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단절] 나는 새엄마가 좋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우리 집은 할머니와 고모까지 다 함께 살았다.
아빠는 3남 1녀 중 막내다.
할머니는 막내아들을 가장 좋아하셨지만, 당시에는 큰아들을 두고 막내아들과 사는 것은 흉이었다고 했다.
아빠의 만류에도 할머니는 큰아들 집으로 가셨다가, 몇 달 만에 다시 돌아오셨다.
그 이유가 큰엄마와의 고부갈등 때문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들어 알게 되었다.
큰며느리와는 힘들어하셨지만, 막내며느리와는 사이가 좋았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할머니와, 고모, 엄마는 늘 사이가 좋았던 것 같다.
유별난 우리 고모 성격을 엄마가 꽤나 힘들어했을 법도 한데,
엄마에게서 그런 불만의 소리를 들어 본 기억이 없다.
할머니도 그랬다. 엄마를 흉보거나, 나무라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내 기억 속 우리 집의 모습은 불편한 시어머니와 시누이, 며느리의 모습이 아니었다.
우리는 진짜 가족의 모습이었다.
아빠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1년 만에 재혼을 했다.
오빠가 중학교 2학년, 내가 국민학교 2학년이었다.
아빠가 재혼을 하고 우리 집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할머니, 고모와 헤어져 우리끼리만 범어동에서 살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 살기 전, 새엄마와 통화했던 날이 기억난다.
수화기를 건네준 것이 할머니였는지, 고모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그 짧은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 잘해보제이~"
내가 "네"라고 대답했을 때, 새엄마는 말을 편히 하라고 했고,
나는 곧 "응!"이라고 대답했다.
새엄마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새엄마는 아빠와의 결혼을 결심하면서 우리 집에 빚도 갚아주었다.
할머니는 새엄마의 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하셨다.
대신해 갚아준 빚뿐만이 아니라,
죽은 며느리를 대신해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주겠노라 찾아온 그 손이,
할머니에게도 구원이었을 것이다.
새엄마는 우리 집의 희망 같았다.
새엄마는 아담한 키에 곱고 하얀 피부를 가졌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중단발에 자연스럽게 파마를 해서 아래로 가지런히 묶은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짧은 머리에 뽀글뽀글한 '아줌마 파마'를 한 기억 속 엄마와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성격이 좀 급하고, 말속에 날 선 표현들이 느껴졌지만 괜찮았다.
사라졌던 엄마의 존재가 다시 생겼으니까.
그것으로 나는 충분했다.
아빠는 새엄마를 외갓집으로 데려갔다.
돌아가신 엄마의 고향, 청도였다.
새엄마는 옥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시골집에 들어섰다.
내 눈에도 참 곱고 예뻤다.
외할머니에게 절을 올리고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떠오른다.
외갓집 식구들은 죽은 딸의 자리를 채우러 온 낯선 여인을 마치 귀한 손님을 대하듯 정성껏 대접했다.
그 지극한 환대가 남겨진 오빠와 나를 향한 마지막 부탁이자, 눈물겨운 사랑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우리가 가족이 되고 이사를 하면서 나도 전학을 갔다.
새엄마는 담임선생님을 만나 나를 잘 부탁한다며 촌지를 넣은 주스 선물 세트를 선생님께 내밀었다.
나는 그렇게 챙김 받는 것이 그저 좋았다.
새엄마는 돌아가신 엄마의 제사도 잊지 않았다.
엄마 산소에 함께 성묘를 가면 꼭 이런 말을 했다.
“형님~ 우리 잘 지내도록 하늘에서 잘 살펴주이소~”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년 돌아가신 엄마의 제사를 챙겼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알겠다.
새엄마도 잘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때만 해도, 우리에게 기꺼이 사랑을 줄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시작하기 전이었으니까...
모두가 그럴 수 있다는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냉혹한 삶의 소용돌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