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바른말보다 공감이 중요해
세상을 살면서 네 자녀를 가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 네 자녀를 어떤 이유에서든 외국으로 보내는 확률은?
주변에 봐도 자식이 넷인 집은 눈에 잘 띠지도 않거니와 설사 있다 해도 그 모두를 외국으로 보낸 가족은 없다.
하지만 몇 해 전 우리 가족은 그랬다.
언니는 결혼해서 20년 전부터 미국에서 살고 있고, 둘째인 나는 남편 주재원 발령으로 10년 넘게 이나라 저나라 떠돌아다니며 살고 있고, 여동생도 제부의 MBA로 인해 미국에 가게 되었고, 남동생은 언니와는 다른 지역이기는 하나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참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우리가 모두 해외에 있던 어느 해 엄마의 생신날, 자식들은 여기저기서 안부 전화를 하고 혼자 쓸쓸해하실까 친구분들과 만나서 식사라도 하시라고 용돈도 보내드렸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엄마가 주무시는 걸 확인하고는 생신 전날 밤에 미리 미역국도 끓여놓고, 당일에는 동네가 떠나가라 생일 축하 노래도 불러 드리고, 작지만 현금이 아닌 선물을 항상 준비했었다. 해외에 다 나와 있으니 허전하시겠다 생각은 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나도 아이들이 지금 보다 어렸고 남편도 일주일의 반은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할 때라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과 보내는 생일보다는 조용히 보내는 것도 좋겠다 생각을 하곤 했었다. 엄마와 통화를 하던 중 엄마의 착한 딸이던 나는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바른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엄마, 나도 몇 년째 생일에 항상 혼자야. 애들이 있으면 뭐해. 다 같이 모여서 파티도 최서방 오는 주말이 돼야 하는데. 내 생일 미역국도 매 해 내가 끓여."
생일 아침에 혼자 일어나 텅 빈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어린아이들과 시간이 어찌 지나는지 모르게 바쁜 하루를 시작하는 건 큰 차이가 있다는 걸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동안 정적이 흐르다가 엄마의 말이 들렸다. "너희한테 뭐라고 하는 게 아니고 그냥 내 말 들어줄 사람 없으니 전화로 쓸쓸함을 얘기하는 건데 뭐 해달라는 것도 아닌데 무슨 말을 그렇게 차갑게 하니"
아차 싶었다. 그래 뭐 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난 왜 엄마 얘기를 조용히 들어주며 공감하지 못했을까?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는 항상 우리가 옆에 있어서 한 번도 생일을 혼자 보내신 적 없고, 우리가 다 커서 결혼을 해도 우리 중 누군가는 항상 엄마 근처에 살고 있어서 엄마는 혼자였던 적이 없으셨을 것이다.
아니, 결혼 전에도 태어나서 혼자였던 적은 없으셨을 테지..
그런데 자식들을 외국으로 보내고 나니 처음 겪어보는 혼자만의 생활이 너무 낯설으셨던 것 같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서 내가 가끔 느끼는 그 섭섭한 말들을 그때 엄마도 나에게 느꼈을 거라 생각하니 나의 솔직함이 아이들에게 유전되었나 싶어 예전 엄마의 말씀이 스쳐 지나간다.
"너도 너 같을 애 낳아서 키워봐라"
그 후로는 나는 웬만하면 누구와도 감정에 대한 얘기할 때 상대편에서 생각해보려 노력한다. 설사 내 속마음이 그게 아니더라도 "참 힘들었겠다.", "진짜 그랬겠다." 라고 공감하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더니 객관적으로 따져서 얘기하는 나의 말투는 가끔 중2 딸아이를 건드린다. "엄마는 내 맘 알지도 못하면서" 눈물이 가득 차 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딸을 보며 또 아차 한다.
공감능력 키워주는 학원은 없나? 나 거기 다녀야 되나? 몇 년 전의 내가 싫어 유튜브를 켜고 강의를 찾는다.
'그렇지! 나 같은 사람들이 많구나'를 중얼거리며 열심히 강의를 듣는다.
한 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벌써 4월 중순이 되었다. 엄마에게 공감해주지 못했던 그 철없고 생각이 모자랐던 내가 참 싫어 다시 태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내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