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이 다가오면서 불안했던 아빠는 나름 대책(?)을 세우고자 사업에 손을 댔다. 규모도 크게 해 보고자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털어 넣었고 퇴직금까지 손을 댔다.
그뿐 아니라 회사 동료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한 모양이었다. 그 액수는 내 연봉을 차고도 넘쳐흘렀다.
당연히 아빠의 퇴사 소식을 들은 동료들은 빚 독촉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쉬쉬하고자 아빠는 속을 끓였다. 그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닌 것을.
엄마는 아빠의 퇴직금의 행방이 궁금했다. 퇴직금을 늦게 줄 수록 이자가 붙는 법. 회사가 작지도 않은데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게 퇴직금을 찾다가 휴지통에 보관된 돈을 달라던 친구의 문자를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이제 나는 막 2년 차가 된 직장인이었다. 다만 면허가 있는.
경제력이 없는 엄마와 이제는 없어진 아빠, 그리고 서울에서 아등바등하고 있는 오빠를 생각해 보자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취업을 하기도 전에 오랫동안 공부를 시켜준 아빠에게 보답한다는 명목으로 차를 마련해주었기에 이미 빚이 있는 빚쟁이였다.
이제야 앞자리가 바뀌기 시작했는데 또다시 시작이라니... 나는 이때까지도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부정했다.
면허를 담보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았으나 그렇게 적극적이진 않았다. 어떻게든 다른 방법이 구해지겠지, 라며 금융권의 이자를 저울질했다.
그러다 저녁 당직을 앞두고 삼십 분의 저녁을 보내기 위해 막 휴게실에 자리를 잡았을 때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진짜 급한 곳만 막게 우선 천만 원만 먼저 주면 안 돼?”
아홉 시간을 꼬박 근무하고 또다시 세 시간을 더 근무하기 위해 단백질 셰이크로 저녁을 달래러 온 딸에게 아빠는 야속하게 천만 원을 요구했다.
천만 원은 매달 백만 원씩 거의 일 년 동안 적금을 부어야 하는 금액이었다. 그마저도 나는 빚을 갚기 위해 대학생 때 보다 더 적은 금액으로 한 달을 살고 있었다.
아빠가 너무 야속해졌다. 내가 아빠를 너무 좋아하는 것이, 아빠의 껌딱지라는 것이, 아빠에겐 무기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진짜 나 밖에 없구나. 이 불안의 꼬리를 잠시 잠재울 사람이.
수습 딱지를 떼고 시작했던 적금을 깼다. 여권도 없는 엄마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만들어둔 적금이었고, 만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마저도 부족하였기에 여기저기 비상금과 쪼개 두었던 돈을 쓸어 모았다.
그렇게 삼십 분을 훌쩍 넘겨 안경에 덕지덕지 붙은 눈물 자국을 닦지도 못한 채 스테이션에 복귀했다.
나는 항상 가방이 무거웠다. 모든 교과서를 매고 다니는 요령 없는 학생이 바로 나였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시간표에 맞춰 교과서를 챙기고, 매일 한두 장씩 풀어야 하는 문제집을 위해 이고 지고 다녔다.
그러나 무거운지 몰랐다.
그 무거운 걸 매고 집-학교를 한 시간 동안 걸어 다니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고 아이패드가 생기고 난 뒤에도 가방의 무게는 줄지 않았다.
키보드, 마우스 등 부가적인 짐도 많았으며 시험 기간이면 거북목을 위해 패드 거치대도 들고 다녔다.
그래도 무거운 줄 몰랐다.
그러다
가방을 벗고 나니 ‘무거웠구나’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어깨에 새로운 가방이 얹어졌다.
무겁다. 너무 무겁다.
당장이라도 벗어던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