준비를 해두고 나서야 나의 길고 긴 집안일 강박은 끝이 난다. 


 사실 나의 이 강박은 예전에는 없었다. 해외에 나와서부터인가.. 특별히 갈 곳도 중요한 할 일이 없다고 느낀 나는 '당신이 회사에서 돈을 버는 것만큼 나도 집에서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탓인지 계속 일을 만든다. 작년 코로나로 인해 유럽 전체가 몇 개월 봉쇄되었을 때에도, 아이들은 각자 방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고 남편은 식탁을 차지하고 일을 할 때 나는 부엌에서 하루 종일 빵을 굽고 음식을 했다. 누가 그렇게 빵을 매일 먹는 것도 아닌데 어제는 슈크림빵 오늘은 모카빵 내일은 시나몬롤. 그렇게 구웠던 빵들의 사진과 음식의 사진들은 나의 핸드폰 사진첩에 고이 모셔져 있다. 

올 해가 들어서 나의 이 강박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싶었다. '매일 부지런하지 않아도 괜찮아' '집이 어질러 있어도 괜찮아' 그리고 이런 생각들도 들기 시작했다. '내 일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원래 다른 사람들의 일상은 항상 궁금하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나는 유튜브에 내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잘하는 것을 강박으로 둘 것이 아니라 소문을 내자. 무료 편집 프로램을 사용하여 소소한 내 일상을 올리고 있는 요즘. 부엌은 예전보단 깔끔하지 않고, 처음 해보는 영상 편집으로 보내는 시간 덕분에 나의 집안일 강박은 조금 덜 해진 거 같고 그만큼 집도 조금 더러워진 거 같다. 


이제 집안일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가 나를 참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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