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재혼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상실과 단절 ] 내게 엄마가 된 적 없는 엄마

by 카인드마마

새엄마는 모아둔 재산이 꽤 많았다고 한다.

아빠가 가진 것이 없었기에, 새엄마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식구들의 삶을 꾸려나가야 했다.


함께 살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엄마는 가지고 있던 집 세 채를 팔아 파티마병원 근처에 건물을 사려했다.

지하에는 노래방을 하고, 위층은 세를 주어 나오는 생활비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건물 매입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이중계약이었고,

우리가 뒤에 계약을 한 터라 보상도 받을 수 없었다.


새엄마는 전 재산을 잃었다.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빠와 엄마는 매일 싸웠다.

안방에서는 매일 살림살이가 깨지고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부부싸움이 일어나면 엄마는 분노를 참지 않고 거침없이 표출했다.


나는 아빠 잘못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사기는 엄마가 당했는데, 엄마는 아빠 탓을 했다.

궁합 볼 때 "이 남자 만나면 거지된다" 했는데 딱 그렇게 되었다며,

모든 것이 아빠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의 분노는 끝날 줄을 몰랐다.


아빠는 엄마와 싸우고 나면 우리 방에 찾아왔다.

엄마가 힘들어 그런 것이니 너희가 엄마를 이해하라고 했다.

아빠의 슬픈 눈은, 엄마를 이해하라는 그 말이

나를 위한 것 인 것처럼 포장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말이 족쇄가 되어 어린 나를 어쩌지 못하게 묶어버린 줄은.


가세가 기울고 아빠는 무슨 일이든 했다.

방문판매, 다단계, 금융업까지.

아빠는 결국 보란 듯이 돈을 벌어 마당에 연못이 있는 멋진 집으로 이사했고,

집을 하나 더 사서 둘째 큰아빠와 고모, 할머니도 모셨다.

겉보기에 모든 것이 잘 되어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의 행복은 짧았다.

아빠가 자주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빠의 성공도 오래가지 못하고 부도를 맞았다.

불과 몇 년 만에 우리 집은 다시 모든 것을 잃었다.

엄마가 우리에게 따뜻할 수 없었던 이유는 차고 넘쳤다.


그렇다 해도,

엄마는 우리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남겼다.


아빠의 내연녀를 할머니 집으로 불러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아빠의 바람을 막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우리는 아빠 대신 엄마에게 죄인이 되어야 했다.


엄마는 화가 나면 나를 때렸다.

손으로,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휘두르고 상처되는 말을 했다.

화가 난 끝에는 고모집에 가라고 했다.

고모집에 가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나는 버티고 버텼다.

그 덕에 엄마의 분노는 매번 폭발했다.


동네에 울려 퍼지는 엄마의 고함소리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엄마가 계모라는 것을 모두에게 알렸다.


어느 날, 친구 엄마가 조심스레 나에게 물었다.

"혹시... 새엄마니?"


그날은 친구집에서 놀다가 친구와 친구엄마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준 날이었다.

늦게 들어간 나는 비 오는 날 먼지 나듯 맞았고,

친구의 엄마는 대문 앞에서 그 소리를 다 들었다.


엄마는 늘 나를 무시했다.

학원에 보내달라고 하면 아직도 포기가 안되냐며,

나에게는 공부에 싹이 없다고 했다.

성악을 하고 싶어 하던 내게,

네가 무슨 조수미라도 될 줄 아느냐고 했고,

나중에 커서 유럽여행을 꼭 가고 싶다고 했을 때는

네가 거기 가서 뭐 하냐고 나를 무시했다.


엄마는 내 꿈을 꺾는 정원사 같았다.

싹이 틔우기도 전에 '가당치 않다'는 칼날로 매번 도려내고,

엄마의 마음에 드는 씨앗만을 심으려 했다.

나의 꿈꾸는 정원은 좌절과 포기의 폭우 속에 무엇하나 꽃 피울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나는 결국 엄마가 원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서울로 취업해 명절마다 집에 내려오면, 엄마는 밤을 새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한풀이하듯, 지난 삶의 불행을 대본이라도 써 외운 듯 매번 반복했다.

나의 고단한 서울살이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네가 내 속으로 낳은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


그 말은 사랑의 고백이 아니라, 지금까지 너를 한 번도 딸로 여긴 적이 없다는 서늘한 선언이었다.

나는 엄마의 작고 하찮은 대나무숲이었을 뿐, 마음으로 품은 자식이 아니란 것을 그날 선고받고 말았다.


다 커서야 알게 되었지만,

엄마에게는 두고 온 딸이 있었다.

그러니 나를 키우며 그 딸 생각이 얼마나 났을까.


엄마는 결국 나중에 딸을 찾았지만, 딸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엄마는 스스로를 외롭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표현에 거침이 없고, 엄마의 말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았다.


아빠의 재혼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상처받은 여덟 살의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아빠는 내가 새엄마를 만들어 달라고 졸랐다고 했지만,

내 기억에는 전혀 없는 일이었다.

아빠는 어린 딸의 간절함을 명분 삼아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했지만,

정작 그 선택으로 인해 상처 투성이가 된 딸의 손을 단 한 번도 잡아주지 않았다.


몰랐다는 아빠의 무신경한 핑계는

딱지도 지지 않은 채,

아무리 연고를 발라도 새살이 돋아나지 않는 못된 상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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