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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렁공주 Jul 05. 2021

한국어 공부하는 외국인

열정으로 거꾸로 가는 시계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대박을 외치며 이야기를 한다. 제일 친한 친구 Luke의 엄마가 BTS에 빠졌단다.

BTS!! 

우리 나이에도 아이돌에 빠지는 사람이 있구나..

평소에 자주 연락하는 터라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들한테 들었는데 너 BTS에 빠졌다며??"

예전에 올림픽 개막 무대로 써도 될만한 퍼포먼스라 생각하고 있던 BTS MMA 2018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 링크를 보내줬다. 

"이거 봐봐, 몇 년 전 영상인데 한국을 느낄 수 있는 영상이야"

피드백이 왔다. "They are amazing and such wonderful ambassadors for Korea!"

나도 동감이다. 이만한 한국 홍보대사가 없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한국 K-pop 또는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요즘 해외 소식에는 동양인들을 타깃으로 하는 범죄도 많다 해서 거리를 다닐 때 항상 조심하고 눈에 띄는 행동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데 최근에는 대화중에 내가 한국인이라고 얘기했을 때 반가워하며 '안녕하세요' 정도의 말을 구사하는 외국인들을 종종 만난다. 그럴 땐 한국의 K-pop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이 먼 스페인에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바르셀로나 정부에서 운영하는 어학당에도 한국어를 수강할 수가 있다니.. 그저 놀랍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학교 행사가 없어졌지만 일 년에 한 번 장기자랑을 하는 날엔 K-pop춤을 추는 그룹이 꼭 몇 팀씩 있었다.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도 그럴 때는 너무 뿌듯한 감정이 생기곤 했다. 한국어로 된 노래를 따라 부르며 똑같이 춤을 추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몇 년씩 합숙을 하며 실력을 갈고닦아 데뷔한 한국의 그룹들이 얼마나 대견한지 모른다.


 "안녕하세요"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뭐야? 한국어 키보드를 다운로드하였나?'

BTS영향으로 한국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단다. 노래가 너무 좋은데 제대로 뜻을 알고 따라 부르고 싶단다.

자음과 모음으로 공부한 사진도 보내왔다. '대단한 열정이네. 뭐가 그리 좋을까? 그들의 무엇이 이 친구를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 언어 공부를 하게 만들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BTS의 노래는  유튜브를 통해 어느 정도 접했기에 친구 얘기를 듣고 그녀가 좋아하는 곡을 찾아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중고등 시절 친구들이 콘서트를 다니던 때에도 나는 그런 덕질이 시간 낭비라 생각했으며, 특별히 좋아하는 연예인이 없었고 무언가에 잘 빠지지도 않았었다.

얼핏 보면 모범생처럼 학교 집만을 왔다 갔다 하는 착한 딸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무언가에 내 마음을 내 줄 여유도 열정도 없었던 것 같다. 

 그 시간에 딱히 공부를 더 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 흔했던 부로 마이드나 책받침, 스티커 등도 하나 없이 내 방 벽은 언제나 깔끔했었다.


그런데 이거 큰일 났다. 볼수록 영상 시청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딸이 손에서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개미지옥 때문이구나.. 다들 어쩜 그리 춤도 잘 추고 그렇게 과격한 춤을 추면서도 노래는 어찌나 잘하는지 꼭 내 아들인 거처럼 우쭈쭈 하며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 아들도 이렇게 잘 컸으면 좋겠다' 싶다가,

어떤 영상에서는 내가 10대 소녀로 돌아간 것처럼 그들이 춤을 추는 게 너무 섹시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멤버들의 활동 이름과 실제 이름도 외우게 되고, 노래마다 파트별 목소리도 구분하게 되었다.

유튜브 영상을 보다 보면 나와 같은 엄마들이 더러 있다.

 BTS에 빠진 딸이 조회수 늘리려고 엄마에게 하루에 몇 번씩 영상을 클릭해달라 해서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빠지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런데 자기를 입덕 하게 해 놓고 딸은 다른 그룹으로 갈아타 섭섭하다는 이야기.

59살 할머니도 빠지게 되었다는 댓글. 

'그래, 나이가 뭔 상관? 누가 결혼 한대? 그냥 좋다는 건데 뭐..'

아침에 일어나 부엌에서 요리할 때 항상 그들의 음악을 틀며 아침을 깨운다.

어쩜 이리 노래가 좋을까 감탄을 하며 흥얼흥얼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들 아침을 차리고 식탁에 스피커를 올려 둔다. 기분 좋은 리듬에 아이들도 흥얼거리며 아침을 시작한다.

무언가에 이렇게 열중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비록 음악을 듣는 것뿐이지만.



무언가에 빠져든다는 것은 참 좋은 신호인 거 같다. 

이 나이에도 무언가에 빠질 수 있구나, 나도 열정이 있다면 뭐든 할 수 있겠구나.

나보다 3살이나 많은 그녀는 지금 BTS에, 한글 공부에 빠져있다. 

사랑의 불시착을 보며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고, 나를 만나는 날이면 꼭 자기가 모르는 문법이나 한국 문화에 대해 많이 물어본다. 자기에게 몇 달의 시간만 주면 나와 대화할 수 있을 것 같단다. 

이 친구 덕분에 지금은 뭔지 모르지만 나의 열정도 곧 깨어나길 바란다. 

내 나이에 이거 해서 뭐해? 이제 배워서 뭐해?라는 생각 대신 앞으로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몰두할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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