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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렁공주 May 04. 2021

고질병

아침형 인간이 되지 못하는 자

  이상하게도 나는 새벽에 충분히 잠을 자지 않으면 아프다. 절대 새벽에 일어나 공부도 운동도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몸인가 보다.  성공한 사람들과 부자들은 거의 새벽에 일어난다며 아침형 인간을 예찬하지만 혹해서 시도라도 하면 그때마다 나는 축난 몸을 되돌리느라 번번이 더 시간과 돈을 버리게 된다.  

예전 어느 연예인이 나와 아내 얘기를 하며 "우리 아내는 저혈압이라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난다"라고 했던 말에 심하게 저혈압인 나는 '아~내가 그래서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나나?' 생각했다. 저혈압과 새벽잠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침형 인간이 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다니 한편 맘이 놓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아침에 수학 공부를 하면 머리가 맑아져서 도움이 된단다' 라며 새벽에 일어나길 원했던 엄마에게 그때의 나는 게을러서 아침형 인간이 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다 라고 지금이라도 피력하고 싶다.

 

 몇 년 전 영국으로 놀러 갈 계획을 세우고 비행기표를 끊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가 싸길래 예매를 하고 어두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공항으로 갔다. 일어날 때부터 뭔가 멍한 게 컨디션이 좋지 않다 느꼈는데 체크인 수속을 밟고 출발 전까지 기다리는 시간 동안 배가 사르르 아파왔다. 아이들은 비행기 타기 전 빵을 먹고 들뜬 표정이 역력했으나 나는 도무지 빵을 먹을 수가 없었다. 잠을 못 자 그러겠지 싶어 비행기를 타고는 조금 눈을 붙이고 런던에 도착해 또 시내 숙소까지 이동하는데 한참. 너무 이른 시간이라 숙소 체크인을 할 수 없어 가방만 맡기고 시내 구경을 하고 몇 시간 후 숙소로 돌아와서는 병이 나고야 말았다. "첫날부터 무리하지 말자" 남편에게 얘기하고 오늘은 숙소에 있기로 결정을 내린다. 어떻게 해야 배가 안 아프게 되는지 경험을 통해 이미 나는 알고 있다. 무조건 자극 없는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 따듯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많이 누워있어야 한다. 영국에 가면 피시 앤 칩스도 먹어야 하고 볼 것도 많았지만 오늘을 놓치면 병원신세를 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취사가 가능한 숙소여서 근처 슈퍼에서 달걀, 파, 낱개 포장된 미소된장과 쌀을 사 와서 냄비에 생전 처음 밥을 했었다. 달걀탕, 미소국, 진밥에 아이들을 위한 스팸.

내 덕분에 아이들은 런던에서의 첫날을 숙소에서 아이패드와 지내게 되었고 그다음 날에도 아침으로 똑같은 음식을 먹고 구경을 다녔다. 구경을 다니면서는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어야 했지만 숙소로 돌아와서는 계속 미소국을 먹고 계란찜을 해 먹기를 며칠. 아이들은 그때 이후로 미소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그 이후로는 절대 이른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아낀 비행기 값보다 더 비싼 런던에서의 시간을 낭비했기 때문이다.


 훨씬 더 오래 전의 언니의 대학 입시날, 학력고사를 보러 지원한 대학교로 가는 길을 나는 엄마와 동행했다. 그냥 언니를 내려주고 혼자 집으로 오게 될 엄마를 생각하니 뭔가 같이 있어드리고 싶었고, 대학교는 어떤 곳인가 궁금하기도 했던 거 같다. 평상시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차로 가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되니 지하철을 타고 방배역에서 신촌까지 거의 한 시간을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들 우리와 같은 생각으로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고 2호선 내부는 사람들이 많아서 앉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가던 중 내 고질병이 또 시작되었다. 식은땀이 나며 어지럽기 시작했다. 히터를 틀어 답답한 공기 때문이었을까 숨쉬기가 곤란해 한참을 손잡이를 잡고 있는데 앞에 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내가 긴장한 수험생이라 생각했는지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나 때문에 언니가 걱정해서 시험을 못 보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언니는 시험을 잘 봤고 언니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와선 나는 계속 누워있었던 것 같다.


  지난 주말에 오랜만에 여행을 갔다가 분위기에 취해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먹고 놀기를 이틀 연속했더니 병이 난 거 같다. 낮에라도 잤으면 괜찮았을 텐데 낮잠은 못 자는 체질인지 그렇게 누워있어도 잠이 안 오더니 이틀을 부족한 잠에 시달리다 급기야 또 고질병이 시작되었다. 멍하다가 어지럽다가 핑 돌다가 위가 사르르 아파왔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거의 일주일이 되어가는데 나의 피곤함은 가시지가 않는다. 남편도 애들도 쌩쌩한데 나만 골골이다. 밤에 푹자도 아침이 되면 한숨도 못 잔 사람처럼 눈꺼풀이 무겁고 계속 위가 아프다. 이럴 땐 커피도 마시지 못하니 커피를 사랑하는 나는 정말 죽을 지경이다. 거리를 지나가다 커피 향이 나면 나도 모르게 카페에 들어가려 한 적도 있다. 지금 같아선 나의 고질병보다 커피를 못 마셔 괴로운 병이 조금 더 큰 거 같다.

얼마 전 달리기 유튜버 영상을 보다가 몸과 마음이 너무 좋아졌다는 후기들을 보고 '한번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나의 몸을 알기에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던 터였다. 마음으로는 새벽 달리기와 운동을 동경하고 있지만 이번에 아픈걸 보니 이제 새벽은 나와 정말 맞지 않는다는 걸 실감하며 헛된(?) 생각은 하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임신 중에는 죄책감 없이 맘껏 먹을 수 있는 게 장점이라더니 나의 이 고질병 덕분에 나는 오늘도 어쩔 수 없이 늦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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